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항에 도착하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도전과 기쁨에 대한 삶의 안내서

by 골돌한돌

휴가철이다. 미팅을 나가면 안부를 물을 때 대부분 “여름휴가는 다녀오셨어요?”라고 묻는다. 나도 대게 비슷한 질문으로 대화의 온도를 높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벌이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여름휴가처럼 마음먹고 일주일가량 쉴 때에는 해외여행을 많이 가는 것 같다. 홍콩, 베트남, 때로는 유럽 대륙의 국가들까지 다양한 국가가 그들의 휴가처로 언급된다. “이번 휴가에는 목포에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잘 없다.


나는(상대적인 것인지만) 해외여행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 마음먹지 못해서도 있고,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한 편으로는 국내를 여행하는 것도 충분히 재밌다.


물론 해외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분명히 있다. 그 지역의 명소를 방문하고,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접해보는 건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드물게 떠났던 해외여행에서는 모두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왔고, 특히 중학교 시절 지금도 내게는 친할머니와 같은 존재인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의 초대로 다녀왔던 투 하버스(미네소타 주에 있는 호숫가의 꽤 시골 지역이다)에서의 두 달은 내 인생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계기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쁨에 대해 깨닫게 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투 하버스의 거대한 호수와 강 줄기의 살결을 느끼며 그 기쁨을 채득 했다고 자부한다.


이처럼 여행은 우리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행지에서의 어떤 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지금의 무게를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땀을 잔뜩 흘리며 걷는 여정 속의 달콤한 물 한 방울이 되기도 한다.


서론이 꽤 길었지만, 여행의 유익함에 대해 설파하는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공항’이다. 나는 공항을 정말 좋아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그 순간, 그 두근거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캐리어를 들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쉴 새 없이 도착하고 떠나는 전광판의 무수한 항공 편들… 그 모든 게 날 정말 설레게 한다. 이 설렘은 비행기가 마치 바이킹을 탈 때처럼 아랫배에 불편한 무게감을 주며 지면을 차고 하늘로 날아갈 때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는 마치 극이 새로운 챕터에 맞이한 듯한 기분이 된다.


언제가 골돌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왜 이렇게 공항을 좋아하는 가에 대해 말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가능성에 대한 기대’다.


반복되는 일상을 버티며 한 푼 두 푼 모아, 휴가를 짜 내어 만든 일주일, 또는 열흘 남짓한 일탈. 서울에서 사는 매일에서는 겪을 수 없을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주는 기대감 말이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약속하는 희망은 서울에서 겪는 회색의 무수한 오늘에 대한 약속 같기도 하다.

그 기대감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현실이 된다. 공항의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여행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한 때는 여행이라는 일탈에 너무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에 부정적이기도 했다. 예로 어린 시절 미국에서의 경험은 내 삶에 지대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한국에 돌아와 잠에서 깬 첫날 인생 처음으로 극도의 우울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행이 주는 희망이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종 떠난 여행에서의 경험은 내 삶에 직관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때마다 나는 삶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공항에 도착한 순간이 주는 기대감은 스스로 정한 용기의 산물에 가깝다. 그 기쁨은 내가 스스로 시간과 돈을 쓰고, 나아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여행에 대해 기꺼이 도전한 용기가 만들어준 기대감이다. 떠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기쁠 수 있는 것이다.


삶 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순간을 마주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도전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고민하고 결정한다. 모든 도전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기쁨도 있다. 그건 분명한 진리다.


꼭 해외여행을 가야지만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공항에서 겪은 감정은 마치 삶이 내게 알려주는 기쁨에 대한 안내서 같은 것이다. “그때 그곳에 갔더라면” “그때 그 사람에게 그 말을 했더라면” 우리는 모두 이런 미처 용기 내지 못한 순간에 대해 후회한 경험이 있다.


삶은 이런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좀 더 다를 수 있다. 내일은 당신의 용기로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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