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인어 Sep 11. 2019

최근 글쓰기의 두 갈래길...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같은 듯 다른 글쟁이의 운명을 나누는 SEO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자! 다시 돌아오다!


TTA정보통신용어사전

검색엔진 최적화

Search engine optimization , 檢索-最適化

SEO

각종 검색 엔진에 내 글을 효과적으로 싣고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웹 페이지를 구성해서 검색 결과의 상위에 오르게 작업. 웹 페이지와 관련된 검색어로 검색한 검색 결과 상위에 오르게 하는 것은 웹 방문객 수를 늘리고 내 글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므로 효과적인 인터넷 마케팅 방법 중의 하나이다. 적절한 도메인 이름을 설정하거나, 웹 표준을 준수하면서 포스트의 가독성과 웹페이지 로딩 속도를 최대로 끌어 올리고, 메타태그 작성이나 링크의 적극적 활용, 본문 태그, 부제목 태그 등 적절한 키워드를 선택해서 사용해야 한다.


-다음 백과 어학사전 검색 결과







나와 같이 그저 글을 쓰며 먹고 살거나

혹은 글을 쓰고 싶어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하기에는 아직 작가는 아닌

그런 부류를 글쟁이라고 치자.

시대를 떠나서 글쟁이의 고민은 공통되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헤르만헤세는 그런 점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헤르만헤세의 다음 구절을 확인해보고 가자.


작가란 직업은 조용히 눈을 뜨고
기다리면서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 일은 땀과 불면의 밤을
요구할지라도
귀중한 것이며,
더 이상 '일'이 아닌 것이다'
(헤르만 헤세, 1909)

「헤세의 문장론, p.95,  연암서가, 2014」



이 글을 읽고 나의 흔들리는 양심을

일단 안심시켰다.


「나는 더 이상 '일'로써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위해서 쓰고 싶었다」


인생의 이런 순간 어떤 길을 택해야할 지가 모든 예술가들의

딜레마 인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천운을 타고나서

평생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며

예술적 창작과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다른 한편에서는경제적 편안함이 주는 환경 속에서

멋진 예술이 탄생할 것이라는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SEO, 색다른 충격


최근 한 마케팅 강사는 내게

'돈 버는 글쓰기로 블로그 글쓰기 노하우'를 강요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시기,

창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들은 한 마케팅 강의에서도

글쓰기는 그들이 강의료를 벌기 위한

좋은 챕터가 되어 주었다.


블로그 상위노출, SEO 검색 키워드, 애드센스 등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한 블로그 글쓰기 세상에 뛰어들어 보았다.


나는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기꺼이 진흙 바닥에 뛰어들어

낙지를 잡는 스타일이다.

 

몇 달 동안 잠을 설치며

그 세계를 연구했고


글쓰는 솜씨나 문장력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에서 숨겨진 스킬을 활용하며

또한 전문지에서 광고성 글쓰기를 맛본

기자적 노하우를 총 동원해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소소한 수익을 얻었다.


소소하게 얻은 이 수익으로 커피를 사 먹자.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갔다.

블로그 글로 커피 값 벌기...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


난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다 버렸는데...

내가 얻은 소중한 자유시간에 또 다시

광고에 연연하는 글쟁이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이 온라인 시대에 SEO를 무시하고 순수 문학의 길을 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몇 가지 생각들을 일단 정리해 보았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쓰기
Vs. 주문받은 글쓰기


1
생업으로 글쓰기
Vs.  쓰고 싶은 글쓰기


모든 글을 쓰는 사람의 딜레마가 아닐까 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돈은 벌어야하고
돈을 벌자기 자기 글 쓰는 시간은 자꾸 미뤄지고.

글을 쓰고 싶어 신문사에 취직해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 되던 해에
문득 '아 이러다 또 10년을 그냥 보내겠구나'하고
안정된(?)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글쟁이가 있습니다.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스토리텔러의 이야기 입니다.



