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텔메이커 체크인 Jul 05. 2020

호텔 로비가 점점 뒤로 숨는 이유

갑자기 제주도로 체크인 : 유민미술관


제주도 2일차.

오늘은 함께 동행했던 지인과 갈라서는 날이다. 각자 목적이 있어서 제주도로 왔기에 첫 1박만 함께하고 다음날 부턴 각자 일정대로 흩어지기로 했다.


사실 우리 둘은 타지에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미술관에 가보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갑자기' 제주도로 온 만큼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미술관을 알게 되었는데, 우선 어떤 전시를 하는진 모르겠고 건물 외관만 봤을 땐 디자인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우린 대책없이 제주로 온 만큼 헤어지기 전에 그 미술관에 가보기로 한다.


그 미술관은 바로 '유민 미술관'


그리고 난 이 곳에서 특이하게도 '호텔 로비(프론트)가 점점 더 뒤로 가는 이유'를 이 곳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단 유민미술관이 어땠는지 쭉 살펴보자.


유민미술관!




# 미술관 입구


휘닉스 파크 안에 있는 유민 미술관. 이 날 따라 안개가 너무 짙었다. 그 안개들 속에 은은하게 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1층 짜리 단층 구조로 고즈넉 하게 서있는 이 건물. 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그 단층 건물은 놀랍게도 미술관이 아닌 티켓을 구매하는 곳이 었다. 세상에나, 그럼 미술관은 대체 어딨다는 걸까. 거짓말 같이 티켓을 구매하자마자 거짓말 같이 비가 쏟아진다.


직원분께 물어보니 미술관은 더 걸어 들어가야 있다고 한다. 때마침 미술관 소유 우산이 있어서 빌려가기로 한다.


오히려 비가 쏟아지니 운치있다. 우산 위로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키가 낮은 식물들을 둘러본다. 하지만 미술관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천천히 걸었을까, 사람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문이 있다. 이 문 양 옆엔 돌담이 쌓여 있었으며, 문은 뚫려 있었다. 그리고 문 너머 v자 형태로 대칭구조인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문을 통과하면

왠지 다른 공간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 나도 모르게 스며든다


길 양옆으로 사선으로 기울어진 지붕(?!) 때문에 빗물이 가운데 길 쪽을 향해 흘러내린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치 모든 에너지를 가운데에 끌어 모으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길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 옆의 벽들이 높게 서있다. 그렇다. 아주 티 안나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눈 앞엔 유리 창 없는 창문이 가로로 길게 뻗어 있다. 이 또한 돌담으로 만들어져있다. 이 창문 너머 들판이 시원하게 보인다. 이 돌담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다.


더 넓게 들판을 볼 수 있었을텐데 시야가 제한되니 더욱 집중하게 된다. 대체 뭘까. 이 공간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렇게 왼쪽으로 꺽어 'ㅁ'자 구조로 되어 있는 건물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간다. 왠진 모르겠지만 우리 둘은 점점 말을 안하게 되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발소리와 빗소리뿐.


5분 정도 걸어갔을까? 분명 내 눈높이에 있던 돌담들은 어느새 내 머리를 훌쩍 넘어 고개를 위로 완전히 젖혀야만 볼 수 있다. 공간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겸손해지며 겸허 해지기까지 한다. 더 놀라운 것은 5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서 이 돌담이 이렇게 높아졌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간 안에 스며들게 되었다.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러고나니 드디어 미술관 문 앞에 도착했다. 아직 전시는 시작도 안했지만, 겸허한 자세로 전시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아주 낮은 마루 위로 올라가 신발을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전시장은 어두컴컴하고, 벽에 붙어있는 부분조명 뿐이다. 이 때문인지 공간이 더욱 깊이 있게 느껴지며 전시에 '몰입' 할 수 있게 된다.


유민미술관 내부


우리가 걸어 내려온 만큼 천장은 상당히 높다. 교회천장이 하늘로 치솟듯 높이 있는 것처럼 우린 천장이 높을 수록 겸허해지기 마련이다.


놀라울 정도로 공간에 스며든다.


이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미술관 티켓을 구매하고 미술관으로 향하기까지 시야가 탁 트여 있는 곳에서 점차 우리의 시야를 좁히고 우리도 모른채 아래로 내려오게 만든다.


공간이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그래서 우린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녹아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투숙객이 호텔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처럼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 호텔에서 위압감을 느낀다면


우리가 호텔을 처음 마주할 때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럭셔리하고 삐까뻔쩍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왠지 모르게 '겁'부터 덜컥 난다.


평소에 우리가 마주했던 공간이 아닌 만큼 무의식적으로 부담감을 느낀다. 그 안에선 본연의 '나'는 없고 공간에 맞게 '격'을 차리기 마련이다.


그리고나선 나 밖에 없는 객실 안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휴, 드디어 호텔에 왔구나' 라며 말이다.


