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제주도로 체크인 : 부록
아무런 계획 없이 갑자기 떠난 4박 5일간의 제주. 정해진 곳이라곤 체크인해야 할 호텔들 뿐이었다.
제주도에선 이상하게 용기가 더 생겼다. 비행기를 타고 넘어온 섬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평소라면 쉽게 하지 못했을 것들을 덥석 덥석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나는 항상 어디를 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편이었지만 렌터카도 빌리지도 않은 채 '뭐 가면 있겠지' 라며 현장에서 빌리는 것부터,
지갑을 잃어버려도 호텔 구경하기 바빠서 크게 맘에 담아두지 않았다.(운 좋게 다시 찾았지만)
갑자기 일출이 보고 싶어 전날 잠을 자지 않고 밤새 글을 쓰며 일출시간에 맞춰 차 끌고 나가는 것도 처음 (하지만 안개로 일출 못 봄),
해안도로 따라 음악을 들으며 낭만적인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빌렸던 렌터카는 구형 qm6 여서 블루투스는커녕 스마트폰과 차량 스피커가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비에 영화 미스트처럼 지독할 정도로 해무가 깔려 낭만은커녕 목숨 걸고 운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한 호텔에서 2박 하면서 다른 객실로 옮겨가며 2박을 한 경험도 처음이거니와
체크인, 체크아웃, 체크인, 체크아웃 이렇게 들어갔다 나갔다 호텔을 옮겨다닌 경험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해외여행 갔을 땐 보통 2박+2박 이런 식으로 움직였었다)
그렇게 100만원으로 제주도에서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진 호텔 3군데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상당히 색다른 경험이었으며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이 있었다.
에어비앤비가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라며 엄청난 카피를 들고 브랜딩을 할 때 그때까진 호텔들은 몰랐을 것이다. 에어비앤비가 이렇게 강력한 파워를 갖게 될 줄이야.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전 세계 어딜 가든 동일한 퀄리티, 동일한 서비스, 일관된 경험을 주는 글로벌 체인호텔들. 물론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을 해왔지만
이젠 그 장점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에어비앤비는 이미 단순 잠만 자고 그치는 것이 아닌 현지에서의 '경험'에 집중했다.
서울이란 도시가 있으면 가장 서울스러운 스테이들이 곳곳에서 탄생하고 그 스테이들 주변으론 서울을 즐길 수 있는 정말 로컬 플레이스들 혹은 액티비티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쏟아져 나왔다.
반면에 호텔들은 투숙객들을 문 밖으로 내보내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다.
왜냐면 그들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호텔 안에서 비용을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 다양한 프로모션들을 제공해가면서 호텔 내의 부대시설 사용을 권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말이다.
우리가 정말 주말에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한 '힐링'을 하기 위해 '호텔콕' 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타지로 여행 갔을 때 발생한다.
우리가 파리로 여행을 갔다고 생각해보자.
지금 파리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호텔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것도 새벽같이. 그리고 온몸에 체력을 파리에 다 쏟아붓고 녹초가 된 상태로 객실로 들어온다.
그리고 호텔 서비스를 즐길 겨를도 없이 잠이 든다. 파리뿐만이 아니다. 서울 사람이 부산을 가거나 제주도로 가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한다.
그럼 정말 호텔은 잠만 자는 곳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호텔 비용이 아깝게만 느껴질 것이다.
지금 호텔들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에어비앤비한테 호되게 혼나고 코로나 19한테 호되게 혼난 호텔들은 이제 변화를 시도한다.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이다.
제주 성산읍에 있는 플레이스캠프 제주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미 이들은 이름에서부터 '호텔' 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이들이 놀라운 것은 객실에선 '쉼'에 집중을 하기 위해 객실에 불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대표적으로 TV를 치워버렸다. 객실이 3.3평이란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제주까지 와서 객실에 박혀 있을 거야??!!' 라며 우리들에게 외치는 듯하다.
불필요한 가격 거품도 없애버린다. 이들의 스탠다드 객실요금이 39,000원부터 시작하는 것부터 카페, 펍, 레스토랑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샵까지 가격이 상당히 합리적이다. 돈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뭐가 있을까. 이 곳에 있으면 돈을 써서 즐거운지 아니면 즐거워서 돈을 쓰는 건지 모르는 지경이 돼버린다. 조심하자
아무튼, 이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액티비티' 프로그램이다.
보통 호텔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하면 대체적으로 이런 식이다. 뭐 호텔 내 와인바가 있다면 호텔 소믈리에가 직접 알려주는 와인 이야기, 호텔 내에 스파시설이 있다면 스파 마사지 즐기기 등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텔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하다못해 지역성(로컬리티)을 내세우며 안다즈 강남처럼 조각보 만들기 체험 등이 있지만 참여비용을 보면 조각보 안 만들고 싶어 진다. (반면, 현대카드 트레블 라이브러리 입장하게 해 주는 건 완전 굿이었다)
물론 관광객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저 정도 특급호텔급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소비력도 가늠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쉬울 뿐이다.
모든 호텔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급 호텔들이 제시하는 액티비티들은 컨텐츠 자체가 재미가 없거나 가격이 재미가 없거나 이다.
하지만 플레이스캠프 제주(이하 플캠제주)를 보자.
이들은 '나 혼자 잘살면 되지'를 추구하지 않는다.
