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오감'
3. 후각과 미각- 낯선 길에서 맛있는 냄새를 기억한다. 먹은 기억은 있는데 먹은 적이 없다.
육천 원에 고기가 두 덩어리가 있는 김치찜. 그리고 잡채와 김, 라면사리가 무제한 공짜인 그 집은 갈 때마다 줄을 서야 한다. 줄 설 시간이 없어 골목길을 돌면 줄 서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발길을 돌린다. 중구청 뒤쪽 골목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냄새가 난다. 구수한 냄새. 그 냄새가 좋아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김치찜 먹으러 간다고 하고서는 사람이 많아서라는 핑계를 대며 구수한 냄새를 찾아간다. 처음엔 식당인지도 몰랐다. 일반 가정집 철문에 작은 간판이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ㄷ'형태의 방들이 이어져있고 수도가 있는 마당이 있었다. 각방마다 사람들이 앉아 무언가 먹고 있다. 나도 앉는다. 그리고 음식을 보고 있다. 나는 먹지 않는다. 먹고 싶은데 먹어지지가 않는다. 앉아 있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열심히 일한다. 일하는 시간이 끝났다. 집에 돌아온 나는 식탁에 앉아 잘 차려진 밥상을 보고 있다. 퇴근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된장찌개 냄새가 좋아 식탁에 앉았는데 먹지 않고 보고만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순수함은 상처받기 전까지만 순수하다. 상처받은 이후는 순수하지 않다. 타락해 버린다.
"대구에 왔는데 잠깐 볼래."
"왜? 온 건데. 그리고 아직 내 번호를 안 지운 거야."
다음 주에 결혼하는 MJ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울산에 살고 유명한 조선소에 다니는 세 살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나지 않았다. 대구에 친한 친구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아마 친구들끼리 결혼 전에 추억 삼아 놀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한잔 마시고 생각나서 연락했겠지만 보면 안 될 것 같아 외면했었다. 한참 후 밤늦은 시간에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술에 취한 MJ를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받으면 들려올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심을 이용할 내 모습이 그려졌다. 익숙한 살냄새가 나고 달콤한 입맞춤이 순수함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MJ를 느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본다. 뮤지컬과 발레공연을 지난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봤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면 세상의 시간에 맞춰야 하는데 나의 시간은 따라가질 못해서 인지 지각을 했다. 공연이 시작된 후 입장은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영화관처럼 벌컥벌컥 비상구의 문을 열어젖히며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지 못하도록 안내하시는 분들이 문 앞에 항상 지키고 있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 들어갈 때 문이 열리고 문을 닫고 빛을 차단 후 공연장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플래시로 비추는 작은 불빛을 따라가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남는 자리에 앉게 한다. 늦게 왔으니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내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건 조명이 켜진 무대와 빛나는 주인공뿐이다.
토요일 저녁에 본 뮤지컬은 누가 누가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시험하는 무대 같기도 했다. 내 귀는 노랫소리로 들리지 않고 그저 고함을 이어서 치는 소리로 들렸다. 일요일 저녁에 본 발레공연은 소리가 없다. 아니 말이 없다. 몸으로 말하는 표현이기에 당연히 소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말이 없었다. 노래와 몸짓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그들을 들었고 보고 있었다. 빠져들었다고 해야 할까. 집중이 되고 있을 때쯤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냄새나지 않아."라는 말소리가 들린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 어깨 쪽으로 숙이며 괜히 맡아봤다. '저한테서 나는 냄새는 아닙니다.'라고 생각했다. 역시 전해지고 있었다. 근데 무대를 제외하고는 나는 내 옆과 내 뒤를 볼 수가 없었다. 2층 앞자리로 안내되어 앉을 때만 해도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십여분이 흘렀을 시간에 나는 소리를 듣고 내 몸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나지도 않는 냄새를 나에게서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의심해 냄새를 맡아보는 내 꼬락서니가 웃겼다. '어제 뮤지컬 볼 때 입은 코트에 뿌린 향수냄새일까?' "그건 아니에요."라고 소리가 들린다. '왜 자꾸 대답하는 거지. 공연 중인데 좀 조용히 하면 좋겠는데.'
