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가을이 시작됐다

나도, 당신의 가을도 모두 아름다운 단편이 되기를

by 골돌한돌

오늘 아침이 유독 선선했다. 공기에 따라 계절의 느낌을 가늠할 수 있는데, 오늘 비로소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고 느꼈다. 덕분에 모처럼 출근길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매번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고 물으면 잘 대답을 못했는데,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마치 잊고 있던 책갈피를 찾아 펼친 것 같다.


여름과 가을이 이어지는 허리에서 가을의 문을 여는 오늘,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다가 새삼 또 한 계절을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년을 균등하게 나누면 한 계절은 대략 4개월 정도 된다. 일수로는 대략 120일이 조금 넘겠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한 계절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울고 웃었을까. 또 몇 명의 사람을 만나고 또 몇몇을 떠나보내야 했을까. 또 얼마나 사랑받았으며 동시에 얼마나 미움받았을까.


계절을 하나 넘어가는 건 기억의 단편 하나를 서랍에 넣는 것 같다. 마음에는 이렇게 쌓인 수많은 단편이 존재한다. 어떤 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들고, 어떤 건 괴로워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떤 책도 찢어낼 수는 없다. 안고 살아가는 책장이다.


올해 여름이라는 책은 어땠을까. 주말에 비가 자주 왔던 게 생각난다. 어느 언덕에서 봤던 노을도 떠오른다. 좋았던 기억이 많다. 지난겨울을 떠올리면 새벽에 홀로 앉아 창 너머로 희끗한 풍경을 보던 게 떠오른다. 출장으로 도착한 리조트의 창 너머에는 쓸쓸하고 하얀 산이 있었고, 풍경은 나를 바라봐 주지 않았다. 그런 쓸쓸함에 비하면 여름은 뜨겁기보다 따스했다.


여름의 단편은 그런 면에서 가끔 열어보고 싶은 단편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 비가 내리듯 괴롭거나 슬픈 날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나는 괜찮았다. 모두 사랑 덕분이다. 할퀴어진 미움보다 받은 사랑이 많았다. 지샌 밤보다 단잠을 잔 밤이 많았다. 흘린 눈물보다 웃음소리가 많았다.


문득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매일, 지금 이 순간도 쓰이는 단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동시에 외로울 누군가의 밤을 상상해 본다. 너무 많은 여백이 있어 괴로웠을, 오늘 아침의 시원한 공기가 오히려 마음이 아렸을 누군가. 스물 초반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에 혼자 창가를 서성이던 나를 닮은 누군가.


이름 모를 당신의 내일이 오늘보다 따스하길 바라본다. 가을 하늘은 맑고 또 높다. 눈꺼풀을 비추는 주홍빛 햇살은 따스할 거다. 당신의 내일에 그런 따스한 온도가 있길 바란다. 그렇게 당신의 가을이라는 단편이 자꾸 생각나고 애틋해, 책장에 넣기까지 오래도록 머뭇거릴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올여름, 많이도 사랑받고 많이도 사랑을 주었다. 시작된 가을이라는 단편에도 사랑이 가득하길, 낙엽이 바스락 거리는 길을 걷는 행복이 있길. 나도, 당신의 가을도 모두 아름다운 단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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