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쟁패 | 楚漢争覇 #3

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외전

by 붕어만세
뭐.. 일단은 목숨을 건졌으니까..

황제는 삼황과 오제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말입니다. 삼황은 세 명의 신화적인 존재들이고, 오제는 다섯 명의 빼어난 고대 군주지요. 사람이 담백했던 항우는 이 황제라는 칭호가 영 불편했습니다. 한낱 닝겐이 쓰기에는 좀 망녕되 보였거든요. 그래서 황제보다는 소박하고, 왕보다는 있어빌리티한 칭호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패자에 왕을 얹은 패왕입니다.


서초패왕 항우는 나는 진시황처럼 순행이니 뭐니 유난스럽지도 않고, 불로초 같은 허황된 것들도 안 믿고, 무엇보다 기깔나게 싸움을 잘하니까 초나라야 말로 천세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천하를 잡은 항우는 공을 세운 제후와 장수들에게 땅을 나눠 주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함양을 친 공이 있는 유방에게도 한 자락 잘라 줘야 했지요. 하지만 유방이 영 탐탁치 않았던 항우는 유방의 영지를 한중으로 정해주고 군사도 3만으로 확 줄여 버렸습니다. 한중은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시골 깡촌이고, 중원으로 나오려면 좁디좁은 산길을 통해야 했거든요. 산길 입구에다 명장 장한을 딱붙해 놓으면 유방은 그대로 한중에 갇히게 됩니다. 유방이란 놈은 늘 말만 번드르르했지 싸움은 영 꽝인 사람이니, 장한으로 길막하고 있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테죠. 오. 오래간만에 완벼칸 플랜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완벼칸 3단 플랜은 범증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범증은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는 법이라며, 유방처럼 위험한 인물은 옆에 바짝 붙여 두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더구나 한중은 제국의 수도로 써도 손색없는 노른자 땅인데 이 땅을 유방에게 주다니 큰일 날 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범증은 구구절절 맞는 말로 항우를 설득했지만, 항우는 애초에 남의 말 귀담아듣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아예 유방이 군사를 일으킨다면, 이런거 저런거 따질 필요없이 바로 달려가 단칼에 베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유방은 항우의 플랜대로 서쪽 끄트머리인 한중으로 쫓겨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렇게 왼쪽, 별 볼일 없는 자리로 쭈우우욱 밀려나는 것을 좌천(左遷)이라고 합니다.


어쨋든, 죽을 자리에서 또 빠져나온 유방은 항우 마음 바뀌기 전에 서둘러 한중으로 튀었습니다. 그런데 한중으로 통하는 산길은 생각보다 말도 안되게 험했습니다. 유방의 3만의 병사들은 좁고 험한 산길에 기가 질려,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유방을 따르던 인재들 역시 하루 자고 일어날 때마다 눈에 띄게 줄고 있었구요. 이 막막한 산골 깡촌에서 유방이 다시 일어서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한중에 도착할 무렵에는 병사들은 거진 다 도망쳐서 한 줌만 남고, 인재들 역시 가을 날 나뭇잎처럼 태반이 사라져 있었죠.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떠난 이들 중에는 고향에서부터 함께했던 소하도 있었습니다. 유방은 결국 소하까지 떠났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전에 없이 큰 역정을 내며 속상해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떠났던 소하가 유방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유방은 반가운 마음과 서운한 마음을 반반 스까서 너는 왜때문에 도망갔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하는 대장군을 맡겨도 아깝지 않은 인재를 겨우 찾았는데, 그 사람이 떠난다는 소식에 얼른 쫓아가 다시 데려오는 길이라고 답했습니다. 기분이가 크게 업된 유방은 현기증 나니까 당장 그 장수를 델꼬 오라고 재촉했지요. 소하는 피부가 뽀얗고 야리야리한 샌님을 소개하더니 '한신(韓信)'이라고 했습니다. 시꺼먼 8척 장신의 전신그뉵 테토남을 기대했던 유방은 얘가 뭐 항우는커녕 닭이나 제대로 잡을 수 있겠나 싶었지만, 훗날 한신은 정말로 항우를 잡아내며 소하의 칼 같은 눈썰미를 증명했습니다.


