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아트센터 | 예술이 밥멕여준 브랜딩과 철학
예술대학을 다니던 시절
농담이던 진담이던 은근 자주 듣던 말이 있다.
당시엔 저런 실언에 뭐라고 현명하게 답변을 해줄까 고민을 하다보니 3-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하 저거 들을 때마다 부들부들 댔던 내가 스쳐나간다.)
하지만 파리의 최고 현대 미술관
퐁피두(정식명칭 : 조르주 퐁피두 센터)를 2번째 방문했을 때 그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예술엔 수 많은 장르와 형태가 있지만 아주 일반적으로 캔버스와 붓을 떠올린다.
일단, 붓을 잡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공부를 해야한다. 내가 이걸 그리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걸 그리는 나는 누구인지, 나와 비슷한 생각 혹은 철학은 가졌던 미술사조는 어땠는지, 그렇다면 나는 '기존의 것'에서 어떻게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는지 공부한다.
즉, 붓은 곧 '나의 철학'을 대변한다.
그리고 '나의 철학'이 생기면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표가 생기기에 삶을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며 불안한 마음보단 안정된 마음상태를 유지한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였을때 문화가 성장하고 각박한 삶 속에서도 낭만이 꽃 피울 수 있다.
더불어, 우린 텍스트보단 시각언어(이미지)를 선호하며 편하게 접하기에, 철학을 담고 있는 이미지인 '예술'은 우리 삶 속에 필연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생존하는데 예술은 필요없다. 아니 '쓸모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럼 이제 앞으로 '밥'만 먹으면 된다. 정말 '밥'만.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밥이 중요하지만,
포노사피엔스라 불리는 현대인들 중 '밥'만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밥만 먹다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기현상이 발생할 수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건물 하나가 주변 지역에게 꽤나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독특하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건축물들 주위엔 항상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며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지역상권이 살아난다. 자 이제 퐁피두 센터를 보자.
사방팔방 파이프처럼 생긴 것들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파랑, 빨강, 노랑, 초록만 사용하여 더욱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2번째 보는 퐁피두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내 집 앞에 이런게 있다면 나는 평생 이사 안갈 것 같다..(너무 좋아..핡)
놀랍게도 이 파이프들은 장식요소가 아니다.
환풍 시설은 파란색, 전기 시설은 노란색, 배수관은 초록색은 그리고 빨간색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즉, 건물 운영에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시설들을 전부 건물 외부로
노출 한 것이다.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리처드 로저스와 렌조 피아노)에 의하면 건물의 외부가 복잡해 질 수록 내부는 정돈 되어 오직 컨텐츠에만 집중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다.
이건 꽤나 재밌게 해석해 볼 수 있다.
그 동안의 건축물들의 배관시설들은 지저분하고 복잡하다는 생각 아래에 예쁘게 숨기기 바빴다.
(오히려 배관시설들이 보이는 순간 '미완성',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으로 치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장기들은 피부 안쪽에 숨어 있으며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은 포장된 '외관'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생각하며 심지언 평가한다.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밖으로 끄집어 내어져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진 퐁피두는 미술관의 본질에 집중 했던 것일까, 항상 숨기던 '오브제'들을 겉으로 드러내고 내면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어쩌면 퐁피두는 건물 자체만으로도 브랜딩을 하고 있지 않을까?
브랜드를 보지 않고 공간만 봐도 기억에 확 남는 곳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건물은 약 40여년 전인 1977년에 개관했다는 것이다.
지금 봐도 다소 충격적인데 그 당시는 얼마나 파격적이 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브랜딩의 대가라 불리는 '도날드 노먼'은 브랜딩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모든 행위'
퐁피두는 이미 건물자체 만으로 파격적이기에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퐁피두만의 고유한 철학, 비전, 미션이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퐁피두를 잘 표현 할 수 있는 로고는 심플하게 건물을 형상화 한 것이지 않을까?(로고만 봐도 그냥 퐁피두...)
