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볼 생각이면, 이내 잔잔히 기쁨으로 물들어간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쁨인적이 있던가. 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될만한 존재가 누군가에게 된 적이나 있었나. 종종 슬픔이었던 삶은 비극인듯하였다.
그러나 또 이것이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슬픔의 시작이 기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듯이, 기쁨의 시작이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정도이기에, 슬픔은 잠시 여기까지 하고서 퍽이나 멀어졌던 기쁨의 절정으로 돌아가는 길은 또한 즐거움일 수 있음을 누리고 있다.
감정의 전환이 있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나의 어떠함이 아닌 존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퍽이나 큰 위로와 인내 그리고 긍정으로 안아주었기에 아직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지만서도 조금씩 생각은 해보게 된다.
‘정말 존재만으로 사랑받아도 괜찮은 것인가?’
이런 사람들은 나를 아물게 했다. 공책을 펼쳐놓고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을 연필로 거듭 적어가며 지울 수 없이 짙어져 찢겨 점차 더 엉망이 되던 나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잠시 내 손을 함께 잡아주고, 이내 연필을 거꾸로 돌려 지우개를 지워준다. 평생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지워가야 하는 일인데, 너무나 아프기에 덧쓰는지 지우는지도 모르고 시간만 보내던 나를 살리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지워가니 이미 찢겨 너덜해진 마음이더라도 다시금 무언가 예쁜 이름 써 나갈 수 있게 점차 하얗게 되었으니. 이런 당신들을 추억하노라면 과연 나 또한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돌아본다.
오늘 버스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이상형에 대해 ‘착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실제로 그렇게 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척이라도,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얘기였다.
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 큰 찔림이 있었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어떠함과 상태보다 현재의 노력을 더욱 크게 보고 있는가. 그 노력을 함께 사랑하고서 이끌어 줄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이 마음을 갖추지 못한다면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는커녕 내 혈육의 아비 노릇조차 못하겠다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사랑이었던 당신들을 볼 때에 과연 나는 사랑이 되어가고 있는가.
무엇이든 배우기 위해선 반심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반심을 가지고서 생각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러하다면 그 길은 마땅히 갈 길이고 따라야 할 미덕이다.
당신들께서 보여주신 모습이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길을 가지 않고 있음은 오히려 내가 당신들의 사랑을 당연히 여기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받음으로 가까워졌기에 오히여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이제 방향을 돌려 사랑으로 나아가자. 사랑을 주는 시간으로 다가가 결국 당신들을 닮아가자.
그러할 때에 만남은 어디서든 결국 쨍하고 확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