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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Oct 05. 2024

얼라이드 | Allied

겁도 없이 써보는 영화 리뷰

쉿! 적들이 듣고 있어요..

브래드 피트와 마리옹 꼬띠야르 주연의 첩보물. 전반부는 두 스파이의 활약과 사랑에, 후반부는 스파이 의혹으로 인한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원래도 예쁜 마리옹 꼬띠야르가 2시간 내내 온갖 종류의 매력을 뿜어내며 화면을 휘어잡습니다. 영화 들여오면서 제목 번역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Allied.. 를 번역하면 대략... 동맹을 맺은, 한 편 먹은... 정도일 텐데, 뭔가 우리말로 딱 뿌러지게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아래 포스트 전체가 스포일러입니다.



1942년의 모로코

열강의 침략에 계속해서 시달리던 모로코는 결국 1912년에 스페인 보호령과 프랑스 보호령으로 쪼개져 식민지가 됩니다. 이후 2차 대전이 터지고,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모로코 역시 독일의 영향 아래 들어갑니다.


그리고, 1942년의 영국

1942년은 영국도 힘겹게 버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난 이후, 영국은 독일에 대한 적개심이 최고조에 이릅니다. 이 당시의 영국은 매달 백만 톤 단위로 보급선이 격침되고, 이집트와 이탈리아 전선도 모두 꼬인 데다, 믿고 있던 미쿡마저 진주만에 크게 얻어맞은 상태였습니다. 프랑스를 찔러보려던 디에프 상륙작전은 시작부터 시원하게 말아먹었구요.


한창 독일은 승승장구하고 영국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던 때라, 영국에 숨어든 독일 스파이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스탠 기관단총 | Stan Gun

저기. 총 그렇게 잡으면 손 다친다고 합니다.

극 중에서 마리안느가 영국제 기관총을 다루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맥스가 의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기관총이 뭐 한 두 종류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싶었는데, 당시의 기관총은 스탠 기관총 하나였다네요.


전쟁이 터지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은 부랴부랴 만들기 쉽고 값싼 무기를 왕창 뽑아서 급한 대로 무장을 했습니다. 이걸 프랑스에도 막 뿌렸기 때문에 1942년 무렵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은 다 이거 들고 싸웠다는군요. 워낙 급하게 만든 물건이라 정말 더럽게 안 맞아서 '적을 향해 총알을 뿌린다..'라는 느낌으로 쐈다고 합니다..



메디신 햇 | Medicine Hat

캐나다의 실제로 있는 도시. (응? 진짜) 사스카츄완(Saskatchewan) 강이 흐르는 조용한 소도시로 넓은 농지와 천연가스가 유명하다는군요. 이름의 어원은 원주민 주술사들이 쓰던 모자인 사미스(Saamis / Sa-Mus). 이 사미스를 다시 영어로 옮긴, 치료사들의 모자 - 메디신 햇(Medicine Hat)이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캐나다에서 상당히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데, 무엇보다 날씨가 좋고 일조량도 많은 도시라고 합니다.



카나다와 뿌랑스어

카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를 공용어로 사용합니다. 애초에 영국권 식민지, 프랑스권 식민지로 출발부터가 달라서, 아직까지도 퀘벡 같은 곳에서는 분리 독립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는군요. 이게 그냥 지역들 간의 자존심 싸움 같은 게 아니라, 같은 나라 사람들이 서로 말이 다른 거라서 문화적 이질감을 심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고위 공무원이나 총리들은 영어와 프랑스어에 모두 유창하며, 프랑스 언어권 지역에 대해 정책적 배려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프랑스 사람인 마리안느는 맥스의 억양을 듣고 대번에 퀘벡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마리안느가 눈썰미가 좋고 판단이 빠른 사람임을 강조하는 장치인가 보다 했는데, 실제 퀘벡의 뿌랑스어는 본토의 프랑스어와 억양이 상당히 다르다고 하네요. 같은 단어가 다른 뜻으로 쓰이거나, 단어 자체가 바뀐 경우도 있어서 처음 들으면 대화에 버퍼링이 걸린다고 합니다…(제주도 사투리나 오리지널 경상도 사투리 들을 때 버퍼링 걸리는 딱 그 느낌일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 좀 배운 독일인은 그냥 넘어가도, 프랑스인이 들으면 바로 알아챌 수 있겠죠. 억양이라는 게 몇 주 연습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라서 마리안느는 맥스의 발음을 연습시키는 한편, 남편 역할의 맥스를 과묵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맥스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해야 할 상황이 되면 심심하다며 냉큼 가로채 갑니다.