하지만 호텔은 그런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고대 그리스에선 전쟁과 분쟁을 잠시 멈추고 평화를 기원하며 '올림피아드' 즉, 지금의 올림픽을 개최했다.


지금도 올림픽을 열면 각 국에서 여행객들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개최국으로 여행을 오듯, 고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엔 비행기나 기차와 같은 편한 이동수단이 있었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 걸어갔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하고 심지어 병에 걸리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선 이 '평화'라는 목적 하나 때문에 머나 먼 여행을 떠나는 이 여행객들을 '숭고한 자' 들이라 표현했다. 그래서 그들을 환대하는 것은 하나의 '미덕' 이 되었고 여행객을 '환대하는 관습'이 형성되었다. 그것이 바로 '호스피탈리타스(hospitalitas)' 즉, '환대' 이다. 지금으로 치면 hospitality이고 이는 'hotel'로 변화해왔다.


손님을 맞이하는 이는 손님을 환대할 것이며, 여행객들은 그런 사람들을 다시 환대한다. 지친 심신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이것이 어쩌면 호텔의 본질이지 않을까.


호텔 안으로 들어갈 때 부담감과 위압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왜냐면 우린 공간에 꽤나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호텔은 언제나 우리들을 환대한다. 반갑게 맞이하며 진심으로 대한다. 하지만 투숙객들은 부담스러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죽하면 셀프체크인 시스템을 도입 했을까.


물론, 해외 관광객들의 언어장벽과 언택트 서비스가 떠오르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직원과 대면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투숙객들 또한 셀프체크인을 선호한다.


유민 미술관에서 내가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듯 우리가 호텔을 처음 마주 했을 땐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호텔들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우리의 일상이

'비일상'으로 갑자기 확! 하고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경계심을 낮출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 그래서 호텔들은

로비를 점점 뒤로 뺀다


공간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린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편안하게 이 공간을 느낄 수 있다. 유민 미술관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들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바로 프론트 데스크를 뒤로 치워버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살펴보자.


모든 호텔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정면으로 프론트 데스크가 보이고 우린 우리도 모르게 위압감을 느낀다. 마치 CEO실은 항상 책상이 문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사실 호텔들이 우리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이 서비스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그래서 호텔들이 내린 결론은 '그래 그럼 치워줄게' 이다. 프론트 데스크를 정문에서 보이지 않는 쪽에 배치를 하기 시작한다. 혹은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면을 마주보는 형태가 아닌 비스듬하게 옆으로 배치해놓는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프론트데스크의 직원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아닌, 공간을 먼저 둘러볼 수 있게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해외와

국내로 각각 하나씩 들어보겠다.


우선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혹스턴 파리'

가장 인상적이다.


이 호텔은 들어가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웅? 체크인 어디서 해야해?' 였다. 왜냐면 이들은 로비를 로비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public livingroom'이라 표현하다.


이것이 혹스턴 파리의 로비. 프론트는 보이지 않는다.
혹스턴 파리 로비의 일부


단어에서 느껴지든 이 공간은 투숙객이 아닌 사람들 마저 편하게 와서 커피 한 잔 기울이며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흡사 코워킹스페이스 같다. 충격받았다.

로비 공간을 이렇게 잘 활용할 수 있다니.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에이스 호텔' 또한 그렇다고 한다. (매거진B로 간접 경험한 결과)


그리고 이 public livingroom 을 지나치고 나서야 프론트데스크가 있다. 혹스턴 파리의 첫인상은 정말 훌륭했다. 편안하고 이 공간을 느낄 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나도 파리지앵의 라이프스타일에 스며들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국내는 어떨까. 한 번 살펴보자.


L7 홍대가 생각난다. 이들 또한 로비를 공용 공간으로 설계 해놓았다. 홍대 특유의 '자유로움' 잘 살려놓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로비엔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누군가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업무를 보고 있다. 여기도 혹스턴 파리 처럼 코워킹스페이스의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로비 공간과 체크인하는 공간을 분리 시켜 놓았기 때문에 지켜보는 직원들 또한 없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 공용 공간을 활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좌) L7 홍대 체크인하는 곳 / (우) L7 홍대 로비



이렇듯 공간 안에

스며들게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호텔에서의 생활은 일상 속에서 비일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이 투숙객을 지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체크인 하고 호다닥 객실로 도망치는 가는 것이 아닌, 로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위압감을 느끼지 않고 집처럼 편안하게 녹아들 수 있게 하는 것이 호텔 경험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마치 유민미술관이 전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티나지 않게 관람객들을 공간 안에 스며들게 한 것 처럼 말이다.





<갑자기 제주도로 체크인>은 계속 이어집니다.

부지런히 호텔관련 생각과 호텔리뷰 글들을 브런치에 담아보겠습니다.



더 많은 호텔이야기들을 간편하고 편하게 보고싶으신 분들은 제 인스타그램을 참고해주시면 됩니다!

호텔리뷰어 체크인 인스타그램 보러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시작 1시간만에 지갑이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