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외롭히다.

10년만의 지리산 종주

by 불은돼지

20대의 지리산

지리산, 겁도 없이 올랐던 때가 대학교 1학년때였다.

자신이 종주를 한것 같은 유사 경험담을 선배들은 여자들 앞에서 읊어 댔고 그 남성성이 난 부러워졌다.

고독한 남성의 산행, 그것도 지리산이니까 말읻. 예나 지금이나 심각한 중2병이던 나는 못 갈것 없다고 생각했다.


딴에는 자신도 있었다. 체력도 좋았고 소백산이니 속리산이니 하는 국립공원들을 제법 다녀본 경험이 있었다. 이제는 지리산만 다녀오면 나의 남성성은 레벨업이 될 것 같았다.

평생 쓸일 없을 것 같던 70리터 배낭에 침낭과 기름 버너와 먹을것과 옷가지를 챙겨 넣으니 금세 20kg이 되었다. 딴에는 그것도 부심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무작정 떠났다. 지리산 종주를 혼자 간다는 중2 증상과 함께 그대의 애틋한 환송을 받으며 무슨 전투를 앞둔 군인처럼. 친애하는 나의 외삼촌은 산청 성심원에서 있을 때였고 하루를 묵어 진주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중산리로 갔었다.

다녀본 산 중에서 가장 가팔랐다. 배낭이 무거워 내려서 물을 마실 엄두도 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나를 앞질러가는 반면에 내 발걸음은 지박령의 저주를 받은 듯 당췌 움직일 줄 몰랐다. 겨우 도착한 장터목 산장에서 하루를 묵고 새벽 일출을 보러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로 바로 내려왔다.

그렇게 한번 마주한 지리산의 무용담을 외삼촌과 소주를 마시며 리허설을 했다.

개강과 함께 '내가 왜 혼자 지리산을 가게 되었는가? 홀로 등산하는 존재의 참을수 없는 가벼움' 정도의 느낌으로 가을학기 내내 읊어 댈 수 있었다. 겨울방학 쯤이 되어서 설경을 보고 싶었고 또 겨울 지리산에서 종주를 하긴 커녕 밤새 쌓인 눈에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백무동으로 바로 내려왔다.


유사 경험은 기억과 더해져 사실 보다 더욱 튼튼한 구라가 될 수 있다.

군 생활 내내 지리산 종주에 대해서 떠들어 댔었지만 결국 종주를 해야 겠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중2병만 있는 것은 아니였으니 그랬지 싶다. 나름 잘 걷는 펜대(행정병)여서 급속행군 측정에도 불려 나갈 만큼 다리가 튼튼해졌고 그렇게 제대를 하고 그 봄날 다시 지리산을 찾았다.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종주를 했고 대원사에서 화엄사 종주가 지리산 종주의 끝판왕임을 알게 되었지만 약간의 결핍이 인생을 편하게 사는 방법이듯이 나의 종주 코스는 중산리 - 성삼재 였다. 겨울에도 그 코스 그대로 산에 올랐다. 지리산 종주 뱃지 획득을 위해 붙은 친구놈은 가죽 캐주얼 구두와 인서울 학생 다운 캠퍼스 옷가지와 헤어드라이, 스프레이가 든 '1492마일즈' 백팩을 지고 왔다.

부랴 부랴 마트에서 아이젠을 하나를 사고 같이 산을 오르긴 했다. 나머지는 체력으로 커버 했다. 오르면 현명해진다던 지리산에 두 무식이가 올랐다.

그 친구새끼 덕분에 연하천에서 산림복원 등산로를 통해서 내려 가게 되었는데 유래 없는 폭설에 그놈이 가져온 사진기 덕분에 몇장 없는 지리산행 사진이 그렇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뭐에 홀린듯 훌쩍 지리산을 다녀오곤 했다. 등산화 하나 없던 나에게 그대는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던데'라며 제법 비싼 등산화를 선물해주었다. 그 등산화는 2년전 오대산에서 밑창을 떨어뜨렸다.

도망은 커녕 연애 한번에 결혼하고 결혼 한번을 아직까지 잘 유지 하고 있다.



