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정말 충격적인 일이 한 번 있었다. 때는 2018년 가을. 가짜 뉴스를 파헤치는 탐사 프로그램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를 제작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부선 배우와의 ‘스캔들 뉴스’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 이슈의 경우 결정적인 증거는 없이 양측의 주장만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팩트 체크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전화 몇 통으로 시원하게 해결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당시 셀 수 없이 많은 언론사들은 이재명 지사와 김부선 씨에 대한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서해 바닷가에서 낙지 볶음을 먹었다느니, 부두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느니 등등 기사의 양은 정말 방대했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전후로, 후보자들의 공약에 대한 기사는 온데간데 보이지도 않고 이재명 당시 후보자와 김부선 씨에 대한 뉴스(오직 당사자들만 진실을 알 수 있는 뉴스)만 6000여 건도 넘게 쏟아졌으니 말이다.
당시 논쟁의 한 복판에는 당연히 김부선 씨와 이재명 지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 둘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공지영 작가와 ‘이모 씨’였다. 이 두 사람은 주로 김부선 씨를 지지하며 각자의 SNS를 통해 이재명 지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 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써내기 바빴다. 정말이지 이들이 SNS에 무슨 내용이든 글만 올렸다 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기사가 되었고,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 순위 상위권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공지영 씨야 뭐 워낙에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에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공지영 작가가 SNS에 이러이러한 글을 올려 화제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 모 씨’였다. 그는 당시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었다. 그러니 이 인물의 SNS 멘트가 정말 기사화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판단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는 매일 수 백개씩 쏟아졌다. 수많은 언론사들은 24시간 실시간으로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모니터링했고, 그가 올린 멘트를 그대로 인용하는 기사를 정말 수십 개씩 복제해 냈다. 당시 정체불명의 ‘이 모씨’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뉴스공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누굴까? 너무 궁금했다. 나는 이 ‘이모 씨’가 누군지 조사해보기 시작했다.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모두 훑어보았는데, 어느 기사에서 이 ‘이모 씨’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자 ‘아- 아무래도 공지영 작가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분이니까 같은 문학계의 시인이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절로 끄덕이고 보니 ‘시인 이 00 씨’의 코멘트 하나하나가 더 그럴싸하게 보이고 더욱 믿음이 가는 마법이 펼쳐졌다. 아마 이 기사를 본 대다수의 네티즌들과 뉴스 소비자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시인 이 00
그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는 듯했다. 나는 곧장 포털에 ‘이 00’ 이름 석자를 검색했다. 그러자 정말 꽤 유명한 시인이 한 분 등장했다. 게다가 모 언론사에서는 이 시인의 프로필 사진까지 생방송으로 내보내며 ‘이 00 씨’의 SNS 멘트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아하 그렇다면 뭐 이분이 확실하겠지. 하지만 나는 여기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편견이지만 연세 지긋한 시인께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해 언론 플레이에 뛰어들고 있다는 게 좀 어색해 보였던 것이다. 이분이 정말?
이 00 씨의 SNS 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클릭. 하지만 페이지가 열리는 순간, 바로 헛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의 프로필 사진이 ‘시인 이 00’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반려견의 사진이나 평소 흠모하던 아이돌의 사진을 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유명한 SNS 계정의 주인은 누가 봐도 완전히 다른 동명이인의 ‘이 00’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렇게 간단하게 사실 확인이 가능한 내용조차 가짜 뉴스가 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그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쪽지를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시인으로 알려진 당신은 대체 누구시며 왜 그런 내용의 글을 SNS에 올리게 되셨는가.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간 어떤 뉴스에서도 당사자 이 00 씨와의 인터뷰 기사는 볼 수 없었으니까. 그것은 즉,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의미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 화제의 인물이니까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 관성적인 상상은 단박에 산산조각나 버렸다. 그에게서 바로 답장이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반가운 답장은 우리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지금껏 그에게 연락을 했던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엉겁결에 그와 최초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며칠 뒤 우리는 부산의 모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으슥한 골목을 지나 부산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어느 높은 동네였다. 그는 카메라를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온 우리를 보며 신기해했지만, 사실 우리야 말로 그를 만났다는 사실에 더 신기해했다.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어느 작은 카페로 들어섰다.
