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서울에서 고개를 들어 노을을 보다가
어릴 때, 나는 내 인생이 사람들로 북적하기를 바랐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친구를 바랐고, 새로운 인연이 늘 가득하기를 바랐다. 10대 20대는 뜻대로 됐다. 친구들과 여행도 많이 다녔고, 자취방을 오가면서 추억도 많이 쌓았다. 늦게까지 모여 술을 마시기도 하고, 까닭 없이 새벽까지 웃고 떠들기도 했다. 피시방에서 밤새 노느라 기다리던 새벽 일출을 놓치기도 했다.
30대가 넘어서고는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마음도 하나의 방처럼 물리적인 공간으로 느껴진다. 사람 하나하나의 존재는 마음에 상자 하나씩을 놓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상자가 쌓인 방은 오히려 이사를 앞둔 방처럼, 어딘가 떠나야 할 듯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그런 생각이 짙어진 게 정확히 언제쯤인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하게 나는 변했다. 최근 그걸 느낀 건 친구들과 모임에서였다. 몇 년 뒤 다 같이 여행을 가자는 제안이 전혀 내키지가 않았다. 그때 나는 스스로가 더는 무리의 행복을 좇지 않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이제 넓은 삶보다는 한 명과의 깊은 삶을 바라고 있다. 놀 만큼 놀았기 때문일 수도,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사람을 만나는 걸 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 마음을 투영하듯 집도 간결해졌다. 침대는 넓게 쓰지만, 의자 하나 없다. 전에는 사랑방인 듯 자취만 하면 친구들을 부르고 놀았는데, 이제는 사람의 왕래도 잘 없다. 조용함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고요하고 느린 속도감이 좋다.
삶도 그렇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퇴근길을 걸을 때, 또는 마트에 들러 집에 오는 길에 빼곡한 건물들 위로 내려앉은 묽은 수채화 같은 노을빛을 보고 있으면 너무 많은 목소리의 번잡한 소음 없이 두 개의 마음이 마주 앉은 단란한 마음의 방을 그리게 된다.
오늘도 서울의 거미줄 같은 도로는 차들로 덮여 있다. 지하에는 수십 개의 지하철이 쉴 틈 없이 쏘다닌다. 단 한 번도, 그 어느 길과 도로도 완전히 비어 있지 않은 채로 모두 어딘가로 흘러가고,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나방처럼, 빛을 찾아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 머무를 곳이 없어 날갯짓은 쉬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를 원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마음이 완전히 텅 비어 버린다면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서울은 숨 쉴 틈 없는 새장처럼 좁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너무 넓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이 외로운 도시에서 무수한 사람들 틈에 섞여 살아가고 있노라면, 가득 차게 비어있고, 시끄럽게 고독하다.
나는 외로워 너무 많은 목소리를 바랐다. 비어 있는 틈을 사람으로 덕지덕지 메꾸고 싶었다. 이제야 나는 외로움이 어떻게 채워지는 것인지 알 것 같다. 나는 날개를 떼어내고 당신과 머무르고 싶다. 떠나는 게 두려워 잠가 뒀던 무수한 문들의 빗장을 열고 싶다. 흙먼지와 발자국, 목소리가 빗발치듯 빠져나오는 상상을 한다. 괴로울 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전부를 잃으면 괴로울지도 모른다는 겁먹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비어진 그 마음의 공터에 당신이 있다면, 나는 괜찮을 것 같다. 이 도시에서, 도착지를 잃은 무수한 마음의 틈바구니에서 당신이라는 돌아갈 집이 존재한다면 나는 괜찮을 것만 같다.
길을 잃는 것은 너무 많은 길이 놓여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너무 많은 불빛 속에 나방이 황망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오롯이 당신 하나만이 마음에 빛난다면 나는 두 번 다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너무 많은 마음이 아닌 하나의 마음이 나를 밝힌다면, 그런 사랑하는 마음에 미아는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