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부산으로 체크인 : 파크 하얏트
이번에 부산을 내려오면서 어디 호텔을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몇 시간 씩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괜찮은 호텔들을 거의 암기하다시피 들여다봤지만 괜찮은 곳들이 너무 많아서 선택 장애가 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사람들에 물어보기로 맘먹었다.
'부산 호텔 중 어디가 괜찮은가요?' 라며 긴급 SOS 요청을 했다. 근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추천해주신 호텔들이 '몇 군데'로 좁혀졌다. 그중 하나가 <파크 하얏트 부산>이었다.
왜 그렇게들 여길 추천했을까. 때마침 지난달에 파크 하얏트 서울을 다녀와서 인지 부산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좋아, 너로 정했다'
호텔 예약을 하러 홈페이지로 간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편에서도 설명했듯이 하얏트 계열의 호텔은 '최적가 보상제도'가 있기 때문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결제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보다 저렴한 것을 발견했을 경우 하얏트 측에 제보하면 된다.
그럼 그 가격으로 맞춰주고 추가 20% 할인 혹은 하얏트 월드 보너스 포인트를 준다. 이건 엄청난 자신감이다.
아무튼, 가성비(?!) 좋게 예약하러 공식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별생각 없이 '토-일'을 선택하고 예약금액 확인을 해본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비싸다.
1박 2일 일정이었으면 그랜드 하얏트 때처럼 '그래! 이것도 경험이다' 하면서 질렀겠지만 부산에서 4박 5일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섣불리 지를 수가 없었다. 생각을 좀 해보자.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사비 털어 호텔을 돌아다니며 리뷰한 다곤 하지만, 4박 모두 5성급을 뛰어넘는 5성급 호텔들을 다니기엔 살짝 손이 떨렸다.
그래서 '토-일' 대신 '일-월'로 바꿔본다. 역시. 가격이 떨어진다. 전략적이다.(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괜히 뿌듯)
그렇게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디럭스 오션뷰로 예약을 한다. 부산까지 왔는데 바다를 보지 않으면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바다만 쳐다볼 예정이다.
파크 하얏트 서울과 어떤 점이 다를지도 기대되었다.
개인적으로 파크 하얏트 브랜드를 좋아해서 그런지 더욱 설레었다. 얼른 올라가 보자.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와 1층에서 내린다. 직원분께서 기다렸단 듯,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서 30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아하 로비가 30층에 있다는건 뷰에 자신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투숙객과 호텔이 만나는 첫인상이 로비이기도 한 만큼 로비에서 기가 막힌 뷰를 보며 체크인을 하면 객실에 가지도 않아도 이미 그 호텔 브랜드에 대한 경험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파크 하얏트 서울 또한 가장 고층에 로비가 있었다. 더욱 궁금해졌다. 이들은 과연 어떨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곳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과 바위들 덕분인지 이색적이었다. 참고로 파크 하얏트 부산은 해운대와 인접해 있는 만큼 주변엔 고층 건물들이 쭉쭉 뻗어있는 동네에 있다.
어쩌면 서울보다 더 도시스러운 곳에서 이렇게 자연적인 분위기를 마주할 줄이야.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옛 사극에 나올법한 '등' 들이 로비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름 머리를 쓴다고 해서 '일-월'로 온 건데 나를 비롯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체크인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다들 나와 비슷하게 전략을 짰나 보다.
그리고 로비에는 라운지&카페가 같이 있다. 그래서 여기엔 커피랑 빙수를 한 번 먹으러 다시 올라오려 한다.
일단 로비에서 객실 키를 받고 바로 객실로 가보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여기도 지독하게 한국적인 느낌을 내려고 했구나'
파크 하얏트 서울은 객실로 향하는 복도에 한옥의 요소요소들을 '전시' 해놓았다. 마치 '우리가 이 정도로 한국적인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파크 하얏트 부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 눈 앞엔 한지 소재와 같은 재질로 벽면에 '기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파크 하얏트 서울에서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번 해서일까.
