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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때

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물병'

by Goldlee

포카리스웨트 음료수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파란 플라스틱 물통을 자전거 탈 때 이용한다. 이 물통에 물을 담아 몇 번 이용해 보면 플라스틱 냄새가 난다. 설거지할 때면 열심히 냄새를 지우려 애를 써 보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포기한다. 그 속에 낀 묵은 때는 지울 수 없다. 물통이 플라스틱인데 사라질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에는 바꾸면 되는데.'라는 속으로 다짐을 할 뿐이다. 오래전 같은 냄새와 같은 물맛이 생각났다.


1998년 9월에 창원 39사단 신병훈련소에 입소했었다. 전방보다는 여유롭겠다는 말에 '몸이 힘든 것보다 나가지 못해서 힘든 거 아닌가.'라는 호기로운 결심을 하며 머리 깎고 들어갔었다. 훈련을 마치고 겨울이 된 어느 날 광주 31사단 공병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 훈련소를 마치고 온 신병은 해야 할 임무를 받기 전까지 3일에서 5일 정도 내무반에서 대기병으로 지낸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이때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다. 그냥 앉아 있는 게 대기병이다. 주먹 쥔 손을 무릎에 붙이고 팔을 쭈욱 펼치고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앉아 있어야만 했었다. 각 잡고 앉아 있는 것이다. 앉아 있을 때도 각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게 앉아 있으라고 하면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한다. 첫날 도착 후 각 잡고 잠을 자고 난 아침부터 그렇게 앉아 있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묻는다. 바지 속으로 들어간 오른손이 심심함을 긁고 있었다. 제대로 앞둔 말년병장이 물었다.

"누나 있어?"

"네. 있습니다."

"몇 살이야."

"조카가 5살, 3살인 누나가 있습니다."

"아~"

나보다 어린 말년병장에게 거짓말을 했다. 군에 먼저 간 친구들이 알려준 대답이다. 귀찮아지고 싶지 않았다.


"위잉~ 위잉~"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정신이 번쩍 드는 소리와 함께 혼란스럽다. 일사불란하게 전투태세를 준비해야 하는 훈련이다. 자대배치 이틀 만에 비상훈련이라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동참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누군가 큰소리로 욕하며 외친다.

"시발새끼가 군장 안 싸고 뭐 하고 있는 거야."

동시에 날아온 주먹은 왼쪽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군장을 빼서 보니 훈련소에서 배웠던 군장이 아니라 당황했지만 일단 담았다. 또 맞고 싶지는 않았다. 곁눈질로 열심히 따라 했다. 수통을 안쪽에 담고 전투화를 바깥 주머니에 담고 닫았다. 전투할 때 쓰는 전투모를 하이바라 불렀다. 내 머리 위에 얹힌 하이바가 튕겨져 나갔다. 내 머리도 바닥에 뒹굴었다. 선임의 M16 소총의 개머리판은 나를 전투에 임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기 위한 명분으로 가차 없이 가격했다. 신형 배낭 때문이었다. 수통을 바깥 주머니에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머리는 바닥에 뒹굴게 된 것이었다. '고작 물병일 뿐이잖아. 가르쳐 준 것도 아니잖아.'라는 소리 없는 항변은 짖고 있는 개들 앞에서는 소용없으리라.


훈련이 종료되고 상병이상의 선임들은 투덜대며 대충 군장을 던져 놓는다. 상병 이하 일병부터 막내 이등병까지 선임들이 던져 놓은 군장을 정리한다. 그리고 자신의 군장을 정리한다. 수통은 한 데 모아 채워진 물을 비우고 깨끗이 소독하고 선임들의 관물대에 각 잡아 놓으면 된다. 나보다 조금 먼저 온 막내들이 하는 임무였다. 나도 곧 배울 일이고 나의 임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소독을 어떻게 할까 궁금했었다. 나중에 내가 그 임무를 맡았을 때 알게 되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속에 끼어 있는 때를 불려서 비워내면 된다. 제일 위에 있는 선임들 것부터 순차적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라. 뜨거운 물도 모자라니깐."

일병이 이병에게 하는 명령이었다. 명령한 일병도 같이 들고 가서 뜨거운 물을 채우기 시작한다.

"이 수통 625 때 쓰던 거라던데. '절대 찬물 넣고 마시지 마'라고 하더라. 배탈 난다고."

"네. 알겠습니다."

"조용히 해. 내가 말하면 큰 소리로 대답 안 해도 돼."


군인들의 전방은 전쟁이 시작되면 처음으로 적과 부딪히는 곳을 전방이라 부른다. 휴전선과 가까울수록 전방이고 멀어질수록 후방인 셈이다. 후방부대는 군용품의 보급이 전방부대가 먼저 교체한 후 후방으로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창원은 얼마나 후방이었단 말인가? 1998년에 나는 625 전쟁 때나 꾸렸던 구형군장으로 완전군장(전투 시 개인필수품을 모두 군장에 담아 임할 수 있는 상태)을 배운 것이었다. 자대배치받은 광주는 군장만 신형으로 바뀐 상태였다. 대기병으로 있을 때 맞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살면서 맞아 본 경험이 없었던 탓이다. 더군다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처음인데 완벽을 강요하는 군인정신이라는 어이없는 말이었다. 억울했다. 고작 물병 때문에 맞은 것 같았다. 맞은 게 억울한 게 아니라 수통을 왜 바깥 주머니에 넣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폭력에 순응해 버리고 다른 이유를 찾았다. 무서운 상황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글을 관물대에 적어 둔 선임이 보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도록 때리면 즐기게 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때린 선임이 누군지 알 게 되었다.


수통에 낀 때를 뜨거운 물로 지우려고 수십 년을 흔들었을 것이다. 색깔도 칙칙한 플라스틱 물통은 그나마 베트남 전에 쓰던 거라 오히려 더 새것일 수 있다. 알루미늄 수통은 625 이전부터 쓰던 것이라고 들었다. 철분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수통. 플라스틱 냄새와 맛을 음미하며 마셔야 했던 수통. 그 속에 낀 때를 볼 수 없지만 뜨거운 물로 지워질 거라 생각하고 흔들기만 반복했을 남의 수통들. 학교수업 외에 경험해 본 것도 없는 스무 살 청춘들이 서로 아웅다웅 전쟁을 치르는 군대. 왜 해야 하는지 무슨 이유로 해야 하는지 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군대.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청춘들. 이제는 바꿔주기 바란다. 지워지지 않는 속 때와 보이지 않는 부조리를 뜨거운 물에 녹여 흔들기만 하지 말아야 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물병처럼 바뀌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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