40대 중반의 지리산


산을 오르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특히나 지리산은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완벽하게 혼자 오랜 시간 있을 수 있기 때문일거다. 힘들고 욕나오고 '젠장 왜 여길 또 왔어'라는 푸념이 나오지만 그 바람이며 경치며 소삭거리는 나뭇잎이며........


취직을 하고 일을 하고 몸무게는 20kg가 불어버려서 등산이 어렵게 되었었다. 한번은 치악산엘 갔다가 쥐가 나서 얼마 못가 내려와서 동동주 2병을 사들고 오기도 했다. 비루했다.

욕심만 가지고는 원하는 만큼 성공을 하기 힘들었고 퇴사와 입사를 반복했고 중심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그저 그런 월급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욕심이 버려지고 죽을 것 같은 포기를 하고 나니 다른 길이 보였다. 서울을 떠나고 지방 소도시? 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주니어는 잘 자라고 난 제 시간에 퇴근을 했고 운동을 했고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다.


월악산과 치악산과 오대산을 타보니 체력이 그만 그만 쓸만한 것 같았다.

휴가를 냈고 배낭을 꾸려 먹을것을 최대한 줄이고 짐을 싸니 15kg 내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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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서 용산까지 약 3시간, 용산에서 22:45 무궁화호 --> 03:40분 구례구역 --> 04:00시 성삼재의 코스를 차근 차근 밟아 갔다. 택시를 타고 올라가야 했던 성삼재에는 이제 새벽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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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인지 비인지 모를 수분들이 대기중에서 흩날렸고 너무 어두워 LED 손전등을 꺼냈을뿐 처음 겪어보는 암흑속의 우중 산행이였다. 이렇게 비 맞는 것도 오랜만이여서 반가운 기분이 들기도 전에 젖으면 앞으로의 산행이 암울했다. 비옷과 방수포를 씌우고 열심히 걸었다. 노고단 까지 1시간 제법 힘이 들었다.

20190520_054702.jpg 훗... 얼굴이 적당히 잘 안보여서 다행. 보시는 분들이...


세석산장까지 보통 14시간이 걸려서 무거운 배낭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바삐 움직여야 했다. 1박2일 종주 산행이다.욕심 많은 나는 무용담을 위해 너무 긴 거리를 잡았다. 그래서 빌어먹을 오르막은 벽처럼 다가오고 내리막은 장딴지를 찢어 놓을 만큼 가팔랐다.

5월 중순의 지리산 바람은 너무나 차가웠고 비가 갠뒤 하늘은 잘 닦아 놓은 쇼윈도 같았고 산 능선 능선 하나 하나 마다 풀을 잘 먹인 치마폭을 다림질 해 놓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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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높게 있었고 멀리 볼수 있었고 지친 발자국 남긴 곳에 내속에 무언가를 하나씩 내려 놓는 느낌으로 걸었다. 그래서 피곤함 조차 더 없이 좋아질때도 있었지만 세석산장을 앞두고 마지막 능선을 탈때는 조금 힘들었지만 그 높은 곳에서 세석평전을 만날 때는 더 움직일수 없을 것 같아서 화전민이 되고 싶은 생각 마저 들었다. 숙소를 배정 받고 극기훈련을 온 한때의 학생 무리들을 피해 취사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코펠에 물을 길어와 물을 끓이고 화장실에서 생수병에 소주를 옮겨 담았다.

희소성은 사람의 감각을 가장 예민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게 불법이라면 아드레날린이 미친듯이 분비된다. 라면에 데우기 귀찮은 햇반을 넣어서 안주겸 밥 삼아 생수병에 따라온 소주를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2시간 처럼 느껴지게 먹고 마셨다. 화장실과 샘터 사이 어디쯤에서 뺨이 홀쪽해질 정도로 담배를 깊게 피우고 싶었다.

