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텔메이커 체크인 May 16. 2020

혼자 호텔갔을 때만 가능한 것

몰입의 중요함


호텔은 보통 누군가와 함께 간다고 생각했다


해외의 경우, 여행을 함께가는 사람과 같이 호텔에서 투숙을 할 것이고 국내의 경우, 주말에 호캉스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과 호텔에서 투숙을 한다. 이렇듯, 항상 누군가와 함께 했고 필자에게 '더블베드'는 디폴트였다.

그러던 도중 호텔을 본격적으로 리뷰하기 위해 혼자 호텔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트윈으로 해야하나 더블로 해야하나부터 고민이 됬다. 혼자가는데 침대가 2개 있는 것도 좀 괴기스럽고, 혼자 더블베드를 쓰자니 너무 넓은 것 같다. '그래, 차라리 침대 2개 인 것 보단 하나가 낫지'라는 생각에 더블베드를 택한다. 더블베드에서 혼자 앞구르기, 옆구르기, 덤블링해도 되고 좁게 자는거 보단 넓게 자는게 나한테도 유익해보인다.


사실, 길을 걸어가며 앱을 통해 예약 중이었다. 이미 갈 곳을 정해놓고 호텔로 가는 길에 결제하고 결제문자까지 딱 받으니 난 호텔 앞에 서있었다.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혼자 호텔에 오다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 난 '혼캉스'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 21시간


체크인 시간 3시. 체크아웃은 12시.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1시간. 21시간 동안 나 혼자 있는 것이다. 자취를 하는 직장인이라면 21시간 동안 혼자 자취방에 있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심각하게 의식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직장인들은 하루 24시간 중 평균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20%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지 못한다.' 9시부터 6시까지 열심히 남을 위한 시간을 쓰고 집으로 오면 7-8시,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 3-4시간. 여기서 핵심은 저 3-4시간이다. 3시간은 물론 1시간도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생각을 못한다. 왜그럴까?

이미 내가 가진 에너지를 9 to 6 하며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뇌과학적으로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뇌는 '짭퉁신호'를 보낸다. '야 오늘 너 고생 했으니까, 고생한 너에게 보상을 좀 해야지'라며.


그래, 그 말도 맞는 말이야. 내가 오늘 얼마나 고생했는데 보상을 좀 해볼까? 라며 흔쾌히 수락한다.

쇼핑몰에 들어간다. 기가막히다. 내가 힘든거 어떻게 알고 내가 원하는 상품이 딱 세일한댄다. 장바구니. 와 갑자기 80% 할인? 오늘은 나를 위한 날인거 같다. 장바구니. 그리고 결제(소비). 이제 결제까지 했으니 뭔가 나를 위해 보상한 것 같고 흐뭇하다. 이 텐션을 그대로 이어서 밀린 네이버웹툰, 넷플릭스, 유튜브 컨텐츠를 '소비' 하기로 한다. 그렇게 소비를 실컷 하다보니 어느덧 새벽 2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내일 사무실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이제 그만 잠에 들기로 한다. 이렇게 우린 24시간 중 고작 3시간을 나를 위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채 하루를 마무리 한다.


아무래도, 남을 위해 시간을 써야만 하는 9 to 6 그리고 그나마 조금 남은 에너지를 퇴근길에 다 써버린다.

집에 도착했을 땐 나의 멘탈은 이미 '무릉도원'의 상태.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외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되는 상태이다. 나를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매력적이다.


호텔에선 나 혼자이다. 그 누구도 날 방해하지 않는다. 조금 집중하려는 찰나 배가 고프네 하며 집처럼 냉장고를 열어 꺼내 먹을 수 없다. 물론 미니바에서 꺼내먹을 순 있지만 돈내야 한다. 미니바 문 열었다 닫는다. 평소같으면 '나를 위한 보상'이라며 쉽게 지갑을 열어 몇 십만원 씩 FLEX했는데 미니바의 몇 천원은 아깝다.

카페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내 에어팟을 타고 넘어오는 옆 테이블의 재미난 일상 이야기에 현혹 될 일도 없다. 사방팔방 움직이는 사람들 때문에 그 추세에 맞춰 나도 이것저것 만지며 움직일 필요도 없다. 집처럼 갑자기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도 없고, 간식 달라며 쪼르르 나에게 와 꼬리흔들며 애교 부리는 강아지를 보며 간식을 안 줄 수가 없다. 강아지 간식과 나의 몰입을 교환했다. 강아지만 이득봤다.


나를 방해하는 요소가 없다.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갖춰졌다. 이제 21 시간은 '나에게' 쓸 수 있다.



시간 왜곡이 가능한 호텔


21시간을 나에게 쓸 수 있다니 너무 설렌다. 한번도 21시간을 가져본적이 없을 거다. 물론 여기서 수면 시간을 8시간이라 치고 생각하면 13시간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주말마저 13시간 동안 '소비'하느라 바쁜데!

(그리고 잠자는 동안에도 우리 뇌는 계속 움직이니 21시간이 맞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왜 그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들은 사무실에 가서 나올 때까지 수 많은 선택을 효율적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그 시간엔 '나'한테 쓸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들은 '나에게 쓰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 새벽4시-6시를 공략한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하고 적막이 흐르는 시간. 이때 이들은 몰입한다.