2
글, 순수한 마음으로 쓰고
싶은 대로 쓰다


기자를 그만두고 3년 간 익명으로 온라인 페이지에 제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 일기장처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이 아닌 메모장이었습니다.
그 자체로만 만족하던 시기였습니다.
글쓰기에 있어 저를 압박했던
시간과 틀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간혹 생계를 위해서 요청이 들어오는 기업의 스토리텔링 정도만 하며 생활하였습니다.


3
불안감이 몰려오다

개인적인 만족만으로 글을 쓰다 보니
어느 날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한낫 일기를 온라인에 겁도 없이 끄적이며
퇴고도 되지 않은
허접스러운 감정을 늘어놓기만 한 건 아닐까.
다시
새롭게 알을 깨고자
'배움'을 시작했습니다.
제 세계 속에 빠져서 허우적 거렸던 저를 끄집어내고
감정에 휩쓸려 치우쳤던 글쓰기에서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4
헤르만 헤세를 다시 만나다


헤르만 헤세를 만나고 20대 초반 작가의 꿈을 꾸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글쓰기에 지쳐 있는 제 자신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자 할 때


다시 헤르만 헤세를 꺼내 봅니다.


'작가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심하게 시달리는 부족과 지상에서의 결손은 언어다'

「헤세의 문장론, p.143,  연암서가, 2014」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론 제가 전달한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언어 세계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작가의 언어 부족의 표현 능력의 한계에 도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오롯이 작가의 책임입니다.


'작가가 「심장」이라 말할 때 그것은 인간 몸 속에서 약동하는 가장 생기 있는 것, 자신의 가장 내밀한 능력과 약점을 뜻한다면,  그 단어는 동시에 하나의 근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부풀려 내놓는 자를 사기꾼이라 한다면, 작가는 결코 사기꾼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작가는 자기가 주고자 하는 것의 10분의 1, 아니 100분위 1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듣는 이가 자기를 매우 피상적으로, 무척 아련하게, 그냥 대략적으로라도 이해한다면, 적어도 핵심 부분이나마 엉뚱하게 오해하지 않는다면 만족해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칭찬을 받든 비난을 듣든, 효과를 보든 웃음을 사든, 사랑을 받든 배척을 당하든, 어느 경우나 자신의 사랑이나 꿈 자체가 아니라, 언어라는 좁은 터널과 독자의 이해라는 더욱 좁은 터널을 뚫고 나온 그 100분의 1정도만 이야기할 따름이다.'

「헤세의 문장론, p.144-145,  연암서가, 2014」

...


5
터널을 뚫고 나오다


오랜만에 오롯이 다시 글을 쓰려고 합니다.
두렵지만 생계를 위한 불안감과
요구받은 글쓰기에 대한 중압감을 떨쳐버린 채
비로소 내 시간을 갖고 글쓰기에 임하는 것은 난생 처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다

글쓰기에 대한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산을 하나 올랐다 내려오는 듯한 한 달여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잘 것 없게만 느껴지는 내 자신과 끊인없이 싸우며 대화했습니다.
허무하게 벼랑 끝으로 떨어져 버리려고 하는 내 자신의 자존감을 일으켜 세워 집중해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내 시작점으로 돌아가
초심을 기억해내고자 애쓰며
나다움을 회복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블로그로 돈을 벌자며 내게 제안을 했던 한 강사는

치고 빠지듯 필요할 때만 내게 와서 정보를 캐갔다. 마치 나를 아무런 눈치도 못 채는 순진한 글쟁이 정도로만 판단하고 있는 듯 보이는 행동들이었다.

그러고는 마케팅의 한 방식으로 자신의 주작들을 문자로 보내 자신의 행동을 정당하게 그럴듯하게 포장하려했다.

그는 지금도 마치 블로그로 돈벌라는 강의를 하느라 바쁘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작가는 글로 사기를 칠 수 없다. 그가 내게 한 뻔히 보이는 비겁한 행동들을 굳이 말로 톡으로 따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언제부터 교양있는 말에 익숙해진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