모로코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도가 재미있습니다. 화면을 반으로 나누어 왼쪽에는 마리안느, 오른쪽에는 맥스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소품들이 확연하게 나뉘어 보입니다. 마리안느의 소품들, 특히 선글라스를 끝으로 맥스와 마리안느 사이에 빈 공간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배경까지 함께 보면, 그 빈 공간 사이에 독일군 장교가 마리안과 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마리안느와 독일군 장교, 그리고 맥스가 화면을 반으로 나누어 대립하고 있는 장면이자, 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맥스 바탄

Max Vatan

저기요. 여보님? 레지스탕스라면서요?

뿌랑스어에 능통한 캐나다군 장교. 빠리지앵 광산업자가 위장 신분인데 아쉽게도 퀘벡 억양이 남아 있습니다. 대사 암살 임무를 맡아 모로코에 잠입하여 마리안느 부세주르와 접선, 부부로 위장합니다.


레지스탕스인 마리안느가 영국 기관총의 안전장치를 못 풀자 맥스는 마리안느를 의심하고, 이에 발끈 한 마리안느는 맥스를 도발합니다. 대화를 주고받을 때마다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놓는 마리안느에게 맥스는 임무가 우선이라며 정색하지만, 마리안느는 오히려 시선 처리를 못하며 당황하는 맥스를 놀립니다. 뭐..맥스..이 복 받은 놈..


포기해라 닝겐. 저항은 부질없다.

군인으로서의 맥스는 냉철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며 전투감각도 상당히 좋습니다. 독일 방첩 장교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격투 능력에, 낙하산 공수는 기본이고, 조종사 출신인지 직접 비행기도 몰고 다닙니다. 대인 관계도 원만해 보이며, 특히 상관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된 마리안느가 이중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방첩부대 소속의 상관에게 대들었다가, 금방 상황을 인정하고 수습하기도 하는 유능한 장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 마리안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마리안느 부세주르

Marianne Beauséjour

마리안느와 맥스의 첫 만남. 정말, 너무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쾌활하고 파티를 즐기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발군의 사격 실력에 그림까지 잘 그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아노를 치지 못합니다... 사실 그녀는 독일의 스파이입니다. 모로코 대사 암살까지가 임무였는지, 아니면 맥스를 포섭하는 것까지가 임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부로 위장해 함께 활동하던 마리안느는 맥스를 정말로 사랑하게 됩니다. 함께 영국으로 들어온 마리안는 맥스와 결혼한 뒤, 독일 쪽과는 일체의 연락을 끊고 맥스의 아내로 남습니다.


1년 뒤, 폭격이 한창인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건물 밖으로 옮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와중에 진통을 시작한 마리안느는 남편 맥스에게 순수한 진심을 전달합니다. 탄생과 죽음이 엇갈리는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맥스와 마리안느는 갓 태어난 딸아이를 함께 안습니다. 아마 그 순간이 맥스와 마리안느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겁니다.


화양연화 (花樣年華)

하지만. 독일 스파이들이 마리안느를 못 찾을 리가 없죠. 독일 정보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딸 안나를 인질 삼아 마리안느를 협박합니다. 궁지에 몰린 마리안느는 영국군의 정보를 독일에 송신하고, 이 통신이 영국 첩보부에 그대로 감청되면서, 마리안느는 영국 내 독일 스파이 용의자로 떠오릅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일이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곧 자신을 덮칠 운명을 예감한 마리안느는 '내일은 딸 안나와 함께 최고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자'며 주말 나들이를 준비합니다. 맥스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고, 마리안느 역시 맥스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부로 지낼 수 있는 있는 날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오늘, 혹은 내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안나의 첫걸음마를 보며 함께 기뻐하는 맥스와 마리안느

일요일, 나들이에 나선 맥스와 마리안느는 안나의 첫걸음마에 기뻐합니다. 이 행복해 보이는 나들이 뒤로는, 지난밤에 떨어진 독일 폭격기가 기울어진 들판 위에서 연기를 뿜고 있습니다.


며칠간의 조사 끝에, 마리안느가 독일의 스파이임을 확신한 맥스는 마리안느를 심문합니다. 자신을 위해 '라 마르세예즈'를 연주해 달라고. 한동안 망설이던 마리안느는 조용히 피아노 건반을 덮습니다. 마리안느는 피아노를 잘 쳤다는 얘기, 자신도 들었다며 순순히 인정하는 아내. 배신감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맥스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묻습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듣고 싶습니다.

잠자리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약간의 곁눈질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두 스파이가, 자신을 사랑한 것은 진심이냐고 말로 물어봅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도 알고 있던 아내의 대답을 듣습니다.


마리안느가 사실대로 털어놓았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영국과 독일 모두 녹록지 않은 국가들입니다. 영국에서는 그 즉시 이중 스파이로 이용할 계획을 세울 것이고, 독일에서는 한 번 숨었던 전적이 있으니 언제든 버릴 패로 굴릴 겁니다. 전쟁이 끝나도 목숨 부지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일 테구요.