액티비티 프로그램은 지역 호스트들과 협업한다. 예를 들면 서핑 액티비티를 구매하면 서핑을 배우러 호스트에게 가서 배우고 즐기면 된다. 서핑뿐만이 아닌, 스냅사진 찍기, 일출 보러 가기, 하이킹, 라탄 클래스, 쿠킹클래스 등 상당히 다양하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지역 호스트들과 함께 한다는 것.
호텔과 지역이 상생한다는 것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이게 진짜 로컬리티를 내세우며 호텔, 지역, 투숙객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아닐까?
플캠제주는 스스로 'NOT JUST A HOTEL'을 외치고 있다. 잘 생각해보자.
호텔급 서비스에 에어비앤비처럼 로컬 감성을 '경험' 할 수만 있다면. 그 파워는 엄청날 것이다. 이건 기술력으로 어떻게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편의성과 사용성을 좋게 개선할 순 있겠지만, 인간의 감성이 전적으로 작용하는 그 '경험'을 붙잡기 위해선 꽤나 많은 고민을 해야 할 듯하다.
또한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단적인 사례가 있지 않던가. 바로 에이스 호텔.
전통적이고 보수적으로 느낄 수 있는 호텔산업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hospitality의 개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 호텔이라고 해서 새로운 신기술이 붙여져서 발전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드웨어적인 것 말고 소프트웨어적인 것이 달라지고 있다.
호텔에 잠만 자러 오는 곳이 아닌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브랜드별로 타겟이 모두 다르겠지만, 앞으로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내가 만들고 싶은 호텔에 올 땐 이랬으면 좋겠다.
'어 이따가 00 호텔 로비 카페로 와.
거기서 스터디하자'
꼭 잠만 자는 숙박이 정답이 아니다.
호텔은 이제 숙박업에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
아쉽게도 나는 항상 여행 일정의 끝자락에 가는 지역과 숙소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 곧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행 시작 때는 10 정도로 공간을 느꼈다면 여행 막바지엔 6 정도? 그래서 난 가급적이면 마지막 일정의 숙소는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잡곤 한다.
해비치 호텔이 그랬다. 제주에서 마지막 호텔이었기 때문에 이 호텔에선 나도 모르게 '휴식'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해비치 호텔 안에도 다양한 컨텐츠가 있는데 딱 필요한 것만 이용하고 나머진 써야 할 글들 정리하면서 최대한 휴식에 몰두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지로 여행을 가서
에어비엔비처럼 지역의 특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거나, 호스트 센스에 따라 독특한 하루를 경험할 수 도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각자만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호텔은 어떨까. 지극히 폐쇄적이다.
그리고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지로 여행 가서 호텔을 잡는 이유가 뭘까?
게스트하우스와 에어비엔비가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호텔의 전문적인 서비스와 안전함. 그 어떠한 숙박업 유형들도 호텔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여기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제주도가 아닌 아예 다른 나라라고 생각을 해보면 크게 와 닿을 것이다.
유럽만 가도 당장에 치안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호텔을 잡게 되면 일단 맘이 놓인다. 그리고 내가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면 낮이든 밤이든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일단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텔은 그 지역의 시그니처가 되곤 한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갈 때면 그 지역에 유명한 호텔을 찾아보기 마련이다. 물론 금액을 보고 바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꺼버릴 수도 있지만, 꼭 1박만이라도 좋은 곳에서 투숙해보고자 하지 않던가.
마치 파리에 가서 여행 일정에 에펠탑을 꼭 끼워 넣는 것처럼 말이다. 국내도 마찬가지이다.
제주도라고 하면 단연 신라호텔 제주, 롯데호텔 제주로 사람들이 몰린다. 이처럼 제주도를 상징하는 호텔들이 있다. 그리고 그 호텔들의 디자인을 살펴보자. 서울에선 느껴볼 수 없는 디자인으로 중무장을 했다. 그렇다. 디자인에서부터 느껴지듯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호텔들이다.
심지어 가격대가 꽤 나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올지 모른다는 심리와 당분간은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더해져 여행 갈 자금을 호텔에 과감하게 쓰는 것이 아닐까.
이제 호텔에서도 그 지역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고, 최고의 서비스를 24시간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 심지어 쾌적하기까지 하다.
사람마다 조금씩 성향이 다르겠지만, 이렇게 감성과 편의가 합쳐지니 타지로 여행 가서도 '호캉스'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더 재밌는 것은 소득이 잡히기 시작하는 사회초년생부터 3-5년 차 직장인들은 더욱 과감하게 투자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로 출근하여 남을 위해 살았으니 이때만큼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꼭 고가 브랜드 호텔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만 봐도 알 수 있다. 1박 비용이 스탠다드룸 기준으로 5만원 미만이다. 대신 이 곳은 진짜 '제주'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세팅되어 있다.
그렇다고 객실 상태와 퀄리티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호텔인 만큼 '쉼'에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이제 앞으로 호텔들의 움직임이 더욱 기대된다.
내가 나중에 만들고 싶은 호텔 브랜드 또한 호텔의 전문성과 에어비엔비의 감성이 녹아드는 그런 브랜드가 탄생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이제 부산행 기차가 부산역에 도착했다.
<갑자기 제주도로 체크인> 끝이 났지만
<갑자기 부산으로 체크인>은 시작된다.
과연 이번엔 어떤 호텔들을
느껴보고 올지 기대된다!
브런치에 올라오지 못한 호텔 리뷰들을 빠르게 그리고 간편하게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인스타그램에 오셔서 봐주시면 됩니다!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