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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경 Jul 30. 2020

10년간의 점집 표류기

62년생 박미경 이야기

역시 그날 저녁에도 석촌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진짜 너무 고마워요"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너무 치유가 됐어요"

"그래? 뭐라셔?"


처음으로 점집이라는 곳을 간 것은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아이 없인 못 살 것 같았던 나는 아이를 주지 않겠다는 남편과의 갈등으로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했다. 그래, 죽기 전에 점이라도 보자, 내 삶이 여기까지인가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보이는 간판을 따라 아무 데나 들어갔다.


한자로 쓰인 족자와 동양화 그림들, 여러 가지 형상으로 모셔진 불상들, 진한 향냄새, 난생처음으로 가본 점집의 분위기는 현실 세상과는 다른 세계인 듯했는데 뭔지 모르게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사주와 관상을 보는 선생님은 포스가 남달랐다. 화려한 한복을 입고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먹을 갈아 붓으로 종이에 내 생년월일시와 이름을 썼다.


나의 고민을 듣던 선생님은 남편에게 애를 주라고 했다. 그리고 나보고 자유롭게 살라고, 외국에 나가라고 했다. 나는 혼자 살거나 외국 사람이랑 결혼을 할 팔자이고, 부모나 형제자매도 없는 외로운 사주라고 했다.


사주를 보는 선생님은 나이 든 분인데 그런 과격한 얘기를 하니까 굉장히 신기했다. 그러나 내가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지금 나에게 안 좋은 살이 들어와 있는데 그것을 풀려면 굿을 해야 된다고 했다. 굿이 부담스러우면 본인이 산에 가서 기도를 해주겠다며, 원래는 몇백만 원부터 시작이지만 내가 돈이 없고 불쌍해 보이니 딱 75만 원만 내라고 했다.


만약 그 가격이 아니었으면 난 "에이, 사기꾼이네"하고 그냥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내라는 금액이 딱 내가 쓸 수 있는, 적금통장에 들어있던 금액이었다. 그 금액을 어떻게 맞추었을까.


나는 너무 놀라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바로 은행에 가서 적금을 해지하고 그 돈을 찾아서 가져다 바쳤다. 당신이 산에 가서 나 대신 기도를 드려주겠노라, 앞으로 다 잘 풀릴 것이다,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그런데 진짜 며칠 후에 남편에게서 아이를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고 친권과 양육권 모두 넘기겠다고 했다. 이럴 수가. 너무나 신기했다. 남편이 그렇게 순순히 양보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선생님의 기도가 통한 것인가.


그 이후로 나는 그 점집을 몇 년간 다녔다. 선생님은 나를 불쌍히 여겼고 밥을 사주기도 했으며 간식도 늘 내주었다. 무슨 색깔의 옷을 입어라 화장을 어떻게 해라 등등의 충고도 해주었다. 이혼 후 몇 번의 연애사건으로 상담을 했을 때에는 그런 시시한 놈은 만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화를 내기도 하고 더 좋은 인연이 있을 거라며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선생님의 기도빨이 통하지 않자 인연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레 발길을 끊게 되었다.



그런데 한번 그 세계에 발을 담그자 관심을 끊을 수가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인연이 맞는 곳을 찾아 여러 점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사주를 보는 집도, 신내림 집도, 타로점도, 용하다는 곳을 두루두루 찾아다녔다. 딱 봐도 사기꾼인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기꾼 같은 사람에게도 넘어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점집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같이 절실하고 절박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금만 신뢰를 주어도 마음을 열게 되고 매달리게 되곤 한다.


계속되는 점집 순례 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사주를 잘 본다는 한 점집에 가게 되었다. 석촌역에 있는 점집이었다. 전철역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에는 사주를 보는 선생님이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너무나도 청결하고 정갈하고 안락한 분위기에 일단 심신이 녹아내리고 마음이 열렸다.


그때는 내가 15살 연하남과 헤어지고 난 뒤 심신이 몹시 피폐해져 있을 때였다. 선생님은 나와 그의 사주를 종이에 정갈하게 쓰고 사주 책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메모하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뿌리가 아주 강한 사람이네요. 뿌리가 땅에 깊게 박혀있어서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그에 비해서 남자분은 뿌리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날아다녀요. 지금 저렇게 여기저기 날아다녀도 심리적으로 남자분은 당신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당신 주변에서 맴돌 거예요"


이때 선생님의 이 말은 실의에 빠져있던 나를 크게 위로하였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었지. 내가 그런 사람한테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어. 그는 결코 내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평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주변의 한 지인은 그런 말은 평소 본인이 나에게 줄기차게 해온 말이라며 새삼스러운 내용도 아니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이 표현방식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들릴 수 있는지 나는 그 선생님을 통해서 깨달았다.

"넌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너무 세. 너에 비해 그는 열려있고 유연해. 게다가 그는 아직 정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고집 피지 말고 그걸 받아들여."라는 충고와 저 선생님의 말은 얼마나 다른지.   


이후로 나는 그 선생님의 신봉자가 되어 여러 번 그 집에 갔고 갈 때마다 내 마음은 치유가 되었다. 선생님은 항상 저렇게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해주고 나를 분석해 줌으로써 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선생님으로 인해 나는 마치 내가 대단하고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나를 알아봐 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신봉자가 된 나는 주변의 여러 지인들에게 그 집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 거의 대부분이 나와 같이 치유를 받고 감동해서 석촌역에서 내게 감사의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선생님과도 인연이 다하게 되는 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니...



20여 년간 종사했지만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고 재미도 없어서 과감히 미술계 일을 접고 빚을 내어 조그만 바(bar)를 연 적이 있었다. 그때 가게가 잘 될 것인가 궁금하여 사주, 신점, 타로점을 보러 갔었다. 석촌역의 그 사주 집 선생님도, 유명한 타로점 선생님도 모두 나보고 무슨 걱정이냐고, 아주 잘돼서 2호점, 3호점까지 낸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장사가 안돼서 적지 않은 빚을 떠안고 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렇게 석촌역 선생님과도 이별을 하게 되었고 석촌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일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술집을 하면 2억 빚을 지니까 하지 말라고 했던 신내림 점집은 계속 다녔었는데, 이 집도 이후의 나의 직장에 대한 잘못된 예측, 그리고 내가 이끌고 간 지인의 동업에 대한 잘못된 예측을 끝으로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신점 집 선생님이 언젠가 해준 말,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들 결혼할 때까지 살아계신다는 말은 정말이지 믿고 싶다. 과연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매일 SNS에 그 신점 집을 홍보할 텐데 말이다.


그렇게 한 10여 년을 유명하다는 사주 집, 신점, 타로점 순례를 하고 나서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들은 심리분석가이자 카운슬러라는 것이다. 많은 경험과 통계로 상담자를 분석하고 고민을 상담해 주는 사람들, 일반인들이 쓰지 않는 표현과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래를 맞히고 해결하는 것은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본다. 상담자의 성격이나 성향 등을 분석하여 미래의 방향성이나 갖추어야 할 태도 등을 얘기해 줄 수는 있으나, 콕 집어 어떤 사안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혹은 진짜 용해서 맞힐 수는 있다. 그러나 우연일 수도 있는 데다가 그런 경험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나의 점순이 생활도 미래가 해결되는 신기한 경험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기도 덕분이라고 하기엔 남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배경이 있었다. 타이밍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75만 원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점집에 가려고 할 때, 마음의 안정과 치유, 본인을 더 잘 알고자 하는 의도라면 말리지 않지만, 미래를 알고 싶다거나 중요한 결정을 위해 간다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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