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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경 Jul 24. 2020

아줌마, 목의 문신은 지우고 오세요

62년생 박미경 이야기

내 몸에는 문신(타투)이 많다. 오른팔 전체와 왼팔, 등, 목, 발등에 여러 가지 모양의 문신이 있다. 젊을 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젊을 때에는 일반인들 중에 문신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나이 40대 초반에 문신을 처음 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인 중에 미술학원을 18년 동안 운영한 미술가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직업이 너무 지겨워진 차에 주변의 문신사들의 추천으로 문신사로 전업을 한 것이었다. 초보였던 그 친구가 돼지 껍질 등에 연습을 하다가 연습 대상을 사람으로 바꾸어야 할 시점에 내가 그 대상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누나 문신 한번 해볼래?"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지 뭐" 하고 수락해 버린 것이다.


새로운 도전이라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이런저런 일이 잘 안 풀리고 있었던 터라 기분전환 겸 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문신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예술가들이라고 해도 문신은 선뜻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호기롭게 하겠다고 했던 몇몇 남성 미술가들도 막상 닥치면 못하겠다고 발뺌을 하곤 했다.


나는 문신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최후의 순간에 발뺌하는 용기 없는 남자들을 비웃어 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크게 의식은 안 했지만 센척하고 싶었던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보다도 그땐 호기심이 제일 큰 동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사부로 모시는 사부의 작업실에서 사부의 검열을 받아가며 시작했다. 연남동 지하의 그로테스크하고 향냄새가 나는, 전형적인 홍대 스타일의 작업실이었다. 처음 라인을 딸 때에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면으로 들어가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문신이라는 것이 말하자면 밭을 갈고 거기에 물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러니까 살에 상처를 내서 거기에 잉크를 집어넣는 것인데, 상처를 내는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고통이 증가되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컬러가 들어가면 아픈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선이냐 면이냐가 관건이다.


문신은 하루에 시술할 수 있는 양이 있다. 문신사도 집중해야 하고 받는 사람도 아프기 때문에 한두 시간 이상은 힘들다. 또한 아픔이 가시고 상처가 회복된 후에야 시술을 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문신의 면적이 넓고 그림이 많으면 총 걸리는 기간은 꽤 오래 걸린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특별히 하고 싶은 도안은 없었는데 문신사 친구가 식물을 하면 나중에 연장을 하거나 동물이나 다른 것들과의 조화도 괜찮으니 꽃을 하자고 했고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오랫동안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을 가르친 친구여서 문신을 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장애가 되는 점이 있었다. 종이에 그리는 그림과 사람의 살에 물감을 주입하는 문신은 명암 넣는 단계가 완전히 반대여서 헷갈려했다.


그리고 힘 조절이라든가 입체에 대한 이해라든가 이런 점들이 경험이 없으면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그 친구는 초보라서 하는 동안 사부에게 지적도 많이 받고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대인배여 서가 아니라 문신이란 게 한번 하면 지워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문신을 하고 나니 뭔가 굉장히 뿌듯했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면 놀라면서 보여달라고 했고, 대단하다고 용감하다고 했다. 그러자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정확히 "난 좀 달라"라는 기분이었다. 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나는 쫄보가 아니야, 세상을 두려워하는 너네랑은 달라,라고 선을 긋는 '분리주의'의 메신저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문신이라는 필터로 사람을 거르기 시작했다. 문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호감을 느끼고, 문신을 타부시 하는 사람들에겐 을 긋는 필터가 내 안에 생기기 시작했다. 문신을 타부시 하는 사람들을 도태시키는 것, 낙후시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쾌락을 주었다.


그러면서 점점 문신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 얼굴을 등에 새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신은 실패했다. 전혀 닮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문신사에게 제일 어려운 순간은 손님들이 가족의 사진을 들고 올 때라고 한다. 그들은 가족을 매일 보고 살았으니 그 얼굴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문신사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사진 한 장으로 그 특징을 제대로 잡아낼 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손님에겐 같아 보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나 비틀스 같이 이미 아이콘화 되고 널리 알려진 인물은 많이 봐왔기 때문에 특징만 잘 표현해도 닮아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가족이 당사자보다 익숙할 수는 없으니 당사자는 어떻게 그려내도 만족을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자세한 묘사보다는 아우트라인만 그린다거나 일러스트적으로 그려주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손님들도 만족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디자인들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그러니까 정밀묘사 위주의 문신 이외에는 다른 표현방법이 없을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물 초상화는 문신사에게는 무척 어려운 과제였는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문신사도 자신의 주특기를 살린 전문분야가 따로 있다. 초상을 잘 그리는 사람, 식물을 잘 그리는 사람, 동물을 잘 그리는 사람, 레터링을 잘하는 사람, 도형적인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 이레즈미 전문 등등. 그때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가뜩이나 초보인 그 친구에게 인물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 본인도 미술학원을 오래 했고 인물 묘사나 데생을 지겨울 만큼 했으니 잘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나 사람의 살은 종이가 아니며, 종이처럼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번 잘못된 그림은 돌이킬 수 없는 법. 사실 그 날 집에 와서 하나도 닮지 않은 나의 아이돌을 보고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을 흘렸다.


