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대웅 작가님의 글쓰기 세미나 후기
브런치에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글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힘든 시기를 글의 힘으로 견뎌내는 분들도 계시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는 분들도 계시며, 치열한 창작의 고민을 조각칼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과 지식을 쉬운 말로 차근차근 풀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배대웅 작가님처럼요.
저는 딱히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수험생 때 입시용 논술을 속성으로 배우다가, 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바로 때려치웠습니다. 독서량도 그닥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고전들은 쉽게 풀어쓴 청소년 문학 전집과 수험생용 요약본으로 읽었습니다. 그나마도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구요. 이후로 공대 - 미대 - 직장인 테크를 타게 되자 글쓰기는커녕 독서와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글은 거의 매일 씁니다만, 대부분이 기획서 아니면 보고서, 혹은 목적을 위해 억지로 논리를 짜 맞춘 글들입니다. 가능하면 글보다는 그림으로, 그림보다는 그래프가 있어야 이빨이 박히는 글이죠.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반쯤은 돈 안 드는 주말 취미, 반쯤은 어떤 알 수 없는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작정하고 글을 쓰려고 보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 1년 정도 어찌어찌 글 쓰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배대웅 작가님이 글쓰기 세미나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청해 볼까 싶었지만, 솔직히 내가 그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포지션의 작가님은 어떤 철학과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물을 던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다음 준비하고 있는 양동이에 물고기 몇 마리 더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번의 세미나를 통해 각각의 작가님들은 각각의 물고기를 잡으셨을 겁니다. 저는 아래와 같은 세 마리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첫 번째 물고기
뜨끔했습니다. 저는 주로 구어체로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다 보니 종종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으로 번질 때가 많습니다. 대화를 할 때도 주제를 풀어내다 말고 곁가지에 해당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끼워 넣는 버릇이 있구요. 글도 마찬가지겠죠. 이런 곁가지들을 쳐내지 못한다면, 정작 해야 할 이야기는 손을 못 대고 변죽만 울리는 모양이 될 겁니다.
두 번째 물고기
매력적인 도입부에 대한 설명입니다만, 저는 이 이슈를 '얼마나 참신한 표현으로 생각을 드러내는가?'에 관한 문제와 붙여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피부에 와닿은 부분은 같은 표현이라도 독자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경험과 지식의 깊이가 다르고, 똑같은 소재라도 시대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같은 표현이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메시지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세미나 도중 "봄날의 곰"이라는 표현의 출전이 노르웨이의 숲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대의 저는 봄날의 곰이 참 괜찮은 표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고백할 때 써먹어야지..라고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뒤로 봄날의 곰이라는 카페도 여기저기 생기고, 봄날의 곰을 좋아하느냐는 영화도 나온 뒤로는 저냥 저냥 익숙하고 무덤덤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봄날의 곰"이라는 표현을 다시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위험하지 않나..?'였습니다. 30년 전의 나는 "곰"에서 "복실복실한 오트밀 테디베어"를 먼저 떠올렸는데, 지금의 나는 "겨우내 굶주린 맹수"를 먼저 떠올린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영화 레버넌트의 충격적인 장면들과 최근 곰에 관련된 뉴스들이 복슬이 테디베어의 이미지를 덮어 버렸기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구요.
세 번째 물고기
기획서를 쓰거나, 프로그램을 짜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 모두 큰 맥락에서는 글쓰기와 같은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밑그림을 그려서 대략적인 얼개를 짜고, 목적에 맞게 잘 동작하는 유니트를 짜고, 디테일을 추가해서 정리합니다. 그것이 배대웅 작가님이 제안한 좋은 글쓰기 방법입니다. 겉으로 표 내지 않았지만 이 부분 역시 너무 당연한 것을 잊고 있었어서 뜨끔 했습니다.
가끔 스케치북 아무 데나 열어서 끄적끄적 그림을 그릴 때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어서 그리다 보면 늘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그리는 것 자체는 재밌었지만 이걸 어디다 쓰나 싶은 그림이 튀어나옵니다. 독특한 기능을 새로 배우고 나면 그걸 적용해 보겠다고 억지로 없는 기능을 짜 넣곤 합니다. 만들 때는 재밌지만 나중에 보면 전체 기능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효과만 도드라집니다. 없느니만 못하죠.
