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덧없음, 영원함의 반짝임

설국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by 골돌한돌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오랜만에 꺼내 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마지막 문장이다. 설국의 도입만큼 이 마무리 또한 큰 힘을 가진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화마에 덮여 혼란한 마을과 소리치는 목소리가 얽힌 혼란한 상황 속에 이어진 문장은 돌연 쏟아지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떠오르게 하고, 곧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찰나인 동시에, 영원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며 몇 번, 그런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찰나의 시간이 영원처럼 잠시 멈춘 듯한 상황. 그때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크게 실감하는 동시에, 매 순간 모든 것이 덧없으리 만치 멈춤 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슬프기도 하다.


내게도 그런 순간들이 몇 있다. 지금 떠오르는 건 수원의 언덕에서 바라본 노을이었다. 언덕에 옷을 대강 깔고 앉아 빨갛게 익어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은 천천히, 그러나 잠시 틈을 돌리면 금세 사라질 것처럼 멈춤 없이 지평선 아래로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달이 우뚝 솟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음에는 붉은 노을을 마주 본 찰나의 순간이 머무르고 있었다. 시마무라가 바라본 은하수처럼, 분명하게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다시 같은 언덕에 올라도 그때와 완전하게 같을 수는 없다. 그 찰나의 순간인 이미 지나가버렸고, 아주 비슷해도 완전히 같은 순간은 오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일이다. 덧없기에 아름답고, 찰나이기에 소중한.


슬픔 또한 같다. 종종 찾아가던 서울숲의 물가가 있었다. 초봄의 어느 날, 물가의 바위틈에 눕듯이 앉아 한강의 흰을 읽고 있었다. 봄스럽지 않게 공기는 어딘가 차가웠고, 햇빛이 내리쬤지만 날은 어딘가 잿빛이었다. 나는 그때 문득 글자에서 눈을 돌려 강물에 부딪히는 윤슬 조각을 봤다. 순간 나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쓸쓸한 고독을 느꼈다. 영원한 고독에게 끌어안긴 것 같았다.


그날의 무거운 고독도 찰나로 사라졌다. 영원할 행복이 없듯, 영원한 고독도 없었다. 그 순간의 영원함은 내 마음에 존재하지만, 다시 그 물가로 돌아가도 그때의 고독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맞바람에 제 자리에 멈춘 듯 날아 있었다. 순간에 머물고자 했던 내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움의 행복도, 고독의 씁쓸함도 모두 영원히 짊어지고 싶은 내가 힘겹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쉽게 사람은 행복하면 행복이 찰나에 그칠까 불안해한다. 고독의 고통에 짓눌리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행복도 고통도, 영원한 듯한 마음은 찰나의 반짝임에 그친다. 내가 여전히 그 영원함에 사로 잡혀 있을 지라도, 그 순간들은 모두 지나고야 만다.


바람이 바뀌고 곧 새는 멀리 날아갔다. 나는 오래도록 그 새가 날아간 하늘을 바라봤다. 영원하지 않기에 저 새는 나아갈 수 있었다. 영원한 날갯짓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었다.


설국에서 느낀 영원의 찰나를 명확하게 해설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찰나가 주인공 시마무라의 마음에 어떤 식으로든 파편으로 남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런 영원의 파편은 삶의 순간순간 떠올라 마음에 작은 파문을 만들 것이다. 어느 날의 노을이, 어느 날의 윤슬이 내게 그러했듯이.


살면서 나는 몇 번 더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될 거다. 행복하고, 괴로운 찰나의 영원함이 되려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일러줄 거다. 영원히 머무르고 싶고, 영원히 떠나가고 싶은 욕심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건, 그런 찰나의 덧없음에서 영원함의 반짝임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끝없이 흐르는 강물에 손을 게다 쥐어진 모래알이 반짝이는 순간에 마음을 빼앗기길 반복하는, 그런 어느 오후 같은 날 말이다. 화마의 혼란 속에 쏟아지는 은하수에 일순간 마음을 빼앗기는 그런 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