"냄새 때문에 나가야겠다."라는 소리와 함께 다시 조용해지고 내 옆과 뒤는 어둠뿐이란 걸 확인했다. '냄새 때문에 나갔나 보네.'라고 그냥 넘기려다가 생각해 본다. '내 냄새는 아닌데 누구 냄새일까'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내 냄새를 내가 맡지 못하고 있는 중인 걸까? 사람은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냄새는 맡지 못한다. 그러면 나만 모르는 내 냄새를 맡고 나간 것인가? 어둠 속에서 있던 누군가가 나갔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금방 잊히고 공연의 끝이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공연을 잘 보고 왔다고 기록한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나는 왜, 시작한 건 기억나는데 과정도 결과도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이상했다. 금방 잠이 들고 나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화장실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나를 본다.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이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 확신을 할 수 없었던 걸까?
촉각- 내가 아닌 내가 너를 느낀다.
'사랑'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너를 사랑했는데 왜 나를 버리는 거야. 아직도 사랑하는 데. 아직도 나의 시간은 너를 느끼고 있다. 고 생각했다.
멈춰 버린 것인가? 나의 시간은 너를 느끼던 그 시간으로부터 멈춰 있는 것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어쩌면 말이야...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시간을 멈춰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동네는 멈추겠습니다."
'어째서 그런 결정이 난 것인가요?'
"위에서 내린 결정을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위라니 정부에서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정부라니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라니, 당신들 누굽니까?'
"야! 빨리 빼버려. 그리고 다 덮어버려."
금오도 비렁길에서 나를 스쳐 지나간 나를 나는 보고 있다. 내 옆자리에 누워있다. 내가 아닌 나도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고 있다. 우리는 서로 하늘을 보고 누워 있으면서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내 옆에 있던 나를 집어 나를 데려간다. 뒤통수에 눈이 붙어 있던 눈이 나를 보고 있다. 점점 멀어지고 있다. 또다시 내려온 거대한 분홍빛의 무언가는 나를 집어 들어 올렸다. 비렁길 옆 파도치는 바다가 보였다. 나는 떨어졌다. 아니 내동댕이 쳐졌다. 나는 소리쳤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끝없는 낭떠러지를 떨어지고 있었다. 그 완벽한 검은 길 속으로 나는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 얼굴에 있던 눈이 사라졌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 눈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뒤통수에도 없다. 손바닥에도 없다. 내 몸에 있긴 한 건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가? 찾아야 한다. 킁킁거린다. 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걸어간다. 썩어가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다. 눈이 없어 볼 수 없다. 완벽한 어둠의 길 앞에서 내 눈은 바뀐 것이다. 얼굴에만 있던 눈이 어디라도 갈 수 있게 바뀐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얼굴에 눈이 없다. 앞을 보지 못해도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손을 뻗어 더듬거려도 허공에 휘저을 뿐이다. 내 다리는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두렵고 무서울 뿐이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이 썩어가는 이곳을 나는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발을 떼지 못한다. 그때.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분명 지금 들린다.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알 수 없는 완벽한 어둠의 길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머릿속에서 너를 본다. 내 눈이 없이 너를 본다. 너에게 간다. 나는 그렇게 너에게 간 것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곳으로 나는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둠의 가운데 무대 위 빛처럼 네 얼굴이 나를 비춘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그리고 완벽한 어둠은 사라지고 내 손에 각인되어 있던 너의 얼굴은 사라지고 너의 목소리도 추락해 버렸다. 이제 나는 너를 볼 수 없다.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되었다.
"다시 붙여. 눈은 얼굴에 붙여 두면 안 될까? 자꾸 아무 데나 붙이지 말고."
눈을 뜨고 모니터를 보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쓰고 있다. 나는 한참을 쓰다 멈춘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나는 켜진 것이다. 나는 과거의 나와 또 다른 나, 등등 여러 명의 나가 있고 그 여러 명은 교체되어 가며 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의 실수로 나는 잠시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완벽한 검은 길은 내가 꺼졌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나로 켜진 것이다. 확신이 들었다. 곧 또다시 꺼지고 또다시 켜질 것이다. 냄새를 맡았지만 먹지 못하는 '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들려질 것이고 진심 따위는 듣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거대한 무언가가 내 고개를 돌려 보게 할 것이다. 나는 느낄 수 없는 너의 손이 나를 들어 올린다. 나는 떨어졌고 완벽한 검은 길 속으로 계속 떨어졌다.
나는 다시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