낯선 공간에 온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비슷한 브랜드 설계로 인해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나도 반갑다. 나 또 왔다!'
항상 어느 호텔을 가던 내가 가장 긴장되고 설레는 순간이 바로 객실 키를 찍고 '덜컥' 소리와 함께 문을 열 때이다.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 언박싱 하는 그런 느낌이다. 문을 연다.
엇 근데 너무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인다. 가뜩이나 이 날 따라 날이 많이 흐려서인지 카드키를 어디다 꽂아야 할지 보이지 않았다. 아이폰 조명을 켜서 두리번두리번거리다 암막 블라인드를 위로 올리는 버튼을 발견했다. 크. 저걸 누르면 이제 바다가 탁! 하고 보이는 건가. 떨린다. 조심스럽게 눌러본다.
미세한 기계음과 함께 블라인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두웠던 객실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어둠은 사라지고 파란빛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블라인드는 천천히 올라가지만 기다리기로 한다. 이렇게 서서히 바다가 보이는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잠시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드디어 바다가 통으로 보인다.
그렇게 짐 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만 본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바다를 보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창문에 타닥타닥 부딪히는 빗소리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맥주 한 캔을 따고 싶었다. 잠시 생각을 좀 하고 싶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점점 '생각'을 하지 않고 눈을 뜨고 감아왔다.
오늘만큼은 잠시 생각에 잠겨도 좋을 것 같았다.
아, 이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고 나의 최첨단 카메라인 아이폰 카메라를 꺼내 든다.
그러고 보니 이 객실 다른 호텔에 비해 조명의 조도가 낮은 편이다.
어쩌면 살짝 어둡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너무 훌륭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아늑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가 매일을 백색 형광등 아래에서 일을 하고 집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너무 주변이 환해서 집중이 잘 안되기도 한다.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 조명만 켜놓았을 때 분위기도 살고 몰입도 잘 되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조명 전문가에 의하면 질 좋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선 따뜻한 색상의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한다. 또한 조명의 색은 수면 호르몬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색온도가 낮은 스탠드로 비추는 것이 숙면이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파크 하얏트 부산의 객실이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 조명들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차갑게 내리는 비 속에 파크 하얏트 부산의 은은한 조명은 객실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왠지 이 객실이라면 휴식을 취하기 딱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아늑함을 즐기고 있던 도중
엄청 재미난 것이 눈에 띈다.
바로 '플러그'
아마 내 호텔 리뷰글을 꾸준히 봐온 독자분이라면 잘 아실 것이다. 개인적인 습관이긴 하지만 호텔 객실에 들어올 때 '플러그' 위치부터 확인한다.
행운인지 불행인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항상 디지털 기기들을 몸에 지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그 기기들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은 필연적이다.
호텔 객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루를 객실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전자기기들을 손쉽게 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가장 신경 써야 할 투숙객들의 사용성을 고려했는지 안 했는지는 '플러그 위치'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보통의 호텔들이라면 침대 양 옆에 멀티 플러그들을 설치해놓는다. 이마저도 한쪽만 해놓는 곳도 있다. 그런 것을 목격할 때마다 참 아쉽게 생각했다.
앞서 말한 대로 보통은 침대 양 옆에 플러그들이 위치해있다. 그리고 그 플러그들은 침대를 향해 있지 않고 침대 옆의 벽에 딱 붙어있다.
이 말인즉슨, 플러그를 이용하기 위해선 침대 누워있던 몸의 상반신을 일으켜 허리를 돌려 팔을 쭉 뻗은 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멀티 플러그와 객실 컨트롤러가 같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버튼들을 이렇게 불편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크 하얏트 부산은 기가 막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잘 풀어냈다.
침대 옆에 있는 보조 테이블의 모서리를 깎아 멀티 플러그와 객실 컨트롤러가 침대를 향해 있다. 즉 누워서도 아주 아주 아주 간편하게 뺐다 꼈다 할 수 있으며 버튼 조작도 할 수 있다. '누워서' 말이다.
