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는 그저 힘들기만 했다
어제가 수시 접수 마지막 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아이들이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은 한 주를 보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득 십 대 말미에서 이십 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겨울 같던 시간이 떠오른다.
나는 예체능을 하는 아이였다. 글과 그림에는 꽤 소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하지만 입시는 잘 되지 않았다. 맞지 않는 학원을 다녔고, 괜찮았던 성적은 뒷심이 부족했다. 엉망이 된 수시를 모두 떨어지고, 정시를 포기했다.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모든 게 괴로웠다. 지금에 와서 그때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그 누구도 "포기하지 마"나 "괜찮아"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어느 쪽이든 그런 말이 필요했었다. 예체능을 잘 모르던 담임 선생님도, 내가 원하는 전공과 조금 거리가 있던 미술학원에서도 나에게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은사가 없었다.
친구를 따라 아무 대학교에 가고, 곧바로 자퇴를 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한 두해 신춘문예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때는 내 앞에 놓인 이십 대라는 시간이 너무 길고 막연하게 느껴졌다. 혼자 나갈 수 없는 영화관에서 영사기에서 무한히 돌아가는 회색 화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나를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후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일에 말이다. 나는 어른이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두려워했던 마르고 작은 마음의 미아였다.
가끔 그때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때가 있다. 딱히 특별한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는다. 해줄 수도 없다. 단지 나는 그들이 정답이 존재한다는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기만을 바란다.
지금의 나도 가끔 존재하는 정답에서 어긋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우리가 너무 빠르게 살거나, 타인의 조건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 보다, 어떻게 내 마음이 행복할 수 있을지, 또 고통과 상처에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를 배워야 한다.
20살의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대학교를 다니지도 않았다.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 탓에 스무 살의 가을과 겨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외롭고 괴로웠다는 것뿐이다. 그때 나는 가방을 메고 틈만 나면 친구집을 전전하며 며칠을 묵었다. 무기력한 나와 부모님의 사이는 좋을 리가 없었고, 며칠씩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게 소소한 위안이었다. 그러나 그게 마음의 구멍을 매우지는 못했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뭘 하라고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지 너무 무리해서 걷지 말고, 또 지나치게 멈춰있지 말기를 바랄 것 같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미아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그런 방황의 시기는 단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 다시 나는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졸업 후 취업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비슷하게 다시 괴로웠다. 앞으로도 그런 순간은 몇 번이고 더 찾아올 테다.
나는 그때의 내가 아픔을 온연하게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영원히 멈출 수 없다. 산다는 건 그 길이 어떤 풍경을 가진 길이건 계속해서 걸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다만 넘어짐을 부끄럽거나 후회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시 일어난다는 행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다.
당신은 몇 번이고 넘어질 거다. 그리고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다. 당신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길 바란다. 내가 그랬듯 스스로 일어나야만 한다면, 시간을 들여 스스로의 서툼을 받아들이고 안아주길 바란다. 당신에게는 배우지 않아도 일어날 힘이 있다. 깊게 숨을 고르고, 천천히 일어나 보자. 넘어지면 눈물을 흘리고 웅크려도 된다. 그러나 영원히 주저앉지는 말자. 남들처럼 걸을 필요는 없다. 남들처럼 빠를 필요도 없다. 모두가 이미 떠나고 만 밤이어도, 그렇게 가장 느려도, 다시 일어나 걸어 보자.
풍경은 일어나면 그제야 보인다. 나는 꽤 오래 홀로 겨울에 살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살아내면 봄은 온다. 외롭게 홀로 견뎌야 하는 밤이 길어도, 살아내면 일출은 늦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마냥 잿빛 같아도, 당신의 마음을 빛나게 할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과 다른 내일은 서툴러도 살아봐야 만날 수 있다. 행복한 내일의 증인은 살아내고 견뎌낸, 일어나기 위해 무단히 애쓴 오직 오늘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