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밖으로 걸어가고 싶은 마음

기차에서 하루키의 책을 읽다가

by 골돌한돌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기차는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가 한적한 길을 비췄고, 내내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나는 앉아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가 된 과정에 대해 읽고 있었다. 재즈 펍을 운영하던 하루키가 전업 소설가의 길에 들어선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나도 다시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는 별다른 맥락이 있지 않았다. 잔디밭에 누워 야구를 보다 시원한 2루타가 터진 순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것인데도.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그만큼 많은 걸 걸어야 하는 열망은 그렇게 불현듯 떠오르고는 한다. 특별한 맥락도 없이 말이다. 내가 기차에 앉아 하루키의 이야기를 읽고 있던 순간도 그런 순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그런 순간은 하루키가 하늘을 쭉 뻗는 공을 보던 순간처럼 책으로 쓰이지 못했을까? 나는 그게 우리가 순간의 열망 뒤에 놓인 불확실성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보지 못한 길을 걸을 때 가장 두려운 건 안개다. 오늘 아침처럼 흐린 풍경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든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절벽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길한 상상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더 걷기는 어렵다.


그건 우리의 생존본능이 짜인 대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호일 거다. 그래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 안개가 생존에 대한 비유에 가까워진 시대에, 아주 드물게는 저 안개 너머를 걸어가 보고 싶어진다.


하루키처럼 나도 글로 넉넉하게 밥을 벌어먹는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두렵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니까. 내 곁의 소중한 존재도 시작은 타인이었다. 안개를 넘어 한 걸음 걸어보려 했기 때문에 타인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장 모든 걸 버리지 않아도 되니 한 자를 적어보면 언젠가 나도 책을 내고 있을지 모른다.


해가 진 지금 다시 기차에 앉아 이렇게 몇 자를 흘겨 적어본다. 아침의 안개는 오간데 없이 하늘이 투명하다. 나는 누구이고 싶을까. 적어도 지금은 어제 걸었던 길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보고 싶다.


하루키는 안정되기 시작한 바를 완전히 정리하고 소설에 몰두하기로 했다. 빚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2년만 최선을 다해보겠노라,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작게 가게를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물었다. 아내는 “좋아요”라고 답했다.


오늘 나는 딱 그 마음이고 싶다. 직장을 정리하지는 않을 거다. 그저 드문드문 몇 자를 적으며 조금씩 기로의 순간을 기다리고 싶다. 내가 돈을 더 넉넉하게 벌지 못해도, 끝내 책을 내지 못해도, 지금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안개는 걷혔으니까, “좋아요”라는 답이 마음에 울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