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사자.. 이자성어 이야기
보리(麥)를 가득 실은 배(舟). 살다 보면 누구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시 털고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주저앉기도 하죠. 이때 무너지는 건 큰 어려움을 겪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위로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송나라 때 재상 범중엄에게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범중엄은 아들을 시켜 500섬의 보리를 실어 오게 했는데, 아들은 어쩐 일인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범중엄이 자초지종을 묻자, 큰 곤경에 처한 친구를 만나 보리를 싣고 오던 배(麥舟)를 그에게 주었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범중엄은 오직 아들의 선행을 칭찬할 뿐, 재물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에헴. 잘난 척을 위한 한 걸음 더..
범중엄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탓에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학문에 정진해 재상이 되었는데, 올곧은 원칙으로 다스리되 어려운 백성들을 잘 보살피는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어느 날, 범중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아들 범순인에게 500섬의 보리를 싣고 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올라온 아들을 보니 맨몸에 빈손입니다.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한 범중엄이 아들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보리를 싣고 수양으로 오던 범순인은 단양에 이르러 친구인 석만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석만경은 부모님과 아내를 한꺼번에 잃었는데, 형편이 어려워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범순인이 배와 배와 실려있던 보리 전부를 내준 것이죠. 아들의 그릇 역시 자신 못지않다는 것을 알게 된 범중엄은 그저 아들의 선행을 칭찬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아버지를 잘 보고 자란 범순인 역시 훗날, 관문전 태학사에 이르는 큰 벼슬에 올랐습니다.
부의(賻儀)는 상을 당한 집안에 돈이나 물품을 보내는 일을 말합니다. 조의(弔意)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는 것을 말하죠.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것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통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떠난 보내는 일은 항상 어렵잖아요.
덧) 재상 범중엄은 989년생. 술꾼으로 이름난 문인 석만경은 994년 생이니까, 5살 차이 나네요. 자기 친구를 도왔다는 게 아니라, 아버지 친구를 도왔습니다..라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합니다. 근데 뭐.. 서로 뜻이 잘 통하면 아버지뻘이랑도 친구 먹을 수 있죠 뭐... 술 친구가 나이 따진답니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