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써보는 영화 리뷰 -
1963년. 남북전쟁으로 노예 제도가 폐지된 지 근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부는 흑인이 여행하기에 쉽지 않은 지역입니다. 흑인을 멸시하는 풍조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대부분의 호텔들은 흑인 여행객의 투숙을 거부하며, 지역에 따라서는 통행까지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셜리 박사는 굳이 힘들고 돈 안 되는 남부 투어를 계획합니다. 그리고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를 뽑기 위해 토니 ”립“ 발레롱가의 면접을 봅니다.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아래 내용 전부가 스포일러입니다.
1963년 앨라배마 대학의 흑인 학생 등록 거부 사건
미쿡 교육계의 흑백 분리는 생각보다 늦은 1954년에야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도만 없어졌을 뿐이지, 사회적인 차별과 분리는 이후에도 공공연히 지속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1963년, 두 명의 흑인 학생이 앨라배마 대학교에 등록하자, 조지 윌리스 주지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핑계 삼아 학교에 바리케이드를 칩니다. 아예 진입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이죠. 그러자 그 꼬라지를 봐줄 생각이 1도 없던 케네디 대통령은 "행정명령 11111"을 발동해 주지사의 군 통수권을 연방으로 이전하고, 주방위군을 보내 길을 엽니다.
괜히 흑인 학생들 길막하다가 방위군 사령관을 만난 주지사는 바로 깨갱하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군 통수권 이전 -> 디질래? 라는 메시지입니다.) 영화에서 마을 보안관이 주방위군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앨라배마 등록 거부 사건을 말합니다.
그린 북 | The Negro Motorist Green-Book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을 위한 안내 책자이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흑인 여행자들은 괜히 시비 거는 백인들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을 꺼렸다고 하네요. 땅덩이 넓은 나라라, 한참 타고 가야 하는데 옆자리 백인이 깐족대면 사람 환장하겠죠.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출판했으니,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3년에는 나름 30년 전통의 가이드 북인 셈입니다. 커버를 보면 호텔, 서비스 센터, 레스토랑, 나이트 클럽 등등 여행에 필요한 업체 정보들을 알차게 수록한 것 같습니다. 1940년판 가격은 25센트. 같은 시기 맥도날드 햄버거 가격 15센트에 견줘보면 꽤 괜찮아 보입니다. 다만, 그린북에 실린 호텔들은 말이 호텔이지,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곳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 Italian American
미쿡 이민 초기, 영국-개신교계 이민자들은 자신들을 미국 ‘네이티브’로, 그 외의 이민자들을 ‘외지인’으로 구분했습니다. 어느 정도 지식인의 성향을 띠고 있던 이들 개신교계 이민자들은, 뭐랄까... 재산도 좀 있고, 교양도 좀 있고, 무엇보다 청교도적인 나라를 건설해 보려는 포부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가톨릭을 베이스로 하고 있었습니다. 소란스럽고, 가부장적이며, 영어까지 서툴다 보니, 이탈리아계와 네이티브들은 여기저기서 부딪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음주에 관대한 생활 문화도 두 집단의 갈등을 부추기는데 한몫했다고 하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티브들은 노골적으로 이탈리아계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계는 주로 소상공업이나 요식업, 소규모 서비스업 같은 분야로 진출하거나, 아니면 아예 도박이나 매춘 같은 범죄 쪽으로 세를 불리며 자의 반, 타의 반 점점 더 배타적인 집단이 되어 갑니다.
오늘날에도 “이탈리아계”라고 하면 자신들끼리만 똘똘 뭉치고, 가부장적에, 소란스럽고, 주로 소상공업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고 하네요. ‘당신보다는 내가 더 흑인과 가깝겠다’는 토니의 항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물론 셜리는 어이없어하죠.
사실 한발 떨어져서 보는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네이티브‘라고 주장하는 영국 - 개신교계 이민자들의 텃세부터가 살짝 갸우뚱합니다. ‘우리가 먼저 와서 자리 잡았어. 우린 가톨릭 싫어라 해..’ 그래. 뭐.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이게 아무리 봐도 민족 갈등이라기보다 계급 갈등에 가까워 보입니다. 솔직히 “네이티브”라는 용어도 계속 맘에 걸리구요. 니네가 네이티브면 거기 원래 살던 인디언들은 대체 뭐라 불러야 되냐. 오리지널 퓨어 네이티브? 앵간히들 해라 좀..
피아노 박사 | Doctor of Piano
돈 셜리는 자신의 음악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크게 상심해 잠시 음악을 접고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박사 학위는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으로 받았구요. 물론, 결국엔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극 중에 토니와 아내 돌로리스가 피아노 연주로 박사를 받을 수 있느냐고 궁금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언제부터 있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1952년에 개설되었네요.
