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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인어 Aug 13. 2016

직장, 나는 왜 또 떠나야만 하는가

'무엇'에서 '어떻게'로의 사고 전환

그만 둔 회사와 비슷한 회사의 러브콜


모 국장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다시는 잡지나 신문사에서 그런 쪽 일은 못할 거만 같은 상태였다.



'사람 만나고 취재하고 글쓰고 ...' 


이렇게 하는 일이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내 정신과 육체는 지쳐 갔고 다시 부활할 에너지를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일 복이 엄청난 자칭 '무수리'는 두렵지 않다



정규직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는 필요한 곳마다 투입되어 일하는 형태로 일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알바'라고 하기에는 오랜 경력과 전문지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고 정해진 시간에 처리해야했으므로 '프리랜서'라고 표현하기에도 직업 상태를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기는 힘들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 듯한 '쓰리좝(three job)이에요.' 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면 약간의 부러움과 궁금증 약간의 위화감까지도 느낄 수 있는 일의 풍요로움에 쌓인 바쁜 일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모 국장이 소개한 곳에서 세번째 일이 시작됐다. 많은 생각이 들끓게 하는 일터가 있다. 서로가 가슴 속에 화와 불만을 품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번째 소개 받은 일터가 그런 곳이었다.

철저한 시간관리와 업무 완성도를 위해서 정신없는 가운데 정신차리기 위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생각 하나는 '지금 나 같은 사람을 세 군데에서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10년 동안 익숙했던 직업을 잃고 타이틀 없이 지낸 6-7개월의 백수 생활 동안 나를 지탱한 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였고 자신감을 잃어버릴 수 있는 시기에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리라'

직원들의 고충이 심한 곳이었다. 저녁에 진행하는 행사가 많아 항상 밤늦게 퇴근하고 갑자기 호출하는 회장의 지시와 다반사에 쫓기듯이 달려가곤 했다. 전 직원이 정돈되고 정리된 업무 스케줄에 의해서 차분히 움직이기 보다는 산만한 채로 닥치는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내가 일주일에 두번 그곳에 출근하는 날에는 다른 직원들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있었다. 하루는 직원들이 이른 시간 사무실에 모두 나와 있었다. 알고보니 회장이 급하게 불시에 전체 직원들과의 아침 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이다.


회의가 끝날 무렵 회장은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물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며 '없습니다.' 라는 반응.

내게 차례가 오기 바로 전 직원에게 회장은

'할 말이 없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거나 '일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는 것인데 모 대리가

일을 잘 하고 있는 거 같지 않다.'며 핀잔을 주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기꺼이 회장님께 회사 발전을 위해서 애정을 가득 담아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겠다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몇 마디 시작하기가 무섭게 중간 임원의 저항에 부딪쳤다. 내 이야기를 첫 대목부터 가로 막았고 심하게 오도된 의도로 역정을 내고 있었다.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회장 이하 사장과 이사의 감정섞인 말투에 짖눌려 숨을 죽이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는 프리랜서인 셈이었다. 적은 급여로 회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일하는 그들에게 가끔씩 나타나며 내 영역에만 집중하며 일하는 내게 형평성의 차원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사는 급여의 형평성과 업무 시간 때문에 항상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눈치였다. 사장이 그런 터무니없는 대우를 내게 부여했다는 것에 불만이었다. 어느날 그런 그의 속내가 직접적으로 표면에 드러났다.


이 회사에서 내가 역할해야하는 자리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교체되며 불신이 쌓여 있는 자리였다. 예전 사람과 다르다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상태였다. '저 사람도 또 저러다 나가겠지.' 이런 인식이 있는 자리. 회사의 다른 직원이 하는 일과는 좀 성격이 다르고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업무이기도 했다. 자신들과 동떨어졌기 때문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는 해도 그렇다고 네 마음대로 하게 둘 수 없다는 듯 사사건건 감시를 받는 듯한 자리였다. 나는 그곳에서 적은 급여와 과도한 업무로 고통받는 직원들의 불만을 폭로하는 그들과 형평성에 어긋나며 특혜를 받는다는 이유로 불만 표현의 기폭제로 역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달여 만에 그곳을 정리했다.


나의 열정과 가치를 온전히 매체 창조의 순수 작업에 집중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직장의 고질적인 환경과 소모적인 인간관계와 끊임없이 감정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해야한다면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력의 시간을 채워야한다

는 직장인으로서의 버팀의 미학은 버린지 오래다.

생각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직장인은

같은 직장인에게도 우습게 보일지 모른다.

소위 말하는 조직의 돌아가는 정치(?)도 모르고 라인(?)도 모르고 아부(?)도 모르고

그저 할말 다하는 성격이 나쁜 사람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을 과감하게 나오면서 비전을 세웠던 일을 다시 그만두는 아쉬움보다 더 큰 행복감이 마음 속으로 물결쳐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만 두는 마지막날 내부 임원들은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일의 호흡을 맞추었던 외부 자문위원이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회사에 대한 그 분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고 기자를 오래하신 대선배 대기자였다. 마지막 정리를 통해 오히려 그분과 더욱 가까이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대선배는 기자로서의 그간 내 심정을 이해해주셨다. 매체가 매체답지 못하고 기자가 기자답지 못하는 잡지에서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놓아버리고 행동할 수 있다. 그래 한번 좌절을 맛본 뒤 그런 용기가 생겼다. 솟아오르는 정의와 신념을 따를 뿐이지 억지로 버티거나 참지 않는다.

'직원 중 누군가는 나의 급여가 높아 절대 그 일을 쉽게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 밥값을 하기 위한 대가에 대해서 충분한 열정과 정성으로 업무에 임한다. 돈은 필요하고 벌어야 살아가지만 그 때문에만 목메며 남아 있지 않을 충분한 가치와 신념이 생겨나고 있다. 그 정도 적지 않은 급여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를 위한 것이지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은 아니었다.


그곳을 떠나지만 또 다시 이런 내가 필요한 곳으로 삶의 커다란 힘이 데려다 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나를 지켜보는 '선'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제 '무엇'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에 집중하는 법을 습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_by 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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