퐁피두를 한번이라도 보고 왔으면 이제 로고만 봐도 퐁피두의 모습과 그 안에서의 경험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바로 '에스컬레이터'
요즘 미술관들은 당연히 다 하나씩 가지고 있도 있어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40여년 전에 미술관에
에스컬리이터를 설치 했다는 것은 조금 의미가 다르다.
생각 해보자 1977년이다. 그 당시만 해도 예술은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열려 있다기 보단 폐쇄적, 권위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퐁피두는 여타 미술관들관 다르게 미술 뿐만이 아닌 음악, 영화, 공립도서관이 들어가 있다. 즉 문화를 다뤘다는 점이 당시엔 핫 이슈였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40여년 전 이야기)
퐁피두 센터를 설립할 당시 연령,인종의 경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기에 대중들의 접근성과 편하게 드나들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에스컬레이터의 본질은 편하게 오르 내리며 장소를 이동하기에 대중성을 띄고 있다. 지하철, 대형마트 등에나 있을법한 오브제를 미술관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과거 미술관들이 공급자 지향적인 방식으로 운영을 했다면 퐁피두는 이미 '소비자 지향적' 관점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오죽했으면 퐁피두센터 로고에 마저도 에스컬레이터 모양이 들어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건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퐁피두의 디자인을 보고 난 후 파리 시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간 평균 방문객이 380만 명에 육박하며 최대 700만 명이 다녀간다.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 연간 방문객이 100만명 내외 인 것을 보면 엄청난 숫자이다)
퐁피두 센터는 한가지 더 중요한 일을 한다.
상상이 잘 안되긴 하지만 퐁피두가 서있는 땅은 사실 Plateau Beaubourg라고 하여 파리시 중앙에 있는 농수산물 시장이었다. 또한 유흥이 발달 된 슬럼가이기도 했다.
당시 대대적인 철거가 이뤄지며 넓은 주차장으로 활용 되고 있던 이 곳은, 예술문화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던 조르주 전 대통령에겐 새로운 도전이자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굳건하게 브랜딩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였다.
(조르주 퐁피두 센터는 프랑스의 문화 발전에 힘쓴 조르주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렇게 악취를 풍기던 슬럼가 지역을 연간 수백만명이 방문하는 문화 예술의 랜드마크로 도시재생을 한 것이 지금의 조르주 퐁피두 센터이다.
또한 파리 시민들이 더욱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게 씨네마, 음악관람실, 그리고 공공 도서관까지 마련했다.
그 중 도서관은 정말 놀랍다. 평일 아침9시부터 길~게 줄 서있길래 '하 뮤지엄 패스 살걸' 이라고 우울해하던 찰나, 자비롭고 선량하신 파리 대학생(으로 추정)이 '여긴 도서관 줄'이니 미술관만 갈거면 다른쪽 입구로 가야한다 라며 친절을 베푸셨다.
신나서 입구를 향해 경보하듯 걸어가며 문득 스쳐지나간 생각
'엇 잠깐..! 도서관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이 시간에?'
보통 현대미술관이라 함은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을 상시로 열어두고(상설) 본인들이 기획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기획전). 그래서 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을 한 눈에 보기란 사실 쉽지 않다.
퐁피두의 가장 큰 매력은 상설전이라 생각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인상주의로 시작해 현대까지 오는 모든 과정들을 볼 수 있다.
상설전시에선 근대(인상주의부터 시작)부터 현대까지 어떠한 흐름으로 예술이 변화해 왔는지를 보며 산발적으로 퍼져있던 예술지식들이 조금씩 하나의 퍼즐로 맞춰지는 듯하다.
사실 이 점 하나 때문에 퐁피두 센터를 좋아한다. 아니 최애 공간이다.
예술대학을 다닐 때와 지금이나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그 미술안에 들어있는 예술철학과 미학 등에 호기심이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은 디자인을 조금 더 깊이 있고 본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디자이너들은 필히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만 그려내는 디자이너가 아닌, 본질을 생각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며 미래를 기획하는 사람이 디자이너이다. 아마, 이 말에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퐁피두 센터는 그야말로 최고의 놀이터가 될 것이고 영감의 원천이 된다.
