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이 유치하게 느껴진다.
세상 살아가며 원했던 많은 것들을 점차 바라지 않게 되고 결국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간절하지 않게 된다. 그저 삶에 충실할 때에 얻어지는 부산물로 느껴지기에 그것을 목적 삼지 않게 된다.
원하는 것들이 점점 없어지는 일은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기에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저 하루 다하며 살아가는 연속이다.
더 이상 꿈꾸지 못하는, 동심을 잃었다.
그간 도저히 이룰 수 없다고 느꼈던 산을 하나 넘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을,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이제는 이유가 갈급하다. 목적이 시급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깊은 물에 의지할 바위가 없듯 바라보며 나아갈 푯대가 없다.
광야에 널브러진 부러진 깃발이 어느덧 몇 개이던가, 네가 세운 깃발도 더없이 가보았지만 결국 그곳도 어딘가 헤매고 맴돌 뿐 꿈은 없었다.
이 작은 삶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무엇이 더 옳은 것일까. 착하게, 선하게, 유쾌하게, 전문성 있게, 영향력 있게.
말들은 많다. 하지만 어느 하나 내 삶에 들여와 나의 색을 칠하기가 막막하다.
어떻게 착하게 살 것이며, 어떠한 선함을 베풀 것이며, 유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고, 네가 바라는 전문성은 무엇인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가져야 하는가.
인생의 선배는 많으나 선생은 없음에 개탄스럽다. 선생 될만한 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뛰어나고 훌륭한 자는 많으나 그중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모르겠기에 누구 하나 섣불리 스승으로 모시지 못한다.
나의 길은 무엇이고 도착지는 어디인가. 오늘 하루 공부하고 돈을 번다지만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떠올릴 수가 없어서, 꿈을 그리기 위한 연필조차 들지 못한다.
그것이 맞다. 나는 겁쟁이다. 패배자이다.
누구나 물어보는 뻔한 질문임에도, 도저히 대답할 만한 꿈이나 미래가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나는 훌륭한 겁쟁이가 될 것이며 대단한 패배자가 될 것이다. 멀리 보지 못하더라도 나의 당장을 더욱 집중하여 볼 것이다.
어디로든 가면 어떤가, 시간을 먹 삼아 발에 적시고서 선하리라 믿는 지금의 방법에 충실할 것이다. 먼 곳이 또렷하지 않아도 어디쯤이라 믿는 곳을 희미하게나마 바라보며 그 땅을 적시리라. 시시때때로 고뇌하여 이 길과 저 길, 또 다른 길을 다니며 헤메일지언정 결국 한 폭 그림 되어 선혈을 뿌리리라.
가치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떨림에만 선이 있지 않다. 푯대 없이 무던한 마음에 오늘 또 충실히 더듬을지라도, 두 발 가득 먹으로 적시고서 또 하루 유랑하리라.
그것 또한 삶 아니겠는가. 아름답지 아니한가. 평생의 방황이 서둘러 유랑이 될 수 있다면, 그 삶 또한 찬란하지 아니한가.
저만치 늘어진 고뇌와 먹먹함에 여지없이 충성하리라. 그곳 또한 빛이 있으니 나는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