그리곤 한적하게 콘센트에 핸드폰 충전을 꽂아 놓고 책을 조금 읽다가 조금 졸기도 하고 또 그걸 누가 봤을까봐 겸연쩍어 안 졸았던 것처럼 굴기도 하고 참 느리지만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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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3시에 눈이 떠졌고 몸 상태를 확인하니 운동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누워서 하릴없이 이것 저것 생각하다 보니 슬슬 날이 밝아 왔다.

천왕봉을 앞두고 내가 다녔던 길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길처럼 느껴졌다. 하긴 10년도 더 되었으니까.

오로지 혼자였다. 오르막은 제법 힘이 들었지만 통천문이니 하는 지명들을 지나면서 곧 정상이라는 기대감이 그래도 다리를 움직이게 해줬다. 어차피 올라 가야 내려 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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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하나 남기려고 왔던가? 굳이 안찍기는 뭣해서 인증샷을 남겼다.

비 온 다음날도 무색하게 미세먼지가 많긴 했다. 백무동으로 내려갈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중산리로 방향을 잡았다. 끝이 않좋았지만 나의 친애하는 외삼촌이 있던 방향으로 잡았다.


카톡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나의 안부를 가장한 무용담을 남겼고 그 와중에 식구들은 평촌으로 다들 모이기로 하여 진주 하현옥에서의 늦은 점심은 포기 하기로 했다. 그래서 총총 거린 하산길은 무척 더뎠고 힘들었고 지루했다.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의지는 잘 데친 나물처럼 흐느적 거리기 마련이다. 배낭은 조금 가벼워 졌고 칼바위로 가는 길 외에 다른 등산로가 더 생겼다. 좀 완만한 길이여서 그쪽을 택했다. 산들산들 내려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 했다. 그래도 가파른 계단을 쿵쿵 거릴때 마다 절름 거릴 정도로 왼쪽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겼다. 국립공원 간판이 붙은 중산리 입구에서 배낭을 지고 천천히 서서 담배를 태웠다. 햇살은 조금 따가웠고 내가 있던 천왕봉을 금새 찾을 수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높고 먼곳에 있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기 전에 맥주 한캔을 마셨고 그렇게 오른 버스에서 선잠이 든채로 돌아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무용담은 끝이 났다. 술 안주로 쓰던 것도 겨우 1주일 남짓 했다. 여기 저기에다 산행을 이야기 하면서 '왜 산에 갔을까?'에 대한 커리큘럼을 이어갔다.

그래서 내가 산을 오르는 물음에 대한 답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던것 같다. 현재 시점에서의 답이지만. 난 혼자 있고 싶은 거였다.


글에서도 난 너무 많은 내가 있었고 밥벌이를 하면서는 더욱 많은 내가 있다. 만나는 사람 마다 조금씩 나를 바꾸었다. 오롯이 나를 대할 수 있는 거울 같은 공간,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모든 에너지를 등산에 소비를 하면 나타나는 '나'를 좋아하는게 아닐까?


내 지난 생은 살음살이가 조금 남들과 달랐다. 그래서 난 정상이고 싶어서 나를 자랑 해대었고 또 그러고 허기가 져서 뒤 돌아서서 등산을 다니고 운동을 하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그랬던 거 같다. 지리산을 다닌지 20여년 만에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다음엔 바뀔지도 모르겠다.


등산은 가장 혼자 오래 있을 수 있다. 특히나 휴가철을 피해 주말을 피해 산을 오르면 그렇게 적막할 수가 없다. 가끔 보는 사람이 반가울 정도니까. 목마르면 물을 찾듯이 많은 사람과 만나며 그 사람 하나 하나 마다 맞춰서 분열하는 내 마음을 좀 모으고 싶었나 보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도 괜찮으니까. 뭔가 꾸미지 않아도 되니까.

다음엔 지리산이 아니여도 괜찮겠다 싶었다. 내 삶에 뭔가 예정된 건 없다.

혼자여도 괜찮다. 정체가 없는 뭔가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뭔가 그럴거 같으면 냉큼 돌아가면 되니까.

되돌릴수 있다. 그래서 슬그머니 다음을 기약한다. 산이든 사람이든, 글이든.



* '외롭히다'는 좌린의 사진첩 '적막한 도시'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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