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너
이명을 가지고 있다. 길거리에 걸린 '이명 치료 전문 병원 혹은 한의원' 같은 것을 보며 구라치고 있네 하며 비웃을 정도로 병원을 다니기도 했다. 높은 고음에 중독된 귀가 내는 소리란다. 정신분열도 유발할수도 있다는 말에 겁을 먹긴 했지만 대부분의 중독이 그렇듯 쉽게 멈춰지질 않는다. 이게 다 혼자 놀다 생긴 일이다. 바꿔 말하면 친구가 없어서 그런거다.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던 대구집, 애비의 턴테이블에서는 굼베이 댄스 밴드나 올리비아 뉴튼존이 흘러 나왔다. 에비타는 가사도 모르면서 비슷하게 흥얼 거리면서 다녔다. 국민학교때부터 후까시에 잡혀 가사도 모르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다녔고 그렇게 촌동네에서 가요는 안듣는 이상한 아이를 자처?하게 되었다. 분명히 메인스트림의 장르를 좋아하지만 희한하게도 신선한 것이 아닌 클래식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되는 남들과는 분명히 다른 성향을 애비의 턴테이블에서 찾아본다. 서태지가 대통령이 될 때도 김건모도 안재욱도 나에게는 비켜가야할 플레이 리스트 쯤으로 취급했다.
아주 오래 겪게 될 사춘기가 시작할 무렵, New kids on the block의 콘서트에서 사고가 나자 안보내길 잘했다는 애비의 말이 원망스러울 무렵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스틸하트를 만났다. 이후로 같은 비슷한 종류의 자극을 찾다 보니 def leppard와 4 non blondes와 ugly kids joe, Skid row, guns&roses 등을 알게 되었고 꽤나 만족할 만한 시간을 보냈다. 이른바 헤어 메탈에 빠져서 틈틈히 REM, nirvana, Greenday도 들었다. 이른바 메탈의 시대였다. 지방의 명문고 입학에 실패하고 애비가 대학이라도 잘가야지 하면서 툭 던져 줬던 Aiwa 카세트는 영어 리스닝 대신 메탈 콘서트를 벌이고 있었다. 자나 깨나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그 튼튼하던 일본 카세트는 1년을 버티기 힘들었다. 다행히 해마다 하나씩 사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긴 했다. 이 즈음에 U2의 2장 짜리 Best 앨범이 나왔고 warrant의 'heaven'과 삼총사의 'all for one' 덕분에 스팅과 로드 스튜어트, 브라이언 아담스를 알게 되었다. 대구집에 갈때마다 촌에서 구하기 힘든 카세트 테입을 샀다.
교동에 있던 서라벌 레코드에서는 주로 오래된 앨범을 대구백화점 8층에서 신보를 샀다. 본조비 'keep the faith'는 세번을 방문해서 겨우 살 수 있었다. 촌에서 공부 꽤나 한다는 환상은 고입 실패로 산산이 부서졌고
그걸 실패 삼아 더 큰 성공?을 이뤄야 한다는 기대들은 삼키기 어려웠다. 난 그져 쇳소리에 가깝다던 그 음악들에게 많은 위안을 때로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은 항상 폭풍우가 치는 것만은 아니였다. 속삭임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때가 있듯이.
누나들이 좋아하던 유키 구라모토, 조지 윈스턴을 듣다가 야니를 찾아냈고 또 Kenny G를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 장르를 규정할 수 없어서 그냥 뉴에이지라고 했다던데 듣다 보면 신스팝과의 차이점을 알게 되지만 묘한 지점에 이르러선 장르가 구분이 안된다. 마치 사랑보다 멀고 친구 보다 가까운 사이 같은 거다. 크로스 오버라고 우겨 봐야 남녀의 차이는 어쩔수가 없다. 이게 뭐든지 글로 배워서 가능할 거라는 착각에서 오는 거다. 사람이고 사랑이고 듣다 보면 어느 쪽에 더 무게추가 있는지 알게 된다. 추위에 꽁꽁 싸매야 했던 내 생활에도 귀가 길에 히터 같은 곡을 찾았다. 케니지의 'goning home'은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home'을 듣기 전까지 나의 넘버원 귀가 곡이였다.
