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리를 위한 시

by 정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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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지교라 얘기하고 근묵자흑 근적자적이라며 나에게 부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라 저 높은 곳에서 쉬이들 얘기했다.

그러나 이곳은 차마 네가 보지 못할, 보이지 않는 지독한 훈연이며 자욱한 흑암이다.

쉬이 분노하는 나를 보며 보잘것없는 나의 인성을 비웃으며 손가락질하지만.

하지만, 보라!

이것이 내가 저곳에서 배울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고 이것마저 너에겐 최악의 것이었다.

부디, 보라.

나의 발걸음을 보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보라! 내가 걸어온 그 길의 시작 혹은 그 뒤에 배가 갈라져 모든 것에 오염되었으나 무엇인가 있으리라 믿고 희망하는 남겨진 자들을 보라.

오라, 나와 같이 손을 잡고서 그들을 건지자. 몸에 이물을 결코 묻히지 않는 것은 오히려 강박이며 결벽이다. 나를 씻고 저들을 씻기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그들을 보라, 우리를 보라, 우리는 잿더미에 피어오르는 하나의 핏덩이이다.

뜨거움뿐인 나를 가르치라. 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곳을 향하여 가르치라. 그 손을 뻗으라. 네가 나를 잊지 않는다면, 먼 뒷발치에서 혹 느릴지라도 그 길을 따라가리라.

우리에게 칼이 아닌 손을 내밀라. 어제도 변함없이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였다. 이제는 내게 부디 생명을 달라. 내게서 눈 치우지 말고, 가리우지말고 부디 생명을 달라.

오늘은 우리 위해 함께 울어지시기를 나 간절히 바라오니, 다만 나를 멸시하지 마시고 이제 사랑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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