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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Cumi Sep 02. 2017

마음도 진화한다!

대니엘 데닛의 '마음의 진화'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9권 412~ 416 천병희 역 숲 출판사)


일리아스가 역사적 사실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화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은 이야기일뿐더러, 목숨보다 명예를 선택한 영웅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넘쳐난다.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나가 불멸의 명예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많은 자손을 남기며 장수하는 평탄한 삶을 살 것인가? 딜레마에 빠진다.

다산, 복제 정확성, 장수가 목표인 복제자 gene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후자의 쪽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전자 쪽을 선택하여 전사했다. 그러나, 불멸의 이름을 얻었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 현재의 생물학계의 주된 이론으로 자연선택의 선택자는 개체가 아니라 gene이다.

그럴진대, 어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인간 개체는 운반자 주제에 어떻게 gene의 목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선택설에 어긋나 보이는 이런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그것이 바로 문화 복제자 meme이다. 그리고 meme의 개념을 자신의 철학에 적극적으로 접목시킨 학자가 바로 ‘대니얼 데닛’이다.


3인칭 마음 전달자 (자유의지 동봉) ,  대니엘 데닛( Daniel Dennett) 


대니엘 데닛


대니얼 데닛은 다른 철학자들의 눈 밖에 날 정도로 독실한(?) 다윈의 사도로서 마음의 영역에 어떠한 신비주의적 요소도 없고 마음은 생물학이라고 주장한다. 유물론적으로 말하며 마음은 물질의 운동이며, 곧 마음은 뇌의 작용일 뿐이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내면화되는지 알길 없다며 불가지론으로 미뤄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데닛은 그런 태도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의식에 대해 파고들었다. 데닛은 마치 다윈처럼 기존의 것을 전복시켰다. 


먼저, 데카르트적인 이원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정신 또한 뇌로부터 연유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감각질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질이란 의식은 본유적, 사적이며, 표현할 방법이 없는 ‘날 감각의 느낌’을 말한다.

셋째,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는 데카르트 극장도 없다. 극장 객석에 앉아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난쟁이가 있다는 설정은 이제 그만 하자고 단언한다. 


결과, 의식은 일련의 자극(spike trains)'들이 다양한 구조를 통해 분산적으로 처리되면서 연속적으로 생성되고 편집되는 이야기들의 흐름 같은 것이다. 단일한 의식 행위자처럼 느끼는 이유는 수많은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쏠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의식을 풀이하는 데닛의 사유에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데닛은 마음을 연구하는 전략적 태도를 스스로 만들어 내었다. 인간은 자기의식에 대해 자신만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1인칭 적 태도를 지닌다. 데닛은 의식에 대한 1인칭 태도를 3인칭으로 바꿔야 과학적 예측과 분석이 가능하다면서, ‘지향적 자세(intentional stance)’를 취한다.


지향적 자세란 어떤 존재자를 마치 믿음과 욕구를 고려하여 행동하는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gent) 인양 상정해, 그것의 행동을 예측하고 해석하는 전략을 뜻한다. 다시 말해 어떤 존재자의 행동이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그것을 행위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지향적 자세로 그 존재자의 행동이 널리 예측이 되면 그 존재자는 지향계(intentional system)이다.



자, 그럼 데닛의 지향적 자세로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바라보자.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승리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업적을 남겼을 경우 후세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일이 생물학적 장수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신과 인간의 아들인 자신은 전쟁에서 업적을 남길 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러한 의식으로 아킬레우스는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덧붙여 보려 한다. 아킬레우스 행동의 근원적 이유를 따져보면 전쟁이라는 meme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럼 이번에는 지향적 자세로 '전쟁이란 meme'을 살펴보자

전쟁은 아킬레우스 같이 유능한 장수를 참가시켜야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전쟁은 승리하면 장수에게 명예로운 이름이 주어진다고 믿고 있다. 전쟁은 인간이 생물학적 장수보다 명예로운 이름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가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은 밈의 복제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질문 하나를 더 얹기로 한다. 


과연 아킬레우스의 선택이 meme의 복제 정확성, 다산, 장수를 위해 취해졌을까?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실천하는 자유의지의 작용은 없었을까? 


대니엘 데닛은 인간의 내면까지 유물론적으로 설명하는 인지과학자이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도 다른 인지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이다.‘라고 말한다. 

또다시 멈추지 않고 질문을 해보면, 의식과 사유가 전적으로 뇌와 신경계의 물질적 산물이라 했는데, 도대체 자유의지는 어디서 온다는 것일까?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은 양립 가능론, 양립 불가론, 자유의지론, 제거론 등 현재에도 열띠게 진행 중이고, 쉽게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대니엘 데닛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유의지를 주장할 것이다. 

(내심, 그러길 바란다. )


수염 4총사, 1.찰스다윈 2. 톨스토이 3. 모네 4. 대니엘 데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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