호텔 객실에 혼자 있으면 이 '고요하고 적막'이 흐르는 시간을 겪을 수 있다. 새벽 4시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필자에겐 너무나 큰 혜택이다. 이 때를 공략하여 필자는 그 동안 밀렸던 글을 쓰기로 한다.

호텔 객실의 방음처리가 이토록 잘 되있는 것일까, 에어팟2의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켠 기분이다. 기분 탓인가? 평소엔 2줄 써내려가려면 계속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객실 안에선 술술 써내려 간다. 일이 잘 풀리는 기분이니 재밌다. 계속 쓰고 싶다. 그렇게 해서 글 한 편이 완성이 된다. 시계를 보니 세상에. 20분 정도 지났을 줄 알았는데 2시간이 지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필자가 평균적으로 하나의 글을 완성짓는데 5시간 이상 걸린다는 것.


시간 왜곡이 벌어진다. 몰입 할 수 있다. 필자는 집중력이 그렇게 지속적인 편이 아니다. 10분 정도 글 쓰다가 핸드폰 잠깐 확인하고 괜히 물 한 잔 마시고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런 내가 2시간을 태웠다. 그것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필자 뿐만이 아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왜냐면 호텔엔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으니까. 신경쓸 것은 오직 '나' 밖에 없다. 그리고 집중해서 짧은 시간에 스스로 뿌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성취감도 생긴다. 기분이 좋다. 더 몰입하고 싶다.



몰입한만큼 따라오는 고독


역시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고 했다. 혼자 호텔에 가면 몰입이 잘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견뎌내야 할 것이 있다. 반드시 '고독'할 것. 혼자 21시간을 지내기 때문에 특별한 약속을 잡지 않고 가는 이상, 말을 할 일이 없다. 이러다 말하는 법 까먹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을 안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 혼자' 라는 사실을 더욱 크게 느끼며 '나 혼자'라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어느 순간부터 객실이 객실로 보이지 않는다. 우주 관련 영화를 보면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나 혼자 광활한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그 기분이 어떨까? 딱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외롭다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고독하다. 세상과 단절되어 홀로 떨어져 있는 듯 하다. 우리처럼 세상과 단절은 커녕 얽히고 설켜있는 직장인들에겐 고독이란 익숙치 않다.


고독의 시간, 우린 사색에 빠진다. '난 왜 이 일을 하지?', '난 회사를 왜 다니지?', '내가 좋아했던 것이 이거였을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평상시 였으면 이런 생각이 들 땐 뭔가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을 겪었을 때인데, 호텔에선 '결'이 다르다. 몰입을 한 후 나에게 찾아온 고독. 그 때 비로소 나에 대해 생각 할 시간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그리고 '나'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진다.


돈을 많이번 부자들, 세계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남이 아닌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동기부여 유튜브만 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이미 답은 너가 알고 있다.',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이게 와닿지 않는다. 왜냐면 해보지 않고 겪어본적도 없고 주위에서 그렇게 한 사람도 없으니까.

하지만 호텔에선 정확히 말하면 혼자 호텔에 가서 고독의 순간이 찾아오는 순간. 우린 이미 '나'와 이야기할 준비가 끝났다.



비로소 깨달은 중요한 사실


우리가 뭔가에 몰입을 하기 위해선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모두 차단해야 한다.

차단을 최대한 많이 할 수록 몰입에 빠져드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몰입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스스로를 발전 시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우리가 사무실에 가서 맨날 구석의 빈 공간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남의 시선을 피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그 '남의 시선'이란 방해요소를 차단하고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똑같다. 카페나, 집에서 집중이 잘 안될 때 내가 좋아하는 일과 못 해왔던 일에 몰입을 하고 싶다면 호텔만한 곳이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 한 후 고독이 찾아온다면, 나를 돌이켜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왔다는 것이다.

남들은 쉽게 느낄 수 없는 이 고독을 '나'는 느꼈음에 감사하게 생각하자. 집이나 카페에서도 충분히 가능한거 아니냐? 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필자는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방해 요소들이 차단되어 있는 호텔을 선택 한 것 뿐이다. 더 빠르게 가기 위해.


몰입 후 밀려오는 고독의 시간은 몰입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상당 수의 사람들은 '나만의 시간'을 갖을 여유조차 없다. 어쩌면 이 글을 본 후, 혼자 호텔에 가는 것을 시도 해본다면, 이미 여러분들은 다른 상당 수의 사람보다 더 빠른 성장과 더 나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넷플릭스 보는거?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안 볼 것이다.




p.s : 혼자 호텔가서 이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해 스마트폰을 잠시 멀리 했습니다. 생각보다 긴급한 연락은 없었고, 카톡도 연인을 제외한 나머진 그렇게 중요한 내용도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잠시 스마트폰을 멀리 했다고 내 삶이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 졌습니다. (호텔에 혼자 있다보니 별의별 글을 다 쓰게 되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부티크 호텔과 부티크 호텔인척 하는 모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