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전시회 Part1
# Prologue
홀로 라는 말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말입니다. 무리에 속한 사람이 보기에는 약해 보이기 그지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혼자가 되기 싫은 마음은 무리에 의해 강화 됩니다. 안전하지만 나라는 것은 흐려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예술의 비언어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오롯히 개인의 의지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술은 무리에 섞이지 않는 개인의 무언가가 타인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구조주의에 동감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무슨무슨 주의' 라는 말들은 무리의 것들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가 다시 그
벽을 허물고 무리의 관념이 되어 버립니다.
개인의 영적인 것은 실체를 갖는 순간 권위를 가지고 관념적인 것으로 전환 됩니다.
# 몽크의 전시회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흐의 별을 좋아합니다. 그 흐트러진 별을 처음 봤을 때 크나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약간의 전시회나 미술관을 야금 야금 찾아 가며 읽은 것을 그림으로 보며
'나'의 영적인 무언가가 자극 받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서양 미술사 책을 완독하지 얼마 안되어서 머리 속에는 그럴싸한 말들이 많이 오갔습니다.
불안, 죽음, 영혼, 외로움, 빛, 자연 등 원초적이 단어들과 그것들을 감싸고 있던 인상주의, 표현주의, 자연주의 같은 말들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그림에 대해 내린 비평들은 제 몸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제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것은 기존의 관념에 비추어 보아도 이지러져 있을 뿐입니다.
뭉크의 불안은 푸른색으로 표현 됩니다. 그래서 어떤 시대를 담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 했고 그 결과로 '절규'에 이르러서 혐오를 '자연으로 회귀'라는 포장을 씌어 놓은 듯 합니다.
저는 '절규'를 홀로 된 개인의 그리움이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저 또한 혼자가 편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무리에서 떨어지지 못합니다. 나의 말이 받아 들여지지 않는 외로움은 영적인 실체가 커질 수록 괴로움이 됩니다. 그 괴로움은 원초적인 것이라서 누구나 가지고 살고 있기에 '자연'의 비명을 들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물음표 이기도 할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원제가 '사랑과 고통' 이였지만 친구의 한마디로 제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키치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되려 '필리아'적인 감정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타나토스(죽음)가 보이기는 하지만 각오는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고 또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수동적이며 나약하기 그지 없는 개인의 감정은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응축되어 예술이란 이름의 외투를 입고 밤으로 외출한 느낌입니다.
여자는 안았는지 안겼는지도 모를 남자의 목에 키스인지 고개를 묻은 것이지 알 수 없습니다. 뒤의 그림자는 '죽음'과 같이 힘들다는 그림자로서만 기능을 하고 어디에도 '결심'은 볼 수 없습니다.
결심이 없는 감정은 전달 되지 못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남아 몸 속을 떠돌게 됩니다.
떠돌이 감정들은 기원과 주체가 흐려지면서 혈관을 타고 우울함을 온 몸에 뿌려 놓습니다.
'해소 되지 않은 감정은 가면을 쓰고 돌아온다' 라는 멜랑꼴리가 되고 감정에 푸른색 비를 내립니다.
-----------> prat2에 계속
언제 쓸지는 알수 없습니다.
아래 블로그에서 전시회 소감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goldkan/223523656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