마리안느의 표정에 그녀의 결심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른 나라로 함께 망명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봐도, 영국과 독일을 적으로 돌리며 이중 스파이와 영관급 정보 장교를 받아줄 나라가 있을까 싶습니다. 원자폭탄이라도 만들 수 있는 물리학자라면 또 모를까.. 빠져나갈 길이 안 보입니다.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마리안느는 이미 결심을 굳혔습니다.





프랭크 헤슬롭

Frank Heslop

이때 마상을 크게 입은 대령은 훗날 교수가 되어 셜록을...

맥스를 신뢰하고 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상관. 맥스의 명령 위반을 경고하고, 맥스가 마리안느를 협박한 독일 스파이들을 다 소탕했다고 항변하자, 체포해서 취조했어야 한다고 꾸짖습니다. 능력도 있고 부하도 아끼는 상관인데, 복잡한 일에 휘말려서 이 양반도 참 고생이 많겠다 싶어요.. (왜 엉뚱한 인물에 감정 이입이...)


맥스를 살리기 위해 자살을 택한 마리안느와 맥스를 위해, 부하들에게 맥스가 마리안느를 직접 사살했다고 증언할 것을 명령합니다. 맥스의 계급과 직무를 생각해 보면, 모가지 내놔야 할 일이겠지만… 내막을 모두 아는 상관으로써, 그 정도는 융통성은 발휘할 수 있죠. 맥스가 진 짐이 너무 커서,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 하는 인간적인 상관입니다.





하버

Hobar

인광석 사업을 하신다구요. 화학식 좀 적어 주시겠습니까?

이분은 독일군 방첩대 장교 전담 배우인가 싶습니다. 바스터즈에서는 한스 란다 대령의 포스에 밀려서 조명을 덜 받았죠? 인광석 사업을 하는 광산업자로 위장한 맥스에게 인광석의 화학식을 써 보라는 요청을 하며, 약간 로맨스 코미디 분위기가 나는 초반부를 대번에 스릴러로 바꿔 버립니다.


호기심에 찾아봤더니, 인광석은 퇴적암, 정확하게는 동물의 똥이 퇴적돼서 만들어진 광물이라 화학식을 적을 수 없다고 하네요. 굳이 적으려면 가장 주요한 성분인 인회석(Apatite) - Ca5(PO4)3(F,Cl,OH) 이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하버는 맥스가 적어 준 화학식을 보고 묘하게 만족스러워합니다. (응? 맥스는 대체 뭘 적어 준거야?) 결말과 이어서 생각해 보면, 뭘 적어 줬어도 통과시켰을 겁니다. 아마,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는 조롱이었겠죠.





SOE 장교

Special Operations Executive Officer

이 분.. 정말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보입니다.

모든 나라의 스파이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전쟁 시기라 그들을 훈련시키고 관리하던 방첩 조직도 그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SOE는 정찰, 도청, 정보 수집, 방첩, 암살 등등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던 영국의 정보기관으로 전쟁 때는 그 규모가 1,3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초법적인 기관이자 첩보 조직이다 보니 SOE 소속 장교는 중령인 맥스의 상관 프랭크보다 더 계급이 높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럼.. 벼.. 별?)


그리고 그 장교 역시 이런 종류의 심문과 시험에 이골이 난 듯, 맥스의 반발에 별다른 동요도 없이 조용히 권총이 든 서랍을 열었다가 역시 소리 없이 닫습니다. 그 대상이 모로코 암살을 성공시킨 중령이든 뭐든, 스파이로 판명되면 가차 없이 처리할 사람임을 암시합니다.





폴 댈라메어

Paul Delamare

이 여자가 마리안느가 맞아? 맥스는 필사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조심성 없는 인물과 레지스탕스를 꾸렸을까 싶은 인물. 술 먹고 사고 쳐서 유치장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는 맥스는 다짜고짜 마리안느에 대해 묻습니다. 폴이 기억을 더듬어 마리안느는 쾌활하고 사교성이 좋으며 그림을 잘 그린다고 대답하자, 맥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그러나 폴은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마리안느는 피아노를 아주 잘. 친. 다. 고. 프랑스가 독일 손에 떨어졌을 때, 독일군들이 우글거리는 카페에서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쳤다고. 그러나 맥스는 마리안느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빠와 많은 일들을 함께하며 잘 자라 준 안나

마리안느가 딸 안나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엄마의 진심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맥스는 안나를 잘 키워 달라는 마리안느의 부탁을 잘 지킨 것 같아 보입니다.


이제 나이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 해진 맥스에게, 다 큰 딸 안나는 스스럼없이 아빠의 팔짱을 끼고 함께 목장을 거닙니다. 맥스가 말하던 메디슨 햇이거나, 아니면 메디슨 햇만큼 마음을 편히 둘 수 있는 곳이겠죠.



이 오붓한 부녀의 집 한편에는

행복했던 시절

마리안느와 맥스의

온전한 결혼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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