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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llus May 30. 2024

나 홀로 이탈리아 여행기_15

20240426 - 20240508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점심식사를 할 도시, 피엔차다. 가이드님이 추천해 줄 식당에서 각자 따로 밥 먹을지, 아니면 가이드님과 같이 식사를 할지 두 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나는 냉큼 가이드님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택한다.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 먹어야 이것저것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지 못하는 것은 혼자 여행의 몇 가지 안 되는 단점 중 두 번째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다들 생각하는 건 비슷비슷한가 보다.


가이드님과 들어간 식당은 가이드님도 추천을 받아 처음 들어가 보는 식당이라 했다. 중세풍의 인테리어가 꽤나 좋았는데 사진을 찍은 게 없는 걸 보니 퍽이나 배고팠던 모양이다. 거기다 식당 간판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어디였을까... 구글맵으로 식당 몇 군데를 찍어 사진을 보고 바로 찾았다. 식당 이름은 Trattoria La Buca delle Fate. 아까 발도르차 평원에서 봤던 한국인 분들도 몇몇 보여 여기가 유명한 맛집이구나 싶긴 했다. 나는 가이드님의 권유에 따라 A씨와 메뉴를 셰어 하기로 했다. 피엔차에서 유명한 것은 멧돼지 Wild Boar 요리였다. 우리는 등심스테이크 하나와 멧돼지 라구 파스타 Al Cinghiale 하나 시켰다.



파스타 면도 뭔가 토스카나 지방의 특색이 있는 그런 면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독특한 면을 씹고 있자니 뉴욕의 마레아 Marea의 푸실리가 생각났다. 스테이크로 배를 채우느라 정작 파스타 맛은 평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면인 사람과 같이 음식을 먹는 일은 잘 없는 일인지라 나는 친절함을 보여야겠단 생각에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었다. 또 여기까지 왔으니 와인을 시키지 않을 수 없다 싶어 한 잔씩 시킬 때 합류했는데 글쎄... 내가 왜 그랬을까. 2024년 5월 3일에 벌게진 얼굴로 피엔차를 돌아다니는 한국 여자가 있다면 바로 나다. 와인 글라스의 1/3도 채워주지 않은 와인을 겨우 두세 모금 했을 뿐인데 누가 보면 소주 한 병쯤 끝낸 얼굴로 보였을 거다. 아무튼 가격적으로 굉장히 괜찮은 식당이었다.


중세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식당의 천장이 흥미로웠던 듯 하다. 식당을 찍은 사진은 이 두 장밖에 없었다.

식사를 끝마친 뒤 각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A씨에게 같이 다니지 않으실래요? 하고 그를 꼬셨다. 슬슬 나 홀로 여행에 지치기도 했고 식사하면서 본 A씨가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냉큼 헤어졌을 테지만..



피콜리미니 궁전 Palazzo Piccolomini.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했던 1968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의 배경지다. 들어가자마자 What Is A Youth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지임을 강하게 주장한다. 들어가서 구경할까 생각도 했지만 생각보다 센 입장료에 뮤지엄샵만 보고는 그냥 돌아 나왔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탈리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먹고사는 관광지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여러 나라 좋은 일을 하고 갔구나...



눈에 보이는 젤라또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딸기 맛과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 특색 없는 맛 하나를 골랐다.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로 먹는 젤라또다. 1일 1젤라또를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예전처럼 응급실 신세를 질 수는 없었기에 나는 철저하게 위장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사실 무슨 맛을 먹었는지 알고 싶어 구글맵으로 뒤적거려 보았으나 가게 이름을 알아내는데 그쳤다. Fredo Pasticceria Gelateria Artigianale이다. A씨는 피스타치오 맛을 시켰는데 와, 맛있다, 고 연신 감탄하며 먹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가기 전에 이탈리아인의 "제대로 된 젤라또 가게를 고르는 법"을 인스타에서 본 적이 있다. 젤라또를 산처럼 쌓아두고 그 위에 원재료를 놔둔 곳은 관광객들이나 가는 곳이니 절대 가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 괜찮은 가게들은 오히려 젤라또 표면이 플랫하거나 아예 뚜껑을 닫아둔 곳이라고. 아마 이 가게도 일단 멀리서 보고 젤라또 뚜껑이 전부 닫혀있는 데라 믿고 들어간 것 같다. 우리가 젤라또를 고르고 나오니 뒤에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열려있기에 들어간 성당. 저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복도의 끝에서 신부님께서 오르간을 열연 중이셨다. 음악을 틀어둔 줄 알았더니 생음악이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열흘간의 여행 중 성당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성당이나 교회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미 충분히 봤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앞서 구경한 두 도시보다는 피엔차가 규모가 있는 편이라 동네를 둘러보는 재미가 있어 좋았다. 이 시간쯤 되니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도 많았다. 주어진 자유시간이 처음엔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기웃대며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갔다.



피엔차의 날씨는 끝내주게 좋았다. 지나가다가 본 개조심!이라고 쓴 팻말도 귀여웠다. 저 밑에 쓰인 E GROSSO와 E MORDE의 뜻이 big and bites라는 건 방금 알았지만 그래도 귀여움이 변색되는 건 아니다. 피엔차에서 단 하나 단점이 있었다면 몇몇 기념품샵 할머니들이 불친절하고 날 서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로마로 돌아오는 길, 다시 비가 내렸다가 구름이 꼈다가하며 변죽을 울린다. 무지개가 떴다는 A씨의 말에 사람들 다 창문을 바라본다. 무려 쌍무지개다. A씨가 앉아있는 쪽의 창문에서만 보였기에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고 A씨는 흔쾌히 찍어주었다. 제주도에 살면서 많은 무지개를 보았는데 저렇게 완벽하게 반원을 그리는 무지개는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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