Northwestern University, University of Michigan, Eastman School of Music에 박사 과정이 개설되었는데, PhD (Doctor of Philosophy)는 음악사나 작곡 계열, DMA (Doctor of Musical Arts)는 연주 계열이라고 합니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 Kentucky Fried Chicken
우리는 매주 치느님의 은총을 찬양하기 바쁘지만, 미쿡은 후라이드 치킨에 대한 이미지가 우리와는 좀 다르다네요. 노예 제도가 남아있던 시절, 흑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육류는 랍스터나 (응?) 자투리 닭고기뿐이었고, 이를 면실유에 빠르게 튀겨낸 음식이 후라이드 치킨입니다. 당시 지주들은 주로 닭 가슴살 로스트를 선호했다네요. (응?)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은 하얀 양복 샌더스 아저씨가 켄터키주의 국도변에 차렸던 치킨집에서 시작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프랜차이즈입니다. 63년이면 이미 꽤 유명세가 있었지만, 남부 흑인들의 음식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남아있었습니다. 이런 풍조는 현대까지도 이어져서, 후라이드 치킨 자체가 흑인에 대한 비하나 멸칭으로 쓰이기도 한다는군요.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짓 했다가는 바로 사회생활 끝납니다. 얄짤없어요.
Dr. Donald Walbridge Shirley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각종 타이틀을 갈아치우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음악가입니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시대에 백인들의 문화를 연주하는 흑인 음악가가 설자리는 좁습니다. 음반사에서는 클래식 대신 좀 더 대중적인 음악을 권유하고, 백인 중심의 상류 사회는 아예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습니다.
백인 사회와 흑인 사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셜리 박사는 늘 경계선 언저리에서 술 한 병을 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랩니다. 천재적인 재능과 열정은 그에게 부와 명성은 가져다주었으나, 친구와 가족까지 데려다주지는 못합니다. 셜리 박사의 외로움을 성격 탓으로 몰아가기엔 시대와 상황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공연은 오직 최고급 라인의 피아노만 사용합니다. 음악가가 악기에 신경 쓰는 건 까탈스러운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평소에도 음악 자체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각별해서, 피아노 위에 술잔을 올려놓고 담배를 문 채 연주하는 음악가들에 대해, 본인부터가 음악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예술가로 대우받기를 바라는 것은 당치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을 일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아마 그 자리에 설 때까지,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림짐작해 봅니다. 뭐랄까..정상에 선 사람들 특유의 허세와 여유가 없어서, 보는 내내 맘이 짠해요..
잘 차려입은 흑인은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시비의 대상이 됩니다. 그저 술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던 셜리 박사에게 크로켓을 권하던 한 흑인은, 셜리 박사가 거절하자 옷 망가질까 봐 그러느냐며 비아냥거립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셜리 박사를 보고 괜히 심사가 뒤틀린 거죠. 자리를 피해 간 동네 술집에서는 백인 건달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흠씬 두들겨 맞습니다.
건달들을 윽박질러 셜리 박사를 빼낸 토니가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한 소리 하자, 셜리 박사는 어디인들 다르겠느냐며 되받아 칩니다. 같은 미국 땅이지만, 셜리 박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토니가 사는 세상보다 훨씬 싸늘하고 위협적입니다.
백인 사회에서는 멸시의 대상이고, 흑인 사회에서는 배척당하며, 충분히 남자답지도 못한 나는 어떤 사람이냐며 소리치는 셜리 박사를 보며, 그제서야 토니는 자신이 말을 함부로 했음을 깨닫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철저히 외톨이인 셜리 박사를 다시 차에 태운 뒤, 떠벌이 토니는 조용히 운전대를 잡습니다.
어디에나 밑바닥부터 인성이 뒤틀려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웃으면서 비아냥거리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사람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꼭 한둘씩은 있죠. 이런 부류의 백인들이 셜리 박사 같은 재능 있는 흑인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혔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제대로 위로받을 곳도 없었을 셜리 박사는 그 울분을 계속해서 안으로 삼켜야 했을 겁니다.
저놈 새끼의 이죽거림에 결국 폭발한 셜리 박사와 토니는 마지막 공연을 때려치웁니다. 묵은 체증이 한 방에 쑥 내려가는 듯한 통쾌함이 터지죠. 물론, 그 모욕을 감내하고 공연을 끝내는 것이 더 큰 성취이자, 성숙한 지식인의 판단이었겠지만. 뭐, 애당초 사람한테 사람 이상의 것을 바라면 안 됩니다. (이게 의외로 승화도 잘 안되고, 무엇보다 그 과정이 정신 건강에 몹시 해로워요.)
