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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경 Jul 27. 2020

15살 연하의 애인

62년생 박미경 이야기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를 통해서 만난 애인은 나보다 15살 연하였다. 우리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내가 나이보다 젊게 살았던 것도 있고, 그가 외국에서 생활을 했어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것도 15살 연상연하 커플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고정관념이나 인습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나이를 상관치 않았으며 나를 창피해하지도 않았다.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했다. 요리는 거의 그의 일이었다. 나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무얼 먹고 싶냐고 전화를 해서 저녁을 해주었다. 아침에도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구워서 아침을 차렸으며 때로는 점심 도시락도 싸주었다. 흥이 많고 명랑하며 호기심이 많고 친화력이 좋아서 친구들을 금방 사귀었다. 그가 외국에서 사귄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오기도 했다.


이렇게 놓으니 완벽한 남자 친구인 것만 같다. 하지만 알다시피 완벽한 관계는 없다. 그는 물심양면으로 나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 물론 외국에서 잠깐 한국에 들어온 김에 나를 만나게 되어 계획에 없이 눌러앉은 것이라 당장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하는 일도 예술 계통이라 돈벌이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런데 그는 경제적인 부분을 나에게 의지하는 것에 크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생각 모두 궁금해했고 나의 지식, 나의 시각, 나의 정보, 나의 인맥을 휴지처럼 흡수했다. 어떨 때에는 그러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인 양 어필했다.


그는 나의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어떨 때에는 내 주변의 여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거나 지나치게 다정하게 해서 여자들이 오해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동에 내가 문제제기를 하면 나의 질투며 구속이라고 화를 냈다. 나는 구속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는 고정관념이나 인습에 얽매어 있지 않은 대신 정조관념이 흐릿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자유연애주의자였다면 처음부터 내게 말을 하고 내가 연애의 시작을 결정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우리 스스로는 나이 차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겪어보니 한국사회에서 15살 차이의 연애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따가운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나이보다는 젊어 보이긴 하지만 15살 나이 차이는 아무래도 외형상 티가 날 수 밖에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남자 친구보고 아들이냐고 했다. 물론 그런 경우는 그 사람의 눈썰미에 심하게 문제가 있는 것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항상 당황하고 망설였다. 내 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는 그가 삼촌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가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15살 연상의 여인과 사귄다고 했을 때, 산전수전 다 겪으신 그의 어머니도 "결혼할 건 아니지?"라고 했다 한다. 우리의 관계는 남들이 보기에 이렇듯 미래가 없는 관계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이의 빈틈에 파고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사이는 진지한 미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꾸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는 젊은 나이에 나에게 정착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모험을 해보고 싶고 조금 더 많은 여자들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랑 사귀고 있어도 가끔 그런 시도를 했고,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니, 불안하다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사실 그 나이의 나, 당시 마흔이 넘은 나는 설레는 연애보다는 안정된 관계의 파트너를 원했다. 그런데 그는 안정감을 주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인생의 사이클이 다르다는 의미이고, 사이클의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르고 줄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그 간극을 좁혀가려면 본인들의 노력과 주변인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우리는 각자 노력 부족했고 주변인들도움도 부족했다. 주변에서 우리를 자꾸 연인으로 불러주고 봐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한 번은 그의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왔는데, 그중 그가 외국생활을 할 때 썸을 타던 한 여성이 그가 애인이 없는 줄 알고 데이트를 하자고 했고 그가 오케이라고 답한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왜 애인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기가 막혔고 배신감이 들었다.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고 내가 계속 따지자, 그는 나의 구속이 너무 심하다면서 여행을 가겠다고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와의 2년에 걸친 연애와 동거생활은 끝났다.

아무래도 그는 나를 호기심에 사귀었던 것 같고 호기심이 충족되자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랑이 식었으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 원인을 나에게 돌리려는 태도가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또한 그가 나와 헤어지자 마자 바로 어린 여자를 사귀었고, 그녀에게 하는 말들이 내가 그에게 했던 말들이었음을 어쩌다 알게 되자 코웃음이 나왔다. 나와 2년을 살면서 나의 골수를 모두 빼먹고 그것을 다른 여자와의 연애에 써먹다니 참으로 비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의 끝은 대개 아름답지 못하다. 거의 모든 남녀의 이별은 추하기까지 하다. 특히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뽑아 먹는 관계는 좋지 않다. 사랑은 여러 가지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는 좋지 않다. 그렇지만 나도 받은 게 많지 않냐고? 그렇다. 교훈을 얻었다. 뽑아 먹히는 연애는 하지 않겠다고. 끝낼 때 뽑아 먹힌 쪽은 너무 억울하니까.


무엇보다 나이가 드니 이별을 극복하는 것이 젊을 때에 비해 몇 배나 힘들다. 그와 끝나고 난 후 너무 힘들어서 몸과 마음을 수습하기까지 딱 우리가 연애했던 만큼의 기간이 걸렸다. 젊을 때에는 그 기간이 짧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별을 극복하는 기간이 길어진다.  


나는 서러운 마음과 분노, 배신감, 절망, 비참함, 자괴감 이런 것들이 휘몰아쳐서 몇 달 며칠을 집에서 앓아누웠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은근히 나를 탓하는 분위기였다. 그만 놔주라는 둥, 구속하지 말라는 둥. 그런 와중에 그가 나 몰래 추파를 던졌다는 증인들도 나타, 정말 그와의 이별은 내게 삶의 쓴맛을 모두 맛보게 해 주었다.


그 이후로 연애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이후로도 연하남들이 많이 꼬였지만 또 저렇게 끝나게 될까 봐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했다. 다시 한번 예전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내가 먼저 끝내버렸다. 내가 더 이상 비참해지기 전에, 또다시 상처 입기 전에 씨를 잘라버리는 것이 나를 위해 좋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관계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아예 연애를 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다. 한국의 내 또래의 남성이나 연상남은 대화가 잘 안되고, 연하남은 끝이 좋지 않을것 같아서 시작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 나에게 총각의 연하남은 존재하지 않는 나이도 되었고.


사실 젊은 시절 워낙 지랄맞은 연애를 많이 해서 이제 연애세포가 다 소진된 것 같기도 하다. 맘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도 길어야 이틀 정도 설렐 뿐, 그 후엔 시들해지고 별거 없어 보이고 그렇게 되었다.


하긴, 나이가 60을 향해서 가니 이젠 아예 설레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이 들어도 계속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 보인다. 보통 에너지와 정력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 같이 사랑이나 연애에 시큰둥한 사람도 있다.


그러하니 나이 들어서 연애나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생의 열정이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나 연애를 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이가 무슨 문제예요~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죠!!"라고 하는 말은 듣기가 싫다.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고 하기가 싫으니까, 해봤자 얻는 것이 별로 없으니, 내가 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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