이게 진짜 투숙객들을 위한 사용자 경험(UX)이지 않을까. 이걸 보는 순간 파크 하얏트 부산이 얼마나 투숙객들을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많은 호텔을 돌아다녔지만 이렇게 풀어낸 곳은 보지 못했다.
지금 이 글을 읽은 순간부터 독자분들께서 호캉스를 가실 때면 자연스럽게 '플러그 위치'부터 보는 습관이 생길 것이다.
이들의 디테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파크 하얏트 브랜드는 서울과 부산 즉, 한국에 호텔을 올릴 당시 '한국적인 것'에 지독할 정도로 집착한다. 파크 하얏트 서울에서도 그랬듯이 부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뭐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지 살펴보자.
블라인드와 조명
우리가 아까 객실에 오자마자 창문 위로 걷어 올렸던 블라인드. 보통의 블라인드라면 빳빳한 패브릭을 활용한다. 하지만 이들은 '삼베'를 연상시키는 패브릭을 활용한다.
마치 한옥에서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지었던 '발'처럼 말이다. 밖의 햇빛과 바깥 풍경을 완전하게 차단하지 않고 은은하게 내비친다.
블라인드에 이어 조명까지 '한국적인' 영향을 받는다. 조명 커버마저 '한지'를 사용한다. 이게 뭐 어떤 차이가 있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조명들을 잘 봐보자.
서양식(?!) 스탠드(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를 살펴보면 스테인리스 혹은 빛이 투과되지 않는 소재로 조명 갓을 만들어 빛이 필요한 곳에만 비추게 만들어놓는다.
물론 빛이 딴 데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한 곳으로 빛을 모아서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눈 아픈 건 시간문제이다.
한지로 조명을 씌우면 어떻게 될까?
한지 덕에 우리가 빛을 직접적으로 받는 것을 막아준다. 오히려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빛 때문에 전기조명이 없던 시절, 방에 촛불을 켜놓고 있는 그 느낌마저 든다.
아늑하고 따뜻하다.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다. 이러한 조명들 덕분에 객실의 경험이 편안해진다. 오늘 밤은 꿀잠 예약이다.
샤워실 미닫이 문
파크 하얏트 부산은 그렇게 넓은 타입의 객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샤워실과 화장실을 분리시켜놓았다.
2명이서 투숙을 하게 될 경우 한 명이 샤워하고 그 옆에서 볼 일을 보는 기이한 현상은 생기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아무튼, 이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샤워실로 향하는 미닫이 문을 살펴보자.
딱 보자마자 느껴질 것이다. '한국적이다' 사실 이런 미닫이 문에 한국적인 느낌을 내기 가장 쉬운 방법은 한옥 느낌이 나는 문을 설치하면 그만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들은 플러그 디테일마저 신경 쓰는 곳이다. 미닫이 문 또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대단하다. 이런 디자인 덕분에 공간의 밀도가 더욱 짙어진다. 점점 파크 하얏트 부산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제 이 문을 열고 샤워실로 들어가 보자.
그렇지. 이거다. 우리가 한옥을 가만히 잘 생각해보자. 돌로 만든 주춧돌 위에 나무기둥으로 공간을 형성한 후 그다음 지붕을 올리지 않던가. 즉 핵심은 돌과 나무이다.
한국적인 느낌을 내겠다고 했지만 정작 화장실 혹은 샤워실에서 매끈한 대리석을 깔아놓는 곳들이 있다. 파크 하얏트 부산의 디테일을 살펴보자.
마치 산속에 있는 바위 위를 걷는 느낌이다.
바닥에 떨어진 물은 배수로로 빠지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바닥에 스며든다. 미끄러져 넘어지기 쉬운 샤워실에 최적화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파크 하얏트 서울도 그랬듯이 말이다. 벽면 또한 매끄럽지 않은 돌 느낌을 내어 더욱 잘 어우러진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변태스러운(?!) 디테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욕조 앞엔 TV가 설치되어 있다.
훌륭하다. 오늘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저기에서 몸을 좀 녹여야겠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파크 하얏트마저
아쉬웠던 점이 있다.