Jazz, 클래식 다음으로 아카이브를 가진 음악 장르다. 그 바다에 빠지면 보물 사냥꾼이라도 되는 심정으로 풍덩 풍덩 빠지게 된다. 심지어 신안 앞바다 보물선 같은 일도 없다. 많이 듣다 보면 찾게 되거나 혹은 좋아지게 된다. 단점이라면 갈증 처럼 찾아 헤매게 된다. 7년 동안을 건더기(가사 있는 노래) 없는 이 장르에 빠져 있었다. 기타도 좋고 브러쉬로 살살 긁는 드럼과 퉁퉁 울려주는 베이스가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 건반은 내 마음을 꼭꼭 눌러주는 지압 같았다.
대학교 1년학 생일날이였다. 여느 생일처럼 극장에 처박혀 있었다. 개봉관에서 조조를 보고 동시상영관으로 2차를 갔다. 휴식 시간에 나오던 피아노 소리에 홀려 영사실을 찾아가 물어 봤다. 지금 나오는 곡이 뭐냐고. 그게 바로 빌에반스 'potrait in jazz' 였다. 시작은 루이 암스트롱이였지만 이제는 생각만 해도 아련해지는 많은 뮤지션들이 있다. 현실에서는 친구도 없지만 오래도록 못본 친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할 정도로. 언젠가 뱅가드 빌리지를 가보는게 꿈이다. 이제 자주 듣기 보다는 느낌이 나를 플레이 버튼으로 이끈다.
햇살이 잘 빗은 머리칼 같은날, 혹은 빗방울이 하나씩 하나씩 나를 두드리는 날, 어쩌면 바람의 노크를 듣는날, 그런 날들은 너낌 있게.....
한스짐머, 반젤리스 등 유명한 영화음악 감독이 있다. 굳이 음악을 기준으로 여태 제일 많은 들은 OST는 카우보이 비밥 일거다. 특히 'knock a little harder' 테이프가 있었다면 10개 정도는 늘어졌을거 같다. 인어공주 중 'fir work'와 'part of world' 도 좋아하고 미래를 달리는 소녀의 'aria-골드베르크 변주곡' 덕분에 굴드 앨범도 샀었다. 리쎌웨폰 2의 'it's probably me'가 귀에 꽂힌 순간 난 알게 되었다. 메탈리카가 왜 좋아지지 않는지를. 코로나 덕분에 공연도 못가는 요즘 소원이 생겼다면 스팅의 공연을 보러 라스베가스를 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카우보이 비밥이 넷플릭스에서 실사화를 했고 내 추억을 물어 내라는 사태 속에 난 혼자 중얼 거렸다. '그래도 OST는 몇곡 새로 나왔잖아.'그리도 또 무모한 누군가는 다시 실사화를 하든 애니를 리뉴얼을 하든 할 것이다.
하루 140km, 강원도와 경기도를 오가며 출근하는 나는 유사모닝? 이라고 불리는 작은 차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코로나 전에 갔던 U2 콘서트는 황홀했고 최근에 가서 '일본 콘서트 같고 좋네'라는 말을 들었던 체리필터 공연도 좋았다. 가기전에 싱어롱을 위해 외우기는 필수다. 그럴때 마다 이 차는 나의 소음을 말도 없이 받아 주었다. 뒤늦게 알게 된 린킨파크의 'shadow of the day' 와 엘라니스 모리셋의 'hands clean'도 김선욱의 'movin on' , 새소년, 짙은 같은 뮤지션과도 이 차와 함께 했다. 고래 고래 노래방이 되는 차가 너무 좋다. 이 작은 흰색차는 20만km를 넘으면서 건강이 걱정 된다. 반려견 있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이면 세상 모든 것이 목소리를 잃어 버린다. 딱히 안들리는 귀로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며 무슨 말을 했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어폰이 걸려 있는 귀를 보면 지레 말을 걸지 않기도 한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은 나에게 축복 같은 거였고 또 혼자 걷고 보고 읽고 쓰기 위해 가끔 대중 교통을 타고 술 나들이를 간다. 아주 먼거리의 지인을 찾아 술을 마시고 떠들고 놀다가 다시 이어폰을 끼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 귀를 닫으면 마음이 열리고 열렬한 수다 끝에 찾아오는 연결되어 있는 희열? 같은 것이 좋다. 아직도 들을 음악은 많이 남아 있고 귀도 쓸만하니 핑계삼아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서 여행을 가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