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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메이커 체크인 Oct 26. 2020

언제까지 생각만 할래

2부 : 디자이너에서 호텔리뷰어로 변.신


"언제까지 생각만 할래"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하다간 평생 못할 텐데 지금 시간 있을 때 한 번 해보는 거지.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그래서 할 수 있어 없어?"


갑자기 이게 뭔 뼈 때리는 소리인가 싶을 거다. 저 3마디 보고 지금 뒤로 가기 버튼 누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사실 저 얘기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내 면전에 대고 한 소리이다. 3 연타를 쎄게 맞아서 숨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머리도 살짝 아픈거 같기도 하고.


재밌는 건 저 3마디 덕분에 나를 디자이너에서 호텔리뷰어로 바꿔버렸고 나의 삶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나는 왜 이걸 좋아할까?


이전 글에서도 얘기를 했었지만 호텔 예약 중개 앱 서비스 회사를 겨냥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도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호텔을 좋아하는가'


언제부턴 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호텔이란 공간을 좋아했다. 호텔 안에 들어가면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였다. '우린 이런 곳인데 좀 어때?' 라며 말이다.


이를테면 우린 최고의 수면을 제공해!라고 한다면 정말 최고의 꿀잠을 경험할 수 있고, 우린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야. 우리랑 같이 놀아볼래?라고 한다면 호텔 안에서 파티가 열리고, 프리마켓이 열리며 트레킹, 요가, 사진 찍기 심지어 서핑까지 즐길 수 있다. 본인들이 추구하는 것을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직접 '경험'하게 한다.


'경험'을 만드는 디저이너로써 호텔은 나에게 살아 숨 쉬는 교과서 그 자체였다.


애플 제품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내 삶과 핏이 잘 맞는지는 적어도 2주, 많게는 몇 달을 경험해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호텔은 단 하루면 충분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기분이 좋아지는 향을 맡고 호텔 안에서 맛보기까지 하며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지 듣기도 한다. 즉, 호텔은 오감을 자극한다. 그리고 체크아웃 할 땐 '아 좋았다' 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호텔이 잠을 자고 쉬는 곳이었다면 요즘의 호텔은 영역이 더 넓어졌다. 이케아가 이케아 제품만 사용해서 만든 이케아 호텔처럼 하나의 쇼룸이 되기도 하며, 플레이스캠프 제주 처럼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고 파티를 즐기며 색다른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불편한 건 없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항상 귀 기울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니 내 눈엔 호텔이란 존재는 너무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호텔이란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호텔에 체크인 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무튼 나의 지인은 이어서 쐐기를 박은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너보고 호텔 세우라고 하면 세울 수 있겠어?'






두렵다..

두려움이 부캐를 만들었다.


와.. 호텔을 세울 수 있냐고? 올해 들은 말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왜 가슴이 뛰는 느낌이 들지??


생각만 해도 좋지만 두렵다.

벌써부터 돈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 가지고 온갖 상상을 펼치며 격렬하게 걱정하고 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도전할 생각하기보다 회피하기 위해 걱정부터 하는구나.


29년 살면서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호텔리뷰어 체크인' 이란 부캐가 탄생했다. 사실 갑작스럽게 짠! 하고 부캐가 생긴 건 아니다. 부캐가 생길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과거로 내려갔다 오겠다.


생각해보니 나는 살면서 나의 꿈을 향해 끝까지 가본 적이 없다. 때는 2011년. 제2의 칼 라거펠트(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꿈꾸며 패션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내가 바랬던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손으로 뭔가를 만져가며 만들어가는 것엔 재능이 없었다. 난 그저 옷을 사 입는 걸 좋아했던 아이였다.


더 웃긴 건 대학교 4년 내내 재봉틀을 못했다. 한번 잘못 박으면 실뜯개로 한 땀 한 땀 뜯을 때마다 레알 빡침지수가 높아졌고 재봉틀과 나의 사이는 점점 서먹해졌다.


그래도 '디자인만 잘하면 되지!'라는 철없는 생각에 방학 때마다 의류 브랜드 디자인실에서 인턴을 했지만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에 대한 스트레스와 패션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깨지며 패션에 대한 고민이 더 짙어졌다.