한나라의 대장군이 된 한신은 원래 항우 밑에 있던 인재였습니다. 창을 잡는 집극랑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낭중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무튼 크게 쓰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범증은 대번에 한신의 재능을 알아 보았죠. 항우를 찾아간 범증은 한신은 비범한 인물이니 크게 쓰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신은 여러 면에서 항우의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항우가 딱 잘라 거절하자, 범증은 그럼 차라리 죽여서 후환이라도 없애자고 다시 권했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한신이나 유방같은 넘들은 꼭 이리나 승냥이 같은 자들이라 한 다스가 덤벼도 무섭지 않다며 범증의 조언을 흘려듣고 말았습니다. 범증은 이리가 승냥이라며, 힘만 쎈 애새끼랑 천하의 일을 꾸미자니 뭐 하나 되는 게 없다고 긴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한편, 한중에 도착한 유방은 이곳이 생각보다 몹시 갠춘한 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험준한 산으로 삥삥 둘러 있길래 이제 난 망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안쪽의 넓은 분지에서는 온갖 물산이 다 나왔습니다. 땅도 비옥해서 농사도 잘 되고, 농사가 잘 되니 사람도 많았습니다. 말이나 소, 양과 같은 가축들도 차고 넘쳤구요. 덕분에 유방은 군사도 늘어나고, 군량도 늘어나고, 재물도 늘어났지요. 가만히 앉아서 상황을 꼼꼼히 다시 셈해 본 유방은 이 정도면 항우랑 제대로 한 판 싸워 볼 만하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중에서 빠져나가려면 우선 길목을 틀어막고 있는 장한부터 쳐야 했지요. 항우랑 죽자 사자 싸우다가 진나라가 배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항우에게 항복했던 장수. 진나라의 마지막 명장이라는 바로 그 장한입니다.


명수잔도 암도진창 | 낮에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다 밤을 틈타 진창을 넘다.

잔도는 절벽 양쪽을 잇는 다리를 말합니다. 한중에서 중원은 위험천만한 잔도 하나로 연결돼 있었는데 유방은 한중으로 들어가며 여기에 불을 놓아 버렸습니다. 불타는 잔도를 보며, 사람들은 항우에게 쫄린 유방이 중원으로 다시 나올 생각을 아예 접은 것이라고 짐작했었죠. 이 사건으로 유방의 가신들은 절망하고, 항우의 가신들은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유방이 중원으로 나오려 한다는 기묘한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게 머선 일이지 싶었던 장한은 세작들을 풀어 한중의 상황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만 유방이 한신이라는 뽀솜이를 새로 대장군에 앉혔는데, 그 뽀솜이가 겨우 군사 몇백을 풀어 잔도를 재건하느라 낑낑대는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대충 생각해 봐도 고작 군사 몇백으로는 잔도를 다시 잇는다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받은 명이 있으니 장한은 잔도 공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눈여겨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건 벼락출세한 뽀솜이의 허무맹랑한 계획이었습니다. 이렇게 장한이 잔도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한신의 진짜 군사들은 밤을 틈타 진창의 샛길로 돌아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한중을 모두 빠져나온 유방의 대군은 곧바로 장한의 옆구리를 들이쳤습니다. 잔도 쪽만 바라보던 장한은 제대로 허를 찔렸지만 곧바로 상황을 수습하고 우주방어 모드를 켠 채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유방이 쫄렸습니다. 장한도 장한인데 괜히 시간 끌다가 항우까지 달려오는 날에는 유방은 진짜로 큰일 납니다. 항우와 장한의 협공을 맞는다면 천하는커녕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울겁니다. 하지만 항우는 저 멀리 동쪽 끝자락 팽성에 있었습니다. 제국의 중앙인 함양 근처에 수도를 두라고 가신들이 그렇게 얘기를 했지만,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 부귀함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며 부득부득 팽성을 수도로 삼았었죠.


그 냐옹 소리의 첫 번째 대가는 항우가 아니라 장한이 치렀습니다. 유방의 대군에 홀로 맞서던 장한은 성이 떨어질 것이 확실해지자, 다이죠부가 두 번이나 주인을 바꿀 수는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렇게 유방은 무사히 한중을 빠져나왔고, 한신은 자신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가뿐하게 증명했습니다. 유방이 첫 승리에 희희낙락하는 동안, 장한이 죽었다는 소식은 동쪽 팽성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이야기

지도는 제미나이 님이 열일해 주셨구요..

지도 가운데 푸르딩딩한 무한평지가 흔히 말하는 중원입니다. 전국시대의 초나라는 그 아래 짜잘짜잘한 산들이 쭉 깔린 곳이구요.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지금 유방이 서 있는 땅 북쪽에...대충봐도 뭐 없어 보이는 험한 땅입니다.


전국시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묘하게 중원에 있는 나라들이 북서쪽 진나라, 북쪽 진나라, 남쪽 초나라, 북동쪽 연나라 등등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나오곤 합니다. 걔네들은 싸움이나 잘하지 문화적으로는 뭐 개뿔도 읎어..이런 느낌이죠. 글로 볼 때는 왜때문이지 싶은데, 입체 지도로 보고나면 이해가 확 갑니다. 농사짓던 시절에는 저기에 진짜로 뭐.. 많이 없었겠구나..아..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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