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아버지의 낡은 트럭을 생각하다가
중학교 1학년, 가세가 기울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뒤판 구석이 붉게 삭은 낡은 흰색 트럭을 타고 다녔다. 어렸던 나는 그게 부끄러웠다. 아침에 아버지 차를 타고 학교에 갈 때면 학교 앞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 내려달라고 떼를 썼다. 교문 앞에 줄 세워진 반짝거리는 승용차들이 부러웠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아버지의 트럭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해도, 그 상처는 절대 가슴에서 씻기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낡은 차를 타건, 빚에 조이는 나날 속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을 학교에 바래다주는 그 마음은 어느 군데도 녹슨 게 없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어렸던 그때는 몰랐다.
어두운 방 안에 앉아 그때를 돌아보며, 우리가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한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모, 형제, 자매, 연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랑과 소중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그들에게 가끔 잔인할 만큼 모질다. 그들의 마음에 어떤 구멍이 있는지 알면서, 그 구멍을 후벼 판다. 그들의 마음에 애써 잊고 사는 어떤 그늘이 있는지 알면서, 그 심연을 들춰낸다. 뒤늦게 후회하지만, 우리가 만든 그들의 상처가 없던 게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우리를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괴롭게 해도 당신은 내일도 나를 여전히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모질게 만든다. 그들의 마음에 있는 구멍을 넓힘으로써 내 마음에 어떤 결핍이 자라나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그리고 결핍에 책임을 잔인하게 상기시킨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영원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는 그런 우리의 어리석음을 상기시킨다. 날카로운 어리광을 받아주기에 아버지의 등은 이미 굽어졌을 것이다. 쏘아대는 눈빛을 감내하기에 어머니의 빰은 이미 수척해졌을 것이다. 모진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삼키기에는 이미 당신의 마음은 연약하게 부러지고 있을 것이다.
뒤늦은 후회는 고통스럽다. 모질었던 만큼 사랑을 쏟아내고 싶어도, 이미 내게 밀물 같은 사랑을 주었던 이는 낡고 해져 흩어지고 없다. 내 마음의 가시를 걷어내고 이제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사랑을 받아야 마땅한 이는 이미 없고 모래에는 소금기만 하얗게 남았다.
그러니 우리는 가시가 아닌 다정함을 주어야 한다. 소중한 만큼 다정함으로 대하고, 따스함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홀로 소금기 벤 모래사장을 걸으며 나의 모짐과 어리석음을 후회하기 전에.
그때 아버지의 낡은 트럭이 아닌, 매일 나를 바래다주는 마음을 바라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이 미처 주지 못한 게 아닌, 이미 넘치게 준 사랑을 바라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에는 사랑으로 대해져야 함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 사랑을 주는 다정한 이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배려받고 존중받아야 함을 모두가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