그 와중에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뤄서 하나의 아트워크를 만들어 내는 것엔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실수하면 ctrl+z만 누르면 1초 만에 되돌릴 수 있다!! 이거다!! 심지어 한 장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 이게 진짜 크리에이티브라 생각했었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대학교 3학년 땐 전공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시각디자인과 수업을 듣겠다며 담당 교수님께 따로 부탁도 드려가면서 아트워크와 콘텐츠 디자인에 도움이 될만한 수업만 찾아들었다.


물론 비전공자가 시디과 전공자들 사이에서 존버를 해야 한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고 학점은 중요하지 않다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이미 2학년 때 학사경고를 맞아본 화려한 이력이 있었다.(핳..) 디자이너는 자고로 그림을 잘 그려야지 라는 생각에 서양화를 부전공했다가 작업에 치여 학교 작업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다가 결국 몸이 허약해져 학교를 못 나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항상 나 대신 작업물과 과제만 출석했다... 나름 책임감 있었다.


그리고 학점관리보단 미대 안에 있는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을 하나둘씩 모아 아트 크루를 만들고 전시를 열고 더 많은 크루원을 모으는 게 더 재밌었다. 오죽했으면 4학년 땐 전공 교수님들마저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며 하고 싶은 거 끝까지 해보라며 응원해주셨다.(감사합니다..!)


첫 번째 전시 땐 타과 교수님께서 수업을 하기도 했었고 그때 크루원이 4명에서 22명까지 늘어나기도 하며 서울의 한 복합공간에서 딱딱한 전시보단 재밌게 놀면서 즐기는 전시를 만들고 싶단 생각에 홍대에서 활동 중인 인디밴드들을 모아 음악공연과 동시에 미술 전시를 진행했었다.

 

2015년 그 때 당시 전시 홍보 영상 / 쓱 광고 처음 나오고 2주 만에 한 패러디


뭐 나름 성공적이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학점과 바꿨다고 생각하니 좀 맘이 편안하다. 후.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광고계에 '아트디렉터' 란 직군을 알게 되었고 4학년 때 어떻게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대기업 종합 광고 대행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당시 25살(2016년).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랬을까. 기업의 시스템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아프리카 TV와 유튜브처럼 1인 미디어가 급부상하는데 종합광고대행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스템 속에 갇혀서 쥐어짜듯 만들어 내는 크리에이티브에 회의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치열하게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능동적으로 직접 나서서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에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옮긴다.


그 당시 마켓 컬리, 배달의 민족 등을 비롯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고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고속 성장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라며 패기 넘치는 상상을 하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로켓을 날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그렇게 35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고 결국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퇴사를 선택했다.






아무튼 과거 회상이 조금 길었다.


이렇듯 항상 0부터 100까지 가보지도 못한 채 항상 어느 정도만 하고 다른 노선을 찾아 나서곤 했다.


항상 70까진 갔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한다', '잘한다'라는 말을 듣고 '이제 제발 퇴근 좀 해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진지하게 일에 빠져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난 일을 사랑한다.(변태 기질이 좀..)


하지만 이제 이번만큼은, 그리고 이제 20대의 마지막인 만큼 더 이상 방황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나 스스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패션을 거쳐 서양화, 광고, 스타트업에서의 브랜딩과 UIUX 설계 이 모든 경험들이 이제 '호텔'로 귀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호텔 세울  있냐고?


나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보고, 읽고, 쓰는 것뿐이다. 이 3가지만이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당장 인스타를 파야겠다.

그리고 브런치엔 호텔에서 어떤 하루를 보낼 수 있는지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럼 활동명은 뭐라고 하지...?

또 완벽주의 병에 빠질뻔했다. 이러다 이름 못 골라서 그만두게 생겼다. 나중에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걸로 해야겠다.


호텔에 들어갈 때 보통 체크인이라고 하니까..

좋다! 이름은 체크인이다!


그렇게 호텔리뷰어 체크인이 탄생했다.




호텔리뷰어 체크인 인스타그램 구경하러 가기>


그동안 리뷰했던 호텔들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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