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

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카메라]

by Goldlee

혼자 온 건가? 나는 땀에 젖은 등산복을 입고 설악산 대청봉 정상석에서 일출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루할 새도 없이 매서운 바람 탓에 추위를 이겨내려고 발을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혼자 온 사람일까? 내가 먼저 찍어 준다고 하고 나도 찍어 달라고 하면 될까? 검지를 살짝 구부리고 최소한의 터치로 앞사람의 어깨를 콕콕 두드린다.

"저기요. 혼자 오셨어요?" 마스크에 가린 입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푹 눌러쓴 비니와 마스크 사이에 동그란 눈이 세모가 되어 나를 주시한다. 아니 훑었다.

"인증 사진 찍어주실 분 없으면 제가 찍어 드릴까요? 대신 저도 좀.."

"아! 네."

들렸다. 마스크에 가려 나오지 못한 뾰족한 대답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내 귀에 들렸다. 대청봉 정상석에서 찍는 일출사진은 살면서 몇 번의 기회가 있지 않을 거라는 말을 올라오기 전부터 들었던 터라. 어설프게 혼자 찍는 셀카보다는 꼭 제대로 서서 전신이 나오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앞의 여자분 차례가 드디어 왔다. 혼자 몇 장의 셀카를 찍고 나에게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을 켜고 건네준다. 정상석 옆에 서서 양팔을 최대한 벌리고 다리와 발의 각도가 카메라를 향하게 선다. 뒤에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 눈부셔 얼굴은 식별하기 어렵지만 상관없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일출과 정상석이니까 그대로 찍는다. 그리고 나도 스마트폰에서 카메라 기능을 켜고 그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세 번의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건네받았다. 줄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초리를 애써 못 본 척하고 다시 혼자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정상석 뒤에서 내 사진 속으로 들어오는 아저씨와 줄 서지 않고 정상석 옆에서 사진 찍는 아줌마가 거슬렸지만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해 사진은 그만 찍고 정상석 자리를 다음 사람에게 드렸다. 해발 1,700미터의 높이의 대청봉은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더 춥게 느껴졌다. 한참을 올라오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다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중청대피소로 내려갔다.


마등령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공룡능선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서 몸에서 힘이란 게 더 이상은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준비한 음식이라곤 햄버거 하나였는데 벌써 희운각에서 순식간에 해치우고 멀뚱히 서 있었다. 끓여지고 있는 라면과 지글거리는 삼겹살에서 나오는 냄새라도 맡으려 한 건지 가스버너에서 나오는 온기가 필요해서인지 나는 한참을 대피소에 머물렀었다. 먹을 것 하나 없는 쓸데없이 가득한 배낭을 다시 둘러 매고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었다. 공룡능선의 1275봉에 올라섰을 때 나는 주저앉았다. 물마저 다 마신 후였다. 별 수 없었다. 왔던 길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그저 잠시 앉았다가 가야 할 길을 가야 했다.

내 눈앞 돌무더기를 위에 앉아 있는 뒤통수만 보이는 여자 두 명의 대화 소리가 내 귓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나는 일어서려던 내 무릎을 다시 굽히며 주저앉았다.

"아~ 대청봉에서 인증사진 엉망으로 찍혔네."

"왜? 어떻게 찍혔길래."

심장소리를 들으며 안쪽 주머니에 있던 내 폰을 열었다. 역광으로 인해 정상석에 있는 글자 '대청봉'을 식별할 수가 없었다. 다시 갈 수 없는 체력. 입에서 욕이 나왔다. 그리고 대화하고 있던 두 명의 여자들을 쳐다봤다. 나를 찍어 준 여자는 없었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벗었기에 알 방법도 없었다. 내가 본 건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쓴 눈만 뜬 여자였으니 말이다. 역광으로 인해 정상석의 이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정상석에서 인증하겠다고 사진을 찍은 내 모습이 화가 났고 우스웠다. 나는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난 왜 매일 뜨는 해를 여기까지 와서 본다고 이랬던 걸까? 엉덩이에 묻었을 흙을 털어내고 나는 다시 백담사를 향해 소리 없이 터벅터벅 내려가기만 했다. 무엇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 설악산을 나는 그렇게 내려왔다.


3년이 지난 작년 1월 어떤 날.

앞산을 세 번 올라갔다 온 후 대충 준비는 한 것 같다며 출발한 수현이는 다음날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된 건가? 무릎 때문에 조난당한 건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없었으니 그냥 기다릴 뿐이었다. 오후 4시가 돼서도 연락이 되지 않아 한라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하고 대구에서 온 82년생 이수현이라는 여자분의 등반기록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말에 친구라고 했다. 10분 뒤 오후 3시 35분에 하산 완료하였고 백록담 정상 인증을 했다고 전해 주었다. 나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고맙습니다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수현.


다음날 안부를 묻고 토요일 저녁에 축하해 주기 위해 만났다. 먹고 싶은 게 있냐는 물음에 특별히 없다고 했다. 그래도 뭔가 없냐고 채근하니 제주도에 갔는데 회를 못 먹어서 아쉬웠다고 한다. 횟집을 가려다 이것저것 다 먹을 수 있는 활어회 시장인 매천시장으로 갔다. 거기서 골라 담은 연어회와 대방어회 그리고 소라찜과 생굴. 기력회복을 위해 보신할 수 있는 음식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나와 다르게 피부가 안 좋아져 콜라겐이 필요하다며 고른 메뉴였다. 반주와 함께 곁들이며 한라산에서의 경험담을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백록담에서 줄 서서 찍었냐고 물었고 그때 뒤에 있던 남자분이 찍어 주셨다는 말을 하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에 눈만 나온 사진. 설악산 대청봉의 내 앞에 있던 여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혹시 그때 그 여자인 걸까? 그럴 수는 없다. 서울말을 쓰는 여자였다. 그래서 서울여자란 말인가? 이수현이도 서울말을 쓴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말을 쓴다. 그리고 마스크와 두 눈. 뭐가 다른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자. 카메라에 담긴 그 사람과 그곳은 역광으로 인해 판별할 수 없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고 아주 높은 곳에서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거면 된다. 그래 그때 그 여자라고 하자. 카메라에 담긴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쓰고 두 눈만 보이기는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뭐가 중요할까 싶다.

가야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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