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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Cumi Aug 27. 2020

액션 독서의 시작

‘호밀밭의 파수꾼’의 코울필드 놀이

나에게 좋은 책의 기준은 ‘무언가 나를 충동하게 만드는 가’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생기는 물둘레처럼, 글을 읽다가 가슴에 파장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행동해야할 때란 아주 좋은 신호다. ‘책 속에서 받은 영감을 그대로 행동에 옮겨야지’ 하는 정신이 바로 내가 독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속의 문장을 실천해봄으로써 행동으로 다시 쓰는 일. 읽으켜 세우는 일?! 그런 맛에 독서를 한다고 할까? 나는 이것을 ‘액션 독서’ 라고 부르기로 했다. 읽은 것이 헛되지 않고, 우리들의 삶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내 청소년시기에 압도적인 영향을 준 책으로 으뜸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아마도 나의 액션 독서의 원조일 것이다. 당시 소담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으로 읽었는데, 귀여운 소년이 공작새 깃털을 단 모자를 쓴 그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도 책가방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서 책에는 손 떼 기름 떼 알 수 없는 얼룩들이 많았다. 그 떼 묻은 책 빛깔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알다시피,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우려가 있음에도, 필독서로 정평이 난 책이다. 그래서 더 끌린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 ‘리 하비 오스월드’가 저격했던 장소에서 이 책이 발견되었고, 1980년 존레논의 살인범 ‘마크 채프먼’은 범행 후, 경찰이 당도하기 직전까지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 후 호밀밭의 파수꾼은 ‘암살자의 책’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CIA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비밀병기를 키우는 실험을 진행한 적도 있다고 밝혀졌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어떤 면이 정신 이상적 폭력성을 진작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유추도 할 수 없지만, 실로 뭔가 충동적이긴 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홀든 코울필드에게 홀딱 빠져, 마치 자신이 코울필드인 것처럼 느끼는 현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낙제생, 퇴학생, 자퇴생인 말썽쟁이 괴짜, 혼잣말 잘하는 홀든 코울필드는 거의 모두의 내면 깊은 곳에 사는 인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소설속이나 드라마 캐릭터에 자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는 현상은 독자가 캐릭터의 신발을 신고, 진짜 그 인물이 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혹은 가상의 캐릭터임에도 진짜 실존하는 친구처럼 의사사회작용(para- social interaction)을 하며, 캐릭터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학 감상은 이상 심리가 아니다. 작품에 몰입했을 때 일어나는 자연스런 심리적 경험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제롬 데이비스 샐린저’는 독자들이 보이는 코울필드에 대한 극심한 동일시 및 의사사회작용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이 한권의 책을 쓰고 나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내가 바로 홀든 코울필드요!”라며 스토킹처럼 찾아오는 독자 팬들로 인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고, 그 후 요가를 하며 평생 골방에서 혼자 글을 쓰는 은둔 작가로 변해갔다. 당시 샐린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겪은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었는데, 불쑥불쑥 찾아오는 팬들은 그를 공포에 몰아넣었다고 한다. 


왜 독자들은 그렇게 작가 샐린저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을까? 그것은 바로 주인공 홀드 코울필드가 그렇게 하도록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3페이지를 통해 이를 추론할 수 있다.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다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친한 친구가 되어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은 좀처럼 없다. 이삭 데니젠* 같은 작가도 내가 전화를 걸고 싶은 작가이다. (~). 또한 서머셋 모옴이 쓴 <인간의 굴레> 같은 것도 들 수 있다. (~). 그러나 모옴에게는 전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모옴은 내가 전화하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토마스 하디에게는 전화를 걸고 싶다. 


(33p. 호밀밭의 파수꾼. 소담출판사. 김재천 역) 


만약 나도 샐린저와 동시대에 살았다면, 그에게 전화하여 만나자고 졸라댔을지 모른다. 


