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레일 블루스

by 불은돼지

아프리카에서 그 먼길을 팔려와 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애환을 나도 조금 느끼고 있다. 왕복 140km를 오가며 노동이라는 것을 한지 어언 3년째에 들어 섰다. 4바퀴 운전하는 걸 별로 좋아 하지 않았지만 하루에 두시간 남짓한 운전은 조금 특별한 시간, 공간이 되었다. 아무래도 플레이 리스트 덕분인 것 같다.


일기장 같던 플레이 리스트

비오는 날에는 어쿠스틱 재즈 기타, 날씨가 화창날한 날은 재즈 트리오, 졸릴때나 울적할때는 메탈을 듣는다. 오래전부터 차곡 차곡 모아 뒀던 플레이 리스트들은 너무 자주 만나 지겨워하는 연인 관계가 되었다.

하루 두 시간 강제적인 스킨십으로 인해 나에게 첫 음반이였던 런던보이즈 부터 메탈, 조지 마이클, 마이클 잭슨을 거쳐 즐겨 듣던 재즈며 모든 리스트를 복기를 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술 마시면서 듣던 때가 생각나고 또 그 곡을 추천해준 몇 몇 친구나 술집 사장님 등등의 모습을 가드레일에 선거 공보처럼 촤르륵 붙여 가며 오가는 출 퇴근길이 재밌었다.


음악에도 중력이 있어요

30세 이전에 들었던 음악들이 평생 취향이 된다고 어느 팝컬럼스트가 말했다.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던 나는 이제 슬그머니 발을 빼려 한다. 30억년전 쯤 지구는 우주의 먼지덩이가 모여 중력이 생기면서 형성되었다. 나의 친애하는 플레이 리스트들도 그런 중력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성향 자체가 우울한 새끼이다 보니 그런류의 음악들이 처음엔 들러 붙었다. 포스트 그런지의 끈적하지만 들러 붙지 못하는 그리움이 오선지에서 펄스가 꺼져가는 맥박처럼 연주되는 그런 침잠. 특히 국내 뮤지션들은 놀라울 정도로 실력파이고 내 취향을 저격하지만 그럴수록 그 사람들의 생활고 걱정을 하게 된다. 이상스러울 정도로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내가 좋아할 정도라면 분명 넉넉하진 않을 것이라는 나의 오지랖이겠지만...


김선욱의 'moving on'을 듣다가 IC를 지나쳤다. 다음 IC에서 내려서 돌아가도 이미 30분 지각은 넉넉했다. 피식 웃으며 이대로 강릉으로 달릴까 싶었지만 밥벌이의 중력은 강력하고 강력했다.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글을 쓸수 있었다'라는 시 한구절로 위한 삼으며 그렇게 못 이기는 척 회사의 중력장으로 돌아갔던 날도 있었다.


four season play

같은 길이라도 남한강을 거쳐 영동고속도로를 타는 건 제법 괜찮은 순간들이 많다. 출근을 하다 보면 산에 떡하니 일출이 걸려 있고 운해가 넘실대는 날들도 있다. 퇴근 할 때는 남한강 콧잔등에 노을을 올려 놓을때도 있고 말이다. 사진으로 남겨두면 좋겠다 싶어 찍어두면 일출인지 일몰인지 모르게 되지만 누군가의 망막 보다는 내 안에 잘 쟁여 두기 위해 찍어둔다. 뭐 이정도 보상이면 나쁘지 않다. 괜찮은 BGM을 깔아주면 된다. 나의 오랜 귀가곡들 미셸 페트루치아니, 최백호, 케니G에게 짧은 감사를 더하게 된다.

KakaoTalk_20220526_101458982.jpg 노을 좋았던 날 집에서.
KakaoTalk_20220526_101548846.jpg 새말 IC 가는 길 어디쯤

밥벌이의 귀찮음과 고됨 사이에 조심해야 할 것들도 있다. 졸음과 사고 위험도 간혹 생겼다. 나를 미친듯이 앞질러 가던 빨간 코란도는 둔내 IC 쯤에서 나를 정면으로 보며 코잔등이 무참히 부서져 있기도 했다. 기면증 덕분에 졸다가 화들짝 거린것도 몇 번 있었다. 오랜 불면증에 처방약을 먹고 이제 좀 괜찮아 졌지만 잊지 않는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그대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이제 곧 20만 KM 되어가는 나의 작은 차는 곧 수리비를 요구할 것이다. 새차 사는 것을 쉽게 포기한 이유는 덜컥 정이 들어 버렸기 때문일거다. 그 흔한 전자식 편의 장비도 없고 직물시트에 덜덜 거리는 경유차 지만 잘 얼르고 달래면서 지내 보기로 했다. 나의 바람이던 바이크를 보내면서도 눈물 훔쳤던 나여서 인지 나의 밥벌이를 책임지는 반려차에게 새차를 해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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