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가족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왔다.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후로 가끔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아버지의 팔자 주름이 깊어진다. 어머니의 목이 자글 해진다. 시간이 간다. 표지가 해져버린 두꺼운 앨범에서 본 풋풋했던 얼굴이 희미해졌다.
가족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지는 노을을 봤다. 순간 삶에 무한한 것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존재는 어느 순간 흙으로 돌아간다. 내가 밟고 있는 이 흙 또한 소중했던 누군가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졌다.
유한은 괴롭다. 사랑했던 당신을 내일부터 만날 수 없다는 것, 앞으로의 인생에 당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괴롭고 부자연스럽다. 어딘가 괴리가 들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그런 유한함과 매일 싸우고 있다. 당연한 오늘과 내일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나를 역에 내려다 주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족들이 탄 차가 교통사고에 휘말리면 어떡할까. 퇴근길 당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할까. 내가 탄 기차가 선로를 벗어나면 어떡해야 할까.
정말 불운한 누군가에게 일어났을 불행을 애써 마음의 저편으로 구겨버리며 우리는 별다를 것 없는 보통의 오늘을 바라고, 살아간다. 다행히 우리의 하루는 무사히 흘러간다. 부모님은 집에 잘 도착하실 거다. 당신은 집에 무사히 도착해 지금쯤 따뜻한 밥을 먹고 있을 거다. 나는 곧 종착역에 내릴 거다.
그러니 나는 단지 안부를 묻는다. 잘 도착했나요, 조심히 가세요. 심심한 애정을 봉해 보낸다. 보통의 하루가 당신의 오늘에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렇게 생각하면 매일을 살아가는 건 불안하고 괴로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영원할 수 없다는 건 당신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나는 당신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오늘 밤 내가 탄 택시가 가드레일에 부딪힌다면 어제 저녁에 본 모습이 당신의 마지막이 되고 말 테니까.
그래서 나는 존재의 소중함을 서툴지만 열심히 애정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쭈뼛한 가족이 집에는 잘 갔나 전화를 걸고, 자기 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거다. 너무나 애정하기에 보통의 오늘이 무사히 흘러갔음에 감사할 거다.
유한함은 우리의 가장 큰 고통인 동시에 가장 큰 축복일 것 같다. 세상이 내일의 당신을 약속하지 않아 나는 오늘 당신을 더 열심히 사랑할 것이며, 우리의 이야기는 더욱 빼곡히 쓰일 것이다.
끝이 있기에,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간다. 소중한 당신과의 오늘에 감사한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영화는 멈춰지지 않는다. 우리는 흘러가는 이 필름을 열렬히 살아간다. 가장 후회 없고 아름다울 결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끝나지 않는 영화 같은 건 아무도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