1951년 미국 초판. Jerome David Salinger (1919~2010) 


이 책의 문장은 대부분 코울필드의 허튼 소리들, 삐딱한 혼잣말인데도, 어떤 독자들에게는 코울필드의 신발을 신고, 엉뚱한 일탈을 저질러 보고픈 충동을 일게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의 몇 개의 구절로 인해 발칙한 용기를 내기도 했다. 


Case 1. 거리에서 


나 같은 지독한 거짓말쟁이는 아마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거다. 정말 끔찍한 놈이다. 가령 잡지를 사러 가게에 가는 도중에 누가 나더러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면, 난 오페라 보러가는 길이라고 대답하기가 쉽다. (30p)


목욕을 가는 길에 우연히 친구를 만났는데, 불현 듯 이 문장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영화를 보러간다고 뻥을 쳤다. 친구는 내 손에 들고 있는 투명 비닐 목욕가방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Case 2. 시험지에 적은 글 


스펜서 선생님께, 제가 이집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매우 재미있었지만 저는 이집트인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낙제점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하긴 영어 이외엔 모두 낙제점을 받고 있으니까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24P)


아마도 학생 독자들은 모르는 시험문제를 대처할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 중 어느 법대 여대생은 헌법 시험지 밑에다 이와 비슷한 구절의 편지를 썼다. ‘교수님, 제가 헌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정도 뿐이네요. 교수님의 강의는 매우 훌륭했지만.... 제가 따라 가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은 정말 인자하신 분 같아요. 제가 만약 결혼한다면 교수님께 주례를 부탁하고 싶어요. 해 주실 거죠?’, 세상에 이런 헛소리는 없을 것이다. 그 결과, D-가 나왔다. 창피해서 재수강도 포기했다.  


Case 3. 택시 안에서   


코울필드    이봐요, 아저씨! 저 센트럴 파크 사우스 가까이에 있는 연못의 오리 있잖아요?  작은 호수 말이에요. 그런데 그 연못의 물이 얼면 그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시나요?  이상한 것을 질문하는 것 같지만 혹시 알고 계세요?


택시기사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날 놀리는 건가? 모르겠는데...


코울필드   아뇨. 그런 것에 흥미가 있어서요. 저를 에그몬트 호텔로 데려다 주세요. 

근데, 아저씨, 도중에 차를 세워 놓고 칵테일 한 잔 하지 않으실래요?  내가 사죠 돈은 있으니까요.


택시기사: 그건 안 되겠어요. 미안해요.


그 운전기사는 제법 말상대가 되는 인물이었다. 성격도 대단했다. (94~ 95p, 정리)


그 여대생은 알콜 섭취를 비타민 복용하듯 정기적으로 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여름밤,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며 말이 잘 통한다 싶어 ‘칵테일 한잔 어때요? 내가 살테니...’라는 제안을 했다. 택시기사는 따끔하게 이렇게 어이없는 승객은 처음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술주정이 아닐 수 없다.  


왜 내가 이러한 쓰잘데기 없는 거짓말과 헛소리를 하고 다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코울필드의 이상한 허세가 좋아서 한번 따라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때 나는 그의 바람 구두를 신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나는 ‘코울필드’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더 이상 코울필드의 역할을 하기 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이란 연못은 이미 얼어버렸는데, 계속 코울필드 놀이를 하는 것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한 오리 신세가 된 것 같았다. 오리들은 어디로 가야했을까? 나는 어떻게 성숙해야 했는가?


이제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왔다. 중학교 2학년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때부터 줄곧 미스테리로 남은 문장에 대해서이다. 순수하고 지적이고 매력적인 줄 알았던 앤톨리니 선생님이 코울필드에게 직접 메모지에 적어준 글귀이다. 이 문장은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계시적인 구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멋진 아우라를 풍기던 앤톨리니 선생님이 자고 있는 코울필드를 성추행하는 장면이 벌어지면서,  알고 보니 앤톨리니는 말과 행동이 다른 ‘이상한’ 속물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이 문장에 대한 후광이 확 사라져버린다. 그래도, 오래도록 빛난다.  