“아니 시인이시라는 기사가 있어서요, 정말 시인이세요?”
한참을 호탕하게 웃던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시인으로 등단을 해버렸다며 그 역시 많이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뉴스 공장’인 당신은 대체 누구 시란 말인가. 시인이라 불렸던 사나이 이 00. 알고 보니 그는 그저 김부선 씨를 지지하는 부산의 한 ‘시민 이 00’ 씨였을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가 하루아침에 시인이 된 사연은 정말 기가 막혔다.
그는 2018년 6월 4일 밤 10시. 이재명 지사에 대한 개인적인 지지를 철회하고 김부선 씨와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는 내용의 긴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화제성 높은 단어와 표현들(이재명, 김부선, 성관계, 공지영, 주진우, 김어준 등)이 다수 포함됐던 그의 글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고, 이런 화젯거리를 놓칠세라 다수의 언론사들이 기사로 받아 쓰며 더 큰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어쩌다 그가 시인이 됐을까? 그의 긴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끝이 났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 06.04. 밤 10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태어나 한참을 돌고 돌아,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제 앞에 나타난 <진실>. 그 진실 앞에선 작은 촛불 든 양심으로.
시민 이ㅇㅇ 올림
시민 이 00
감이 오는가? 그러니까 ‘시민 이 00’이라고 밝힌 그의 글을 훑어보던 어떤 기자가 무심코 그의 글을 인용하는 기사를 썼는데, 그 과정에서 ‘시민’을 ‘시인’으로 잘 못 읽어 벌어진 기막힌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시인이 된 이 00 씨의 기사는 또 다른 언론사들이 다시 열심히 퍼 나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됐고, 급기야 동명이인의 진짜 시인 이 00 씨의 프로필 사진이 뉴스에 등장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물론 ‘시민'이든 ‘시인'이든 그 차이가 뭐 그렇게 대수인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인이라는 타이틀과 시민이라는 타이틀이 지닌 영향력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특히나 천만 명도 넘는 경기도민의 도지사 투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뉴스였기 때문에 이런 작은 해프닝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가짜 뉴스는 또 다른 가짜 뉴스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시인 이 00'이 등장하는 최초의 기사를 찾았다. 그리고 ‘부산 시민 이 00 씨’를 하루아침에 시인으로 등단시킨 모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저기요 기자님 안녕하세요. 기자님이 쓰신 기사와는 달리 이 00 씨가 시인이 아니고 그냥 부산 시민이더라고요. 그런데 더 황당했던 것은 그 기자의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바닥에서 먹고사는 PD의 추궁이 못마땅했는지 불편함이 한가득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변을 피하려고만 했다. 심지어는 그럴 리가 없다며 내가 나름 열심히 체크한 명백한 팩트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 기자는 나에게 매우 귀찮다는듯한 목소리로 ‘그의 SNS를 보고 직접 쓴 기사이니 한번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라’는 말을 당당하게 남기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말이지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2020년 10월인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기사에는 여전히 ‘시인 이 00’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스캔들에는 ‘시인 해프닝’을 포함해 여러 가지 짚어볼 만한 내용이 많이 있었다. 특히 가짜 뉴스가 얼마나 쉽게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이슈의 핵심이었던 이재명 지사와 한 여배우의 스캔들에 대해 어느 쪽으로도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단서라도 하나 찾아보기 위해, 서해안의 낙지집을 모두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심증만 가지고 방송을 한 편 뚝딱 만든다면 우리 방송 또한 논란만 부추기고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리는 수많은 뉴스 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템을 접어두고(물론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았다) 다른 아이템을 열심히 다시 찾았다. 그리고 2년 뒤 오늘. 이재명 지사는 허위사실공표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주 가까이 현장을 뛰어다녔던 고생이 몹시도 아까웠지만, 찬 새벽 바람 맞으며 부장에게 아이템 포기를 선언했던 어느 밤이 여러가지 이유로 생각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