만약 저 욕조에 뭔가를 올려놓을 수 있는 베스트 레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더 나은 욕실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르 라보' 어메니티를 보고 싹 사라졌다.
파크 하얏트 서울에서도 그랬든 이들은 브랜드의 일관된 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생각이 든다. 르 라보 특유의 '자연의 향' 덕에 더욱 쾌적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객실을 전투적으로 관찰하다 보니 잠시 출출해졌다. 아까 체크인 때 봤던 라운지로 가보자.
라운지에 갔다가 사람 없는 시간대에 수영장 가는 방법에 대해서 글을 써 내려갈 예정이다.
체크인했던 로비와 동일한 장소에 있다.
30층에 라운지를 올려놓은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바로 '뷰'.
객실에서 보는 뷰가 한정적이다 라고 느낀다면 라운지로 올라가면 된다. 파크 하얏트 부산이 독특한 점은 오션뷰는 오션뷰인데, 광안대교가 시원하게 보이는 오션뷰가 있고 이색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요트 선착장과 바다가 함께 보이는 형태의 오션뷰도 있다.
내가 원하는 곳에 앉아서 다채로운 뷰를 감상하면 된다. 눈으로만 보면 심심하니 뭐 마실 것을 찾아본다.
보통은 그냥 평범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겠지만, 파크 하얏트 시그니처 커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빙수를 뺄 수 없다.
사실 빙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필자의 인스타 팔로워 중에 올해 17 빙수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쩍 주문해본다. 이 곳은 수박 빙수가 유명하다길래 그렇게 주문을 해본다.
뭐 수박 맛 빙수가 나오지 않을까.
전혀 아니었다.
커피와 빙수 둘 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그니처 커피 위엔 아까 객실에서 봤던 광안대교가 그려져 있었고 수박빙수는 위에 핑크색 구름이 떠있었다.
세상에나. 이건 찍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수박빙수가 얼른 녹기 전에 찍어야 한다.
'어멋 이건 브런치에 남겨야겠다'라는 생각뿐.
비주얼만 화려하고 맛은 별로인 거 아니냐 라고 할 수 있지만, 다행스럽게 맛 또한 훌륭하다. 먹으면서 흐뭇해한다. 이런 선택을 한 나 자신에게 말이다. 역시 '안 해봤으면 해 봐야 안다'라는 나만의 지론이 맞아떨어진다.
경험을 해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수박빙수 양도 상당하다. 원랜 바로 밥 먹을까 하다가 출출함이 싹 사라져 바로 수영장 구경을 가기로 한다.
내가 체크인했던 날엔 비가 거짓말 싹 빼고 돌+i처럼 쏟아졌다. 바람이 사방팔방으로 불어대서 우산 안 써도 되는 편리함은 덤이다. 우산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투숙객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수영장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내가 갔을 당시 오후 4시-5시쯤.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후퇴하기로 한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투숙객들의 하루 루틴을 계산하기 시작한다.
왜냐면, 수영장에 사람 없는 시간대에 가기 위해서.
음.. 사실 저녁시간엔 사람들이 밥 먹으러 싹 빠질 테고 하지만 그땐 나도 밥 먹으러 빠질 것이다.
수영장 운영시간은 오후 10시까지. 왠지 오후 8시 반부턴 사람들이 밥 먹고 나서 배가 나왔다는 이유로 수영장에 잘 오지도 않을 것 같고 사람들이 수영장에서 빠질 것 같지만 확실치 않다.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것은 수영장 오픈 시간이 오전 6시이니 난 7시에 가기로 한다.
이땐 사람들이 없겠지?! 상당히 전략적이다.
세상에. 한국사람들 역시 부지런하다.
난 당연히 나 혼자겠지 하며 폭풍 사진을 찍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진 않고 10명 안쪽으로 밖에 없었지만 놀라운 부지런함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없는 시간대인 것은 확실하다. 그 덕분에 여유롭게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천천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수영장에서 아침을 맞이하니 뭐랄까,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색적이다. 계속 이 느낌을 갖고 싶다.