저는 그렇게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냥 주말에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뭔가 쓰고 싶은데로 몇 시간 글을 쓰다가 출출하면 집으로 오는. 시멘트와 벽돌을 잔뜩 사다가 대충 기분 내키는 데로, 손 가는 대로 집을 짓고서는 뭔가 좀 삐딱한데.. 하며 지붕 얹고 치웠던 겁니다. 다음에는 좀 더 낫겠지 하고 혼잣말을 되내면서요.
세미나가 끝나고 며칠 뒤, 다음 브런치북을 준비하며 쓰고 있던 첫 번째 원고를 다시 읽어 봤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지우고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또 막상 처음부터 새로 쓰려니까, 이게 취미가 아니라 일처럼 느껴져서 솔직히 좀 쫄립니다. 고민 끝에 다음 브런치북은 깔끔하게 연재를 포기하고 그날그날 완성될 때 하나씩 올리기로 했습니다.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글 쓰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겠더라구요..
피드백 이슈는 마지막 세미나에서 배대웅 작가님이 던지셨던 질문에 대한 나름의 입장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당연히 질문을 받은 작가님들 마다 각각의 입장과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피드백은 늘 어렵습니다. 피드백을 전하는 것도, 피드백을 받는 것도 항상 어렵습니다. 남의 글에 피드백을 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과연 글쓴이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에서부터 걸립니다. 글쓴이가 목적하는 바를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실제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드백에는 늘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감정 소모가 뒤따릅니다. 그리고 실제 피드백을 할 때에도 작가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고 단어를 조심스럽게 골라야 하기 때문에 많은 감정 비용을 쓰곤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날카로운 지적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하자는 쪽입니다. 대신 글을 여러 번 읽어보고 글쓴이의 사건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가를 조심스럽게 체크해 봅니다. 어쩌면 분쟁을 피하려는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피드백을 받을 때 역시 피드백을 해주는 대상자를 가능한 소수로 제한합니다. 솔직히는 피드백을 받으면 발끈하기 때문이 가장 큽니다. 수양이 덜 된 탓이죠. 게다가 작가의 역량이라는 것은 스스로 벽을 깨고 나오는 것이지 옆에서 거들어 준다고 벽이 저절로 깨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 왼쪽 뇌는 이해하는데, 오른쪽 뇌는 계속 퉁퉁거리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진지한 자세로 글쓰기에 임하고, 제 한계를 절실히 깨닫으며 두어 번 구르고 난 뒤에야 다 내려놓을 수 있을 겁니다.
원래의 질문은 '소설을 창작할 때 가능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이슈였습니다. 맥락에서는 약간 벗어나지만, 평소에 하고 있던 생각이라 입장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며, 디자인과 프로그램 중간 역할을 하는 직업이라 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고사성어를 연재하는 사람이 이런 말 하는 것은 좀 웃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말에서 고사성어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과 백 년 좀 넘은 시기에 쓰인 문장조차 제대로 읽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첫 오등은.. 부터가 막힙니다. 반대로 백 년 전 사람들은 "요 앞 마트에 가서 요거트 큰 통 하나 사고, 베라 들려서 파인트 하나만 사다 줘. 딸기랑 민초랑 외계인."이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 대략적인 의미조차 짐작하지 못할 겁니다.
다른 문화와 교류가 많아질수록 언어의 혼합 역시 점점 가속화하게 될 것이고, 외국어와 정확하게 1 : 1로 대응하는 단어가 없으니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변화들이 누적될 겁니다. 따라서 안 쓰는 단어들은 점차 사라지고, 외래어들을 발음 그대로 옮기는 비중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그 반작용으로 순우리말을 사용하려는 노력들이 분명 이어지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세미나 자체도 재미있었습니다. 미처 몰랐던 저의 문제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화면상으로나마 여러 작가님들을 직접 뵙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각 회차마다 세미나에서 파생된 여러 이슈들에 대해 혼자 생각해 보는 것도 저에게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회의처럼 반드시 결론을 내고 집행해야 하는 이슈가 아니라, 그저 생각하고 가능성만 따져 보아도 된다는 것이었구요.
자리를 마련해 주신 배대웅 작가님과 함께 참여해 주신 여러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P.S. 그리고 저는.. 아무리 봐도 에겐남은 아니...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