어수선하고 허름한 술집 한구석, 마지막 공연을 때려친 셜리 박사는 스타인웨이와는 사뭇 달라 보이는 낡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피아노에 올려놓은 술잔을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잠시 후, 폭발하듯 터진 즉흥 연주로 무대를 휘어잡은 셜리 박사는 모처럼 신나고 흥겨운 공연을 펼쳐 보이며 활짝 웃습니다. 흑인 밴드가 무대에 함께 오르고, 흑인 관객들이 파티를 벌이는 한가운데, 어깨에 힘이 빠진 셜리 박사와 덩달아 신난 토니는 늦은 밤까지 흥을 더합니다.
Frank Anthony Vallelonga Sr.
품위가 좔좔 넘치시던 곤도르의 왕께서 동네 아저씨마냥 후덕하게 나오셔서 깜딱 놀라게 되지만, 영화 시작하고 딱 3분 지나면 아라고른은 사라지고 토니 립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상당히 수완 좋은 사람으로 늘 법의 테두리에 살짝 걸쳐 있습니다. 클럽을 찾은 유력가의 모자를 슬쩍 빼돌리고는 마치 자신이 되찾아 온 것처럼 연출해서 눈도장을 뙇 찍거나, 소화전 옆에 주차를 하고 소화전에는 쓰레기통을 덮는 몹쓸 생활 신공을 보여 줍니다. 대충 어떤 냥반인지 감이 확 오죠?
의외로 아내 돌로리스에게는 고분고분하니 말 잘 듣는 남편입니다. 자주 편지하라는 아내의 당부에 양말 빨아서 테래비에 널었다는 감동적인 사연을 적어 보내기도 하구요. 노상 욕을 입에 물고,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여보야님은 무서운가 봅니다.
기초 상식이 좀 많이 부족하고 맞춤법도 자주 틀리지만, 배움이 짧다 뿐이지 머리는 상당히 좋습니다. 편지 쓰는 법 두 달 남짓 배우고는 로맨틱한 문장들을 줄줄 뽑아내는 걸 보면 정말 문학에 재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길바닥에서 잔뼈가 굵다 보니 술집 건달들은 말로 윽박질러 기선을 제압하고, 경찰들은 살살 달래서 뇌물로 구워삶으며, 진짜 총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허공에 대고 한 방 쏴주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토니와 셜리 박사의 관점과 대응은 상당히 다릅니다. 아무래도 백인인 토니 쪽이 좀 둔감하죠. 셜리 박사를 대접한다며 만찬 메뉴로 후라이드 치킨이 나오자, 토니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치킨을 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후라이드 치킨의 유래를 생각하면 조롱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무례이고, 셜리 박사 역시 당황하지만, 토니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토니가 얼마나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판단이 칼 같은 사람인지 계속 보아왔으니, 토니가 정말 사심 없이 기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묘하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시골 마을의 경찰관은 셜리 박사의 차를 세우고 작정한 듯 이죽거리며 시비를 겁니다. 이탈리아계라서 흑인 밑에서 일하느냐는 빈정거림에 토니는 그대로 주먹을 날리고, 토니와 셜리 박사는 나란히 철창신세를 지게 됩니다. 셜리 박사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토니를 나무라고, 비로써 토니는 셜리 박사의 품위가 단순히 몸에 밴 교양이 아니라, 흑인 차별에 대한 저항이자 항변의 수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투어가 끝나갈 무렵, 셜리 박사는 지쳐 잠든 토니를 집에 내려주고, 카네기홀로 돌아갑니다. 혼자 지내고 있을 셜리 박사가 계속 마음에 걸리던 토니는 ‘검둥이와의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보는 친척들에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정색을 합니다. 그리고 셜리 박사가 집으로 찾아오자, 누구보다 반갑게 셜리 박사를 맞이합니다. 흑인 배관공들이 사용하던 컵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서 버리던 토니가 셜리 박사를 반갑게 맞이하던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돈 셜리 박사와 토니가 미쿡 남부를 여행하는 동안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 이탈리아계에 대한 무시,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 공권력의 횡포 등, 하나같이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을 일상적인 톤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극적인 연출 없이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현실감이 느껴집니다.
사람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이야기라, 간만에 편안하고 재미있게 잘 보았지만, 미쿡에서의 평가는 좀 더 입체적인 것 같습니다. 백인들의 성찰과 사과는 빼진 채, 조용한 화해로 끝나는 결말에 반발하는 기류도 있는 것 같고, 실제 셜리 박사와 토니에 대한 묘사에서도 진실 공방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논쟁과는 별개로, 영화 속 셜리 박사에게 마음 둘 친구가 생겼다는 점과, 시골 마을의 허름한 술집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토니는 뭐, 예전에도 자기 앞가림 잘하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잘하고 살겠죠.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