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형 인간 12
어릴적부터 한가지 탁월한 능력을 키워서 한가지 길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도 있다. 내가 그 동안 배워온 것들에 대한 공통점을 찾아내 나만의 한가지 길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컨설턴트와 상담을 시작했다. 퍼스널 브랜딩을 위해서 내 자신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결국 아이덴티티를 깨닫고 자기다워질수록 자신의 브랜드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모자이크형 인간에게 가장 힘든 질문은 바로 왜why?라는 질문이다. 퍼스널브랜딩 컨설턴트가 내게 내준 숙제 중에 내가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이 Why로 시작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저 모자이크형 인간은 이유Why를 모르지만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무엇What을 늘어놓는 것이 익숙한 모양이다. 마치 이러한 이야기와 비유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지네는 다리가 많다. 그러던 어느 날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다리로 잘 걸어가니?
라는 질문을 받고 잘 걸어가던 지네는 갑자기 다리가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자이크형 인간은 많은 다리를 지닌 지네처럼 많은 재주와 다양한 경험을 삶을 걸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 그렇게 사는지.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 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뇌 회로가 꼬이는거 같다. 자신이 남들과 달라보이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거 같은 정보의 혼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다리가 여러 개인 지네에게 한 다리로 우아하게 한 길을 걸으라는 이야기와 같다. 남들이 보기 징그러울지 모르지만 모자이크형 인간은 다리가 여러 개가 필요하다.
나 자신도 통합하지 못하는 많은 관심거리와 재주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로 시작되는 이야기처럼 흥미가 가는 글은 없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모자이크형 인간들의 일상에는 호기심이 간다. 남들이 겪기 힘든 일상경험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모자이크형 인간들의 일상을 하나의 주제로 분류해서 엮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취미와 능력들이 다양해지면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나만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어때요?'
'당신의 특성과 아이덴티티를 끄집어 내서 통일성있는 퍼스털 브랜딩을 하고 싶어요?'
'통합된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하세요.'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다양한 재능을 이끌어내고 있었던 모자이크형 인간에게는 '하나로 통합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Why로 생각하기 위해서 지네처럼 다리가 꼬인 시간을 보냈다. 원래대로 다시 여러 다리로 앞으로 걸어가는 나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긍정적인 힘을 믿지만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편하고 그것이 자기다움 '아이덴티티'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나의 관심사를 글로 엮을 때에도 그저 하나의 주제를 고르기보다는 다양한 일상을 그대로 적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왜 쓰는지 모르지만 그저 자판을 막 두드리다보면 글이 써지는 것이 내가 글쓰는 방식이었다.
모자이크형 인간에게는
왠지 모르지만, Why는 모르지만
그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소중한 시간을 나만의 다리로 걷는 것이 그들이 걸어가야할 길인 모양이다.
Why라는 답을 머리로 찾지 못했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거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차라리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Action하는 것이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해나가야하는 운명인 모양이다.
그래서 늦게 가는 거처럼 보이지만 돌아가는 거처럼 보이지만
모자이크형 인간은 어느새 차별화된 인간이 되어있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서 자신만의 경험과 재주가 축적되어 종합된 작품이 완성되어 가기 때문이다.
종합된 자신만의 커다란 모자이크 작품은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세계이다.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세계가 곧 차별화된 나만의 퍼스널 브랜드다.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그것이 나 자체가 되어버린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나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완성하려고 애쓰면 저절로 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조셉 캠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