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떠나감이 특별하길 원한다. 그러나 실상은 잘 그러지 않다.
더러 많은 이들이 때로는 내가 떠난다면 네가 힘들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남겨질 뿐이고 그러나 살아야 하는 사람만이 남을 뿐이다.
떠나야 하는 사람과 떠나보낸 사람 사이, 떠난 전과 후의 시간 사이는 오히려 지레짐작 드는 겁이 더욱 힘들게 할 뿐 현실을 인정하고서 바라본다면 각자가 살아야 하는 현실이 다만 남아있다.
도저히 살 수가 없다. 그 말 또한 맞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스스로 누군가의 부재 가운데 어찌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한다면,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닫고서 의외로 강하게 견뎌오고 있었음을 기억하고서 다시 한번 발 내딛는 그리고 걸어가는, 무너짐이 다시금 시작이 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혹, 잊음이란 단단함으로 갈음할 수 있지 않을까.
무너짐 가운데 기억함은 갈증을 돌릴 수 있지만, 다시금 다진 마음 그 자리에서 떠올림은 마침내 당신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리라.
결코 잊을 수 없을 얼굴들이 있었으나 망각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시간을 우리는 살아간다. 평생 기억하리라 다짐하였으나 기억이 점차 흐려져간다.
잊힌 얼굴들과 잊어야했던 얼굴들이 얼마나 더 없이 많았던가. 사랑이 그러하였고 절망과 미움, 슬픔은 그보다 더욱 거대하였으나 결국, 다 잊어간다.
잊어감이 오히려 숨 쉬게 하니, 상처로 인해 오히려 더 큰 기쁨에 눈을 떠 그 이름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외려 담백하다.
깨졌던 뼈는 다시 붙고 흘렀던 피는 다시 마르나 이것을 잊음이라 부르지 않으리라.
오히려 잊음은 떨어진 자리 속 굳어버린 머리 그 내면이 나를 아프게 하여도, 이것이 다시금 삶을 무너뜨릴 수 없게 받아들임을 진정한 잊음이라 노래하며 부르리라.
결국 살아간다 우리는, 결국 살아가자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