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저마다의 삶의, 작은 도전의 위대함을 안다
가끔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 온 분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신입 기준의 공고에도 다양한 나잇대의 분들이 찾아온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듯 앳된 사람이 오는가 하면, 짐짓 서른 중반은 돼 보이는 사람이 오기도 한다.
나이가 어렸더라면 아마 이렇게 다양한 나잇대의 사람들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걸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두고 왜 누군가는 바로 기회를 잡고, 누군가는 한참을 돌아야 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걸 단순히 스스로의 잘못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지금의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내 20대가 후회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잘 풀리는 일이 없었다. 대입에 실패했었고, 신춘문예에는 몇 번 낙방했다-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편에 보낸 글은 형편없었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는 곧바로 취업하지도 못했다. 방향도 몇 번 틀어야 했고, 이력서는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내 20대는 실패가 많았다. 열심히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게 많았다. 그러나 무가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인생은 대게 그러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물론 누군가는 정해놓은 트랙 위를 순조롭게 달리기도 한다. 그건 멋진 삶이다. 내가 배운 건, 그들이 멋지다고 해서 몇 번이고 부딪히고 돌아가는, 길을 찾아가는 삶이 못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지인 중 몇은 건실히 회사를 다니고, 또 몇은 아직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 모두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그렇게 길을 찾기 위해 헤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어릴 때는 월에 300만 원을 받는 게 무척 쉬울 것 같았다. 번듯하고 큰 회사를 다니는 게 당연할 줄 알았다. 반짝거리는 삶이 내 일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많은 삶이 그러하듯,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가장 반짝이는 삶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게 비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내 삶만 반짝인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모두 하루하루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삶에서 도전하고,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뿐이다. 무게에 경중을 매길 수는 없는 저마다의 도전 말이다.
번번이 이력서가 퇴짜를 맞다 갑자기 잡힌 면접 자리는 긴장됐다. 집에 기대다 생활비라도 벌어보려 음식점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갈 때는 마른침을 삼켰다.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첫 출근날 회사 앞에서 망설이기도 했다. 이 작은 문턱 같은 순간들 뒤에는 때로 실패가 있기도, 때로 성공이 있기도 했다. 결과를 떠나 후회는 없다. 해 봤으니 좋았다. 그 문턱을 넘어선 스스로를 대견하게 바라봤다.
그런 20대를 보낸 뒤 내게 생긴 좋은 변화는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이제 그들 삶 안에 숨겨진 저마다의 치열한 전쟁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매일 문턱을 넘어서고 있고, 그 순간에 경중은 있을 수 없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사람의 땀과 방안을 벗어나 햇빛을 마주한 누군가의 땀은 동등하게 위대한 것이다.
그러니 누가 내게 멋진 어른을 묻는다면, 그런 작고 위대한 도전의 가치를 아는 어른을 꼽을 것 같다. 모두가 그런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누군가.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치열한 도전 속에 살아가는 모두에게 다정해야 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 말이다.
예전에 TV에서 한쪽 팔과 다리가 없는 여자분을 본 적이 있다. 그녀가 꼭 하고 싶은 꿈은 뒷산을 오르는 일었다. 그녀는 목발 하나를 짚고, 오전 나절이면 올랐을 산을 해가 질 때까지 올랐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그녀는 수십 번 넘어지며 끝내 정상에 올라섰다. 나는 그 순간 그녀가 보인 미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말 위대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와 같은 자세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에겐 보잘것없는 것이어도 된다. 당연하거나 쉬운 일이어도 된다. 그러나 그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라면, 넘어져도 계속해서 한 걸음씩 문턱을 넘어가 보는 삶. 그 땀을 알기에 타인의 땀의 가치 또한 위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나도, 당신도 위대하다고 말이다. 어느 날 면접을 보기 위해 문을 두드렸던 당신은, 방 밖으로 한 걸음 디뎌보기로 마음먹었던 당신은, 그리고 누군가의 터널 같은 고통의 시간을 함께 걸어준 당신은 위대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의 위대한 도전에 땀을 흘리고, 오늘도 애쓰는 모두에게 다정해야 한다. 정상에서 목발을 짚고 웃던 그녀의 미소처럼, 스스로 문턱을 넘어섰다는 위대한 가치에 대해, 그 마음과 땀에 대해 다정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응원 덕에 우리는 또 나아갈 수 있다. 당신의 다정함이 있기에 나는 오늘을 또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당신도 나의 다정한 응원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삶의 다정한 물결이 모이는 가운데 사랑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