앉아서 책으로만 보던 작품들이 실제로 걸려있으며, 나중엔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퐁피두의 규모와 작품 수는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퐁피두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이동 동선 또한 굉장히 간단하다.
보통 현대미술관에 들어가면 항상 하는 고민.
'어디서 부터 뭘 어떻게 봐야하지?'
수 많은 출입구와 각기 다른 기획전시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퐁피두 센터에선 그런 걱정 안해도 된다. 이동 동선은 오직 '직진'으로 구성되어 있어 걸어다니면서 미술사의 흐름을 천천히 느끼기만 하면 된다. 퐁피두를 관람하는 팁이 있다면 최상층으로 올라가 기획전을 먼저 본 후 차근차근 한층씩 내려와서 1960년대 작품부터 현대 작품까지 보면 된다. 또한 순수예술부터 디자인파트 전시도 있어 봐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데, 생각보다 방대한 양의 작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어 정말 빠르게 본다고 해도 2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렇다면 조금 더 천천히 주의깊게 살펴본다고 하면 3-4시간은 금방 지나갈 듯 하다. 디자인 레퍼런스로 참고하면 좋을 법한 작품들부터 색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는 작품들까지, 전시를 관람하는 2시간 내내 들었던 생각.
공부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 영감을 얻기 위한 최적의 장소. 그 장소를 잘 활용하는 파리지앵들이 있다면
'아, 내가 얘네랑 경쟁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뿐이었다. 오히려 3-4년이 지나 다시 찾은 퐁피두 센터는 나에게 또 다른 메세지를 줬다.
예술이 우리 삶 속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퐁피두 센터는 '어렵다', '상위층만 누리는 고급문화가 아니냐'라는 예술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예술문화를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예술은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며 예술을 통해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도와준다.
이 고민이 왜 중요하냐구?
우리가 살면서 '슬럼프'라고 표현을 할 때 내가 어떤 상황인지 생각해보자.
대부분 '내가 이걸 왜하고 있지?' 라는 생각에서 출발 할 것이다.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나'에 대한 생각. 그러니 당연히 쉽지 않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이걸 왜 좋아하는지 이유도 없이 그 동안 살아왔구나를 느끼게 되면 결국 '회의'와 '상실'로 이어진다.
X세대라고 부르는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가르쳐준 삶의 방식대로 살아오면 어느 정도 '순탄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만 알았던 나를 포함한 밀레니얼들. 그래서 우린 이제라도 '나 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퇴사가 유행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며 이제 각자의 삶을 중요시 여기고 나를 위한 투자, 나를 위한 소비를 즐기고 있지 않던가?
이미 우린 '나'라는 존재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누구하나 명쾌하게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 '생각'을 하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공유하며 나를 돌이켜보는 모임문화와 살롱문화(예를 들면 트레바리와 크리에이터스 클럽)가 성장을 하고 취미 클래스들 중 향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즉 내 손으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한다. 그럼 결국 '내가 뭘 원하는지'를 고민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미술 전시장의 방문 빈도 수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더 나아가 오페라, 연극에 까지 관심을 뻗치게 된다.
예술 산업 더 나아가 예술문화 컨텐츠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우린 예술이 우리 삶 속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지 하고 있다. 다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애매했을 뿐.
예술을 통해 '나'를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되면 나는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
내가 앞으로 뭘 해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리 된다는 얘기이다. 그럼, 삶이 지루할 틈이 있을까? 남들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때부턴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역시 너 답다!'
그런 주체적인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인다면 무기력한 회색빛의 도시마저 다채로운 색을 띄며 활력과 생기가 생기고 아무리 힘든 삶이라고 한들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을까?
아직도 예술이 밥 멕여주냐고 한다면,
맞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삶 속에서 없어도 사는데 지장은 없다.
그럼 내가 전해주고 싶은 말은 이제 하나 뿐이다.
'그럼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고 불평하지 말 것. 너는 앞으로 반찬을 곁들이지 말고 '밥'만 먹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