사실 수영장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애초에 파라다이스 시티처럼 '엔터테인먼트'형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메인 풀장 하나와 조그마한 자쿠지가 있다. 자쿠지 바로 앞엔 바다를 실컷 바라볼 수 있는 선베드까지. 그래도 넓지 않은 공간 안에 있을 것은 다 갖춰놨다.
한 가지 센스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
사실 파크 하얏트 부산 근처엔 이 호텔 높이만 한 주상복합들이 빽빽하게 깔려있다. 나도 하마터면 파크 하얏트 옆에 있는 아이파크 아파트와 헷갈려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수영장 한쪽 면 창문 밖엔 다른 건물이 보이는 뷰이다.
기껏 객실에서 광안대교와 바다를 보고 왔는데 여기 수영장에서 서울에서 지겹게도 본 건물 뷰를 딱 마주하면 좋았던 경험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건물이 보이는 창문 앞쪽엔 식물들을 잔뜩 가져다 놓는다. 별로 보기 좋지 않은 뷰를 가리는 효과와 동시에 수영장 공간의 격을 높여준다. 그리고 식물 사이사이로 배치된 하얀 소파 체어들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공간이 연출되다 보니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수영장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우리가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을 때 '아 거기 좋았어'라고 말하곤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좋았다는 걸까? 단순히 디자인이 예뻐서일까? 아니면 그 호텔 브랜드가 유명해서 일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호텔에서 우린 하루를 온전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을 구매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엔 나만의 방식대로 살 수 있다. 우리가 하루를 사는 동안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거기에 브랜드마다 각자가 권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곁들였을 때 우리의 경험은 극대화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살아본다'이다.
우리가 호텔에 가서 '좋다'라고 느끼는 것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오감으로 객실을 비롯한 호텔의 모든 것을 느낀다.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말이다.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만들어 내듯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서 호텔 브랜드의 경험을 만든다.
파크 하얏트가 추구하는 '한국적인 것' 덕분에 우린 친숙하고 아늑한 하루를 살아볼 수 있다. 객실 내에 사용성을 높여주는 디테일 덕분에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파크 하얏트라는 브랜드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브랜드 일지 몰라도 파크 하얏트 부산이 설계한 '한국적인' 디자인들 덕에 왠지 모르게 익숙함을 느낀다.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간에 스며들 수 있었다. 우리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편안했다.
객실 안에서 플러그와 같이 곳곳에 우리의 하루를 편안하게 도와주는 디테일들을 비롯해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던, 라운지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던 우리가 가는 그 모든 공간엔 크고 작은 디테일들이 숨어있다.
그래서 우린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아주 심플하게 압축해서 '좋다'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한국적인 감성과 모던한 디자인이 합쳐지고 그 안에서 cozy 함이 뿜어져 나온다.
유독 하얏트 계열의 호텔들 (그랜드 하얏트, 파크 하얏트, 안다즈)이 이런 감성을 잘 풀어내지 않나 생각해본다.
앞서 짧게 언급했듯이 파크 하얏트 주변을 살펴보면 한 동네에 끝이 보이지 않게 높이 세워진 주상복합 건물이 몰려있다. '그냥 높네' 정도가 아닌 '정말 높다'. 서울에서도 이런 동네를 본 적이 없다. 서울보다 부산 해운대쪽이 더 심할 것이다.
외관만 보면 서울보다 더 도시스러우며 상당히 차갑게 느껴지는 이 곳에서 아늑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크 하얏트는 아늑하게 잘 풀어냈다. 그것도 세련되게 말이다. 파크하얏트처럼 투숙객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디테일'들이 살아 있는 호텔들을 볼 때마다 너무 짜릿하다.
이렇게 오늘도 한 수 배워간다.
<갑자기 부산으로 체크인> 시리즈는 계속 이어진다. 다음은 또 다른 오션뷰를 보러 가보려 한다.
더 다양한 호텔 리뷰들을 보고 싶으신 분들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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