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 인생을 대하는 자세

by 불은돼지

비슷한 생활을 하루, 일주일, 혹은 1년 또는 10년 단위로 반복 하면서

고통, 변화, 불확실성을 만나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반복에서 찾아오는 무료함 덕분인지 다른 삶을 기대해 보지만 단 한번도 용기를 내어 그 일상에

금을 내본적이 없다.

이를테면 카뮈의 ‘이방인’처럼 햇빛을 가린다는 타인을 방법하는 것은 관두고

누구에게 싫은 소리 조차 잘 해본적이 없다.

심지어 어지간한 일들에 대해서도 넘어간다.

반년도 더 남은 인사고과 시즌이 돌아온 것을 ‘아 누군가 진급 시킬 사람이 있나보네’라고 하고

최초의 블랙홀로 관측된 'M87'을 설명하는데 "넌 그걸 진짜로 믿냐"라는 대답이 돌아와도

'그런거지 뭐' 하고 넘어간다.

나는 요즘 체념적 생활을 하고 있고 다만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살아남는 쪽으로

모드를 변환했기 때문이다.


사실 직장에서의 진급은 하고 싶지만 윗사람들과의 관계가 핵심이라는 것을 안다.

아부까지는 아니더라고 회사의 "노예"라는 이미지를 축적시켜야 할 것인데 애시당초 반골기질이

DNA에 듬뿍 함유된 관계로 녹록치 않다.

또 할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으면서도 아주 자만스럽게 안하고 있다. 이건 못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모여서 사랑 하지 않으며 쓸쓸히 홀로 죽는 것” 이 직장 생활의 정수라는 것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 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안온한 삶을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불구 등의 파국적인 이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길바닥에 널린 삐죽한 보도블럭 같은 '불행'이 발에 안 채일리가 없다.

부친은 메디컬 드라마의 불행 클리셰를 현실에서도 이루어냈고 덩달아 모친은

‘지병’이라는 것을 진단 받았다.

하나 뿐인 아들은 매주 미술치료와 정신과 진료를 다니고 있고

그대는 내과와 정신과를 한달에 한번씩 가야 한다.

나 또한 관절염 부터 시작해서 소소한 수면제 처방에 탈모까지 100세 시대를 오롯이

병원 출입으로 맞게 된 이런 빌어먹을 이벤트를 소소한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그냥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변화는 여러모로 뒤통수에서 많이 다가오니까.


인생에 억울한 일이 한 둘 씩은 있기 마련이다. 잘 받아 들이기에는 뭔가 내 탓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따져보기도 쉬운 일도 아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되지?’

라고 말하는 순간 참 듣기 싫어 하는 ‘원래 그렇게 사는거야’ 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현대 철학이 ‘지금 왜 자살하지 않는가’ 에서 멈춰져 있는 것을 뜰앞에 잣나무니라 하는

선문답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원래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제야 조금 이유가 없는 이유를 궁금해 하는 것이 매우 피로하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모든 시작은 내가 따져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환장할 확률을 뚫고 태어난게 기적이라지만

그 정도 기적이야 이 우주에 모래알 처럼 널려 있다.

분명히 ‘진리’라는 것이 있을 건데 아니면 ‘이유’라도 있어야 된다.

다 부질 없는 짓이다.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알 수 있는 것의 최대한 이였다.

따라서 대충 살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지루해서 생긴 호기심으로 슬그머니 변화를 꽤해 보지만 용기가 없다.


괴물을 찾아가는 프랭크 슈타인 박사 처럼 절대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아는 것처럼

인생은 클리셰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도 삶은 따져 물어보면 재미는 생기는 모양이다. 번외로 피로감은 몰려 오지만.


‘원래 그렇게 사는 거야’를 이렇게 길게도 풀어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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