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번

꽉 막힌 도로를 보다가, 괜한 말을 했나 생각하다가

by 골돌한돌

다른 매체의 기자님과 커피를 마실 기회가 생겼다. 평소 그 기자님의 글을 재밌게 읽고 있던 터라 내가 자리를 제안했고, 흔쾌히 시간을 내준 덕이다.


커피숍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지금 쓰는 글에 대한 소회를 말하게 됐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지금 쓰는 글의 주제가 내가 쓰고 싶은 주제와 맞닿아 있지는 않다. 따라서 보통 내가 쓴 기사에 큰 절망이나 큰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에 그 기자님은 “그럼 이직을 고민하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이직에 대해서는 아직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커피를 비우며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문득 “괜한 말을 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지금 직장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 직장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다면, 대체로 만족스럽다. 좋은 사람들도 꽤 있고, 업무 강도도 괜찮다. 이곳에 다니며 나 스스로 많이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애착과 고마움도 있다. 그래서인지 더욱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 기자님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대체로 우리는 서로의 영역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꽤 있었고, 반가운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당연하게도 저 한 마디에 대해 그분은 별 생각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걱정은 괜한 기우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적는 것은, 나는 내색하지는 않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에 빠진다고 생각해서다. 일단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남이 내 험담을 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그럼에도 종종 이런 걱정을 하는 건 내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불안에 기인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꽤 심심한 이유에도 사람은 멀어질 수도, 나에 대한 인식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일로 멀어지게 되다니” 싶은 경우가 더러 있기도 했고.


왜 그런지는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렵다. 또 대체로 아닌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우리를 사랑해 준 사람은 보통 변하거나 뒤에서도 다르지 않다. 관계의 변덕은 대게 오래되지 않은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질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이렇게 느끼는 불안은 어쩌면 영원히 사랑받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어여삐 여긴 누군가가 어느 날 더는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건 고통스럽다. 인생의 어느 순간 그걸 겪었을 수도 있다(나는 우리 뇌가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은 고의적으로 단절시킨다고 믿는다).


본능적으로 우리가 큰 위험과 고통을 경계하고 피해 가듯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런 비극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불안하고, 기우에 가까운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동시에 그만큼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누군가를 만나는 기적을 간절히 소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 받고 싶지만, 그만큼 무방비한 마음에 무기력하게 상처를 받을까 두려운 거라고 할까. 울타리의 크기가 어떻든, 그 문이 열린 정도가 어떻든, 상처는 상처고 아픔은 아픔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익숙한 말이 좀 다르게 들린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꽤 다정한 말 같기도 하다. 미워도 다시 한번 안아주는 마음은 사랑과 다정함이 가득한 마음일 테니까. 내 실수 하나, 말 하나에 나를 상처 주고 떠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나를 안아주는, 꿀밤은 한 대 때려도 어디 가지는 않는 그런 마음 말이다.


버스에서 서울의 매캐한 교통체증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열이 나를 손바닥 뒤집듯 미워해도 괜찮으니, 한 명은 미워도 다시 한번 나를 안아주기를. 나도 누군가를 미워도 다시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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