이 문장은 뷜레름 스테켈(Wilhelm Stekel, 1868~1940)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것을 샐린저가 소설 속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 ( -> 삶)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소담 출판사.  271p. 이 번역은 오역이다. )


“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민음사. 248p).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the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Littel, Brown and Company. 244p)


액션 독서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 중요 문장을 제대로 해석해 나의 삶에 반영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친구에게 이 문장의 의미에 대해 물어봤다.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면서도 책도 많이 읽고, 특히 순정만화에 나오는 캐릭터그리기를 잘해서, 그 중 눈을 초롱초롱 반짝 거리게 잘 그려서, 내가 부러워하며 좋아했던 친구다. 그녀는 내 질문에 마치 던져진 공을 받아내듯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중딩이 중딩친구한테 물어본 상황이다. )

문제는 당시 우리 둘 다 소담출판사 판본으로 읽었기 때문에, 그 문장은 잘못 해석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해석은 굉장히 짧고 명료했고, 나를 매료시켰다. 



그 친구: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인간은 성숙하면 비겁해진다는 걸 느꼈어. 그래서 난 미성숙한 인간으로 살고 싶어. 순수하게.... 


그녀의 해석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성숙한 어른들은 죄다 나쁘거나 속물이거나 변태거나 꼰대다. 반면, 여동생 피비는 미성숙하지만 순수한 영혼으로 코울필드를 돕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니까 이 문장의 오역은 성숙한 어른을 비꼬는 풍자적인 문장으로 읽힐 수 있다. 


청소년기부터 나는 이 문장들을 오해하며, 인간의 비겁한 특징을 가지기 않기 위해 성숙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성숙함의 괴짜적 기질들을 키우며 성장했던 거 같다. 카프카, 랭보, 다자이 오사무, 노발리스, 실비아 플라스 ... 요절한 작가에게 더욱 애틋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 후, 삼십대가 된 후, 독서회에서 민음사 판본으로 다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을 때, 이럴 수가! 이 문장을 오해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숙함에 대한 냉소적인 문장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독서회 멤버들과도 이 문장에 관해 토론하였는데, 저마다 조금씩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마도 다른 견해를 갖는 지점에는 ‘humble’을 어떻게  받아들으냐의 문제일 것이다.


옥스퍼드 영영사전에 의하면,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형용사 humble은 두 가지 뜻이 있다.  

# humble : 

1. showing you do not think that you are as important as other people

다른 사람만큼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

즉, 자신을 낮추는, 상대방에 대한 겸손한 자세의  


2. having a low rank or social position 

낮은 지위 또는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는

즉,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처지의  


이 두 가지 뜻을 반영한다면, 나의 직역은 두 종류이다.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the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원하는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1)겸허하게겸손하게 혹은 2)초라하고변변치 않고누추할지라도 살아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즉, ‘성숙한 인간은 자신이 지키고픈 인생의 가치를 위해 humble하게 살고자 한다.’로 축약된다. 민음사 판본의 경우, 역자가 고민을 많이 해서, humble를 ‘묵묵히’로 번역했는데, 그 뉴앙스를 잘 살린 거 같다. 


이제 이 문장의 진짜 뜻을 알게 된 뒤, 이 액션 독서가는 성숙함을 추구하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그렇다. 미성숙한 인간으로서 고귀한 죽음을 던지며 요절하기에도, 이미 너무 늙어버렸고 말이다. 이제 홀든 코울필드도 나이가 들어 성숙해질 수 있는 세월이 흘렀으니까.  


진정 나는 험블하게 살아가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밝힌다. 단 내 인생의 험블함이 ‘초라함’이란 두 번째 뜻보다, ‘겸손함’이란 첫 번째 뜻으로 더 많이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함은 초라하고 볼품없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소중한 하나를 위해서 묵묵히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내려놓고, 감내해야할 공간의 폭을 조금씩 넓히며 살아가라는 선배의 조언이 생각난다. 


소담출판사 판본의 표지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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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 데니젠 Isak Dinesen (1885 ~ 1962). 덴마크 여류작가. 대표작 <Out of Africa>. 

1985년 헐리웃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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