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오감'
처음 본 사람이었다. 금오도 비렁길을 걸으며 길에서 본 사람. 비 온 뒤 안개까지 땅에서 올라오는 중에 마주한 그 사람.
'나를 보는 건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어 나를 향해 걸어온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뭐라고 하신 거예요."
"네. 아무 말 안 했는데요."
"방금. 뭐라고 하셨는데. 나를 보는 건가?"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아, 아닙니다.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정확히 나를 향한 오던 그 사람은 내 생각을 알고 있는 듯 물었다. '들은 걸까? 내 생각이 들렸던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완벽한 어둠의 길을 보고 난 후 나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내 눈이 바뀌기도 하고 내 귀가 듣지 못했던 걸 듣기도 하고 내 생각이 타인에게 들려지기도 한다고 느껴졌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런 것 같다. 지금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다가와 뜬금없이 물어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나도 놀래지만 상대방은 황당해하며 시비를 가리려고 덤벼드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대둔산을 올라갔다 온 그날 저녁은 삼겹살과 소주로 배를 채우고 또 채울 뿐 같이 올라갔다 온 일행과 말을 섞고 싶진 않았다. 그때가 그 여자를 처음 본 날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혼자 올라간 영축산 정상에서 반대편에서 혼자 올라온 그녀를 보게 되었고 1년 후쯤 월악산의 영봉을 우린 함께 오르고 난 후 처음으로 대화를 했었다.
"세 번째 보는 건가요?"
"아니요, 앞산에서도 한번 봤었으니 네 번째입니다."
"아! 맞네요."
"잘 지내셨죠."
"네, 오빠도 잘 지내시죠."
"저야 뭐, 그저 그래요."
"돌싱이라고 하셨잖아요. 맞죠?"
"제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네, 처음 본 날. 대둔산 내려와서 삼겹살집에서 했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술에 취했나 봅니다."
"저도 돌싱이에요."
"아! 그러세요. 몰랐어요."
눈을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꾸밈새가 젊어 보였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겠거니 기혼인지 미혼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혼해서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신기하게 보였다. 그리고 예뻐 보였다. 같은 처지를 알고 나니 말이 많아진 나와 내 말에 웃고 있는 그 여자가 창문에 비치고 있었다.
"술 마시는 게 좋아요."라는 말을 듣고 끊었던 술을 다시 마셔볼까라는 결의 같은 것도 없이 자연스레 잔을 주고받았고 우린 살아온 이야기며 육아하며 겪은 이야기들과 이혼할 때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수많은 주말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벌거벗은 채로 우린 거울에 비친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이렇게 말했다.
"췌장암이래."
"누가?"
"처음에는 임신인 줄 알았는데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보자 해서 했었는데."
"누구? 자기 말하는 거야."
"오늘 결과가 나왔어?"
"정말이야."
울었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멋진 어른 남자처럼 안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응석받이 사내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엉엉,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야." "고칠 수는 있데, 살 수 있는 거지."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하고 있는 내 꼴을 돌이켜 보지도 못하고 한쪽 벽에 등을 대고 고개 숙이고 울어 재꼈다. 내가 울고 있는 모습조차 사진으로 남기며 "괜찮아 죽진 않을 거래."라고 말한다. 췌장암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다. 그제야 응석받이 사내아이는 사라지고 세상에서 가장 든든할 것 같은 오빠가 되려고 그 여자를 안아 주었다. '그래, 내가 살려내고 행복하게 남은 인생 살게 해 줄 거야.'라는 터무니없는 자신에 찬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었다. 주말이면 생기는 새로운 사실들에 나는 점점 의심을 하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거짓말쟁이. 왜 이토록 처절하게 거짓말을 하는 걸까. 살아온 삶 자체를 거짓으로 포장하는 그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는 믿는 척했다. 믿음의 눈물도 흘려주었다. 믿음의 결과를 선물해 주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거짓인 줄 알면서 믿었고 그 믿음을 믿었다.
췌장암에 걸린 여자는 매일 술에 취해 살았고 나 역시 주말이면 같이 술에 취해 하루하루를 잊으며 살았다. 그리고 어떤 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아닌 나를 소개하는 그 여자는 나를 보고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내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모른 체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사실확인을 해 주듯 내 입으로 말을 한다. "맞아요. 모르셨구나. 저 그런 사람입니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알려지게 됐네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리고 자신만만 위풍당당한 그 여자를 부럽게 보고 있는 그들을 보며 다시 한번 말해줬다. "부탁할 일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인혜의 지인이라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나도 내가 진짜 그 사람 된 줄 알았다.
어떤 일요일 아침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나는 겨우 일어나 걸으며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나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던져 깨트렸다. 내가 가진 전부인 휴대폰도 같이 깨져버렸다. 그리고 그 여자를 만날 수 없었다. 거짓투성이였던 삶을 살았을지언정 그래도 사랑이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의심해도 나만 믿어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깨진 휴대폰으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깨지기 전에 비친 거울 속 내 모습은 사라졌다. 날카롭게 깨진 파편에 나는 베였다. 거짓에 베였다. 튕겨진 파편은 내 고막을 찢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들리지가 않았다. 진심이란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 무슨 말을 하는 데 개소리로 들린다. 진짜 개가 짖어 대도 개소리가 아닌 것 같다. 그 개소리를 들을 때면 오른쪽 입꼬리가 씰룩대며 올라간다. 지랄하고 있네라고 한다.
금오도 비렁길에서 나는 완벽한 검은 길을 봤다. 깨진 파편을 들고 다녔다.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담아갔다. 내 살갗에도 박혀버린 채 빼지 않고 그 길을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베이고 박혀버린 그 깨진 거울 속의 나를 붙이고 이은 후에도 피흘리고 있는 나를 던져 버렸다.
완벽한 검은 길을 본 다음날부터 진심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무엇이 진심인가?'라고 물어보면 된다. 그 대신 내 생각을 들킨다.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들키고 있다. 숨기지도 못할 거면서 숨기고 있다. 들킨다. 그래도 그걸 어떻게 할 수 없다.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뭐라고."
'잘난 체 졸라 하네.'
"뭐라는 거야."
'뭐긴 뭐야, 너한테 하는 말이지.'
"어이가 없네."
'없긴 왜 없어. 몰라서 묻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다. 편하긴 하다.
'와~ 예쁜데 몇 살이지.'
"저는 결혼했어요."
'미친, 누가 뭐래.'
"이상한 인간이네. 왜 욕을 하고 지랄인데."
'와! 이럴 줄 알았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지랄이네.'
"미친놈."
말하지 않아도 들킨다. 불편하게 말이다.
들키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진심을 말하면 된다. 진심을 숨기니 들키는 것이다. 왜 나를 판단하고 평가받아야 하는가? 숨겼기 때문인가? 어쩌면 우린 이미 다 들킨 상태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진짜 나'가 나오려고 소리 내는 것인가? 아니 외쳤던 것인가 보다. 내 진심은 이겁니다. 소리 나지 않아도 들릴 겁니다. 거울이 깨지기 전 내 모습이 '진짜 나'였던가 아니면 완벽한 검은 길을 마주한 후의 '보이는 나'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나는 들킬 뿐 들리지 않는다. 무엇이 진심인지를 들을 수 없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