발등에는 뱀 모양의 문신을 새겼다. 사람들에게 내 몸에 뱀 문신 있다고 하면 흔히 조폭의 몸에 그려진 뱀 문신을 생각하며 기대를 하는데, 발등의 작고 앙증맞은 뱀을 보여주면 폭소를 터뜨린다. 효과가 좋아서 분위기가 어색하거나 이목을 끌고 싶은 경우에 자주 써먹었다.

목의 문신은 역시 나의 아이돌과 관련한 레터링이었다. 이 문신은 추가 문신을 할 거라는 예상 하에 다른 문신사가 무료로 서비스해 준 건데 매우 맘에 들었다. 그러나 이 목의 문신이 내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될 줄은 그땐 몰랐었다.


사실 목에 문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문신 경력이 오래된 그 문신사조차 나보고 용감하다고 했다. 본인은 목에 문신을 하면 어머니가 그날 부로 호적에서 판다고 했다면서 목에 문신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나는 아이랑 둘이 살고 있었고 프리랜서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용감하다기보다는 크게 방해 요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목과 한쪽 팔 전체에 문신이 있는 채로 한국의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애건 어른이건 모든 사람이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내 면전에서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었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도 많았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왜 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지워지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 번은 전철을 탔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본인의 침을 묻혀 내 팔을 문지르는 것이 아닌가. 지워지는 건지 보려고 했다는.... 물론 목욕탕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문신을 한 이후에 나는 목욕탕을 딱 한번 가보고 그 이후엔 발길을 끊었다.


나는 그때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발 대놓고 쳐다보지 말았으면 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100프로  쳐다보고 80프로는 대놓고 쳐다보며 90프로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무차별 테러를 당한 후에 나는 인생이 피곤해졌고 나를 보호하고자 자연스럽게 문신을 가리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 제일 싫은 계절이 되었다. 더운데 반팔을 입을 수가 없었다. 여름만 되면 긴 팔인데 시원한 상의를 찾는 쇼핑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팔의 문신은 긴팔을 입거나 팔토시를 하면 가릴 수 있었지만 목은 문제가 달랐다. 판매 유통 매장직을 시작했을 때, 많은 곳에서 문신을 거부했다. 특히 목의 문신은 항상 문제가 되었다. "목의 문신은 안돼요. 지우고 오세요"라고 요구받았다.


겨울에는 목폴라로 가릴 수 있었지만 나머지 계절에는 분장을 해야 했다. 일반 파운데이션으로는 목의 문신이 가려지지 않아서 분장용 화장품을 사서 목에 바르고 다녔다. 하지만 목에 바른 화장품은 옷깃에 묻어났고 땀을 많이 흘린 날엔 문신이 거의 드러났으며, 옷깃에 묻은 화장품은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또한 분장용 화장품은 시간이 지나면 쩍쩍 갈라져서 보기에도 안 좋았다.


이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문신을 지우기로 결심을 했다. 문신을 지우는 레이저 기계가 있는 피부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10회 이상 해야 완전히 지워진다고 했다. 새로 들어온 좋은 레이저 기계로 하면 1회에 20만 원에 부가세 붙어서 22만 원이라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술을 받기로 했다. 마취연고를 발랐으나 레이저 시술은 매우 아팠고,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시술 후에는 목에 거즈를 붙였는데 그 모양새가 또한 보기가 좋지 않았다. 누가 목에 거즈를 붙이고 다닌단 말인가. 목의 거즈는 자해를 했거나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거라는 무서운 인상을 준다. 그래서 문신 제거는 거즈를 목폴라로 가릴 수 있는 겨울에만 할 수 있었다.


거즈 밑의 레이저 시술 자국은 보기에도 무척 아파 보였으며 빨갛게 부어올랐고 며칠 후엔 고름도 생겼다. 염증이 생기지 않게 약도 먹고 조심을 해야 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2주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재시술을 해야 하므로 한 계절에 다 없앨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두 해의 겨울에 걸쳐 약 8회의 레이저 시술로 목의 문신을 70 퍼센트 정도 지웠다.


어느 부분은 완전히 지워졌고 어느 부분은 흐리게 남아있다. 앞으로 약 3회 정도 시술을 더 받으면 완전히 깨끗하게는 아니지만 검은 선은 다 지워질 것 같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한다. 지난 겨울에는 피부과엘 가지 못했다. 목의 문신은 문신할 때에는 무료였는데 지우는 데만 2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게다가 문신할 때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데 지울 때에는 너무 아파서 가기가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문신을 한 것을 조금은 후회한다. 내가 어떤 삶을 살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문신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꼭 하고 싶다면 보이지 않거나 쉽게 가릴 수 있는 곳에 하는 것이 안전하다. 만약 내가 돈이 아주 많아서 문신이 금지된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된다면, 혹은 문신하는 것이 더 멋져 보이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해도 좋다.


하지만 외국처럼 문신한 공무원들이 활보하는 세상이 아닌 이상, 문신이 허용되지 않는 직업이 더 많은 이상, 방송에 문신이 모자이크 처리되어서 나가는 이상, 그런 관습들과 싸울 수 있는 멘탈과 환경이 되지 않는다면, 문신은 충분히 고려해봐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런 관습과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리라. 문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도태시키는 것, 낙후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 이리라. 그러나 나는 싸우거나 무시할 힘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고 돈도 없고 멘탈도 약했다.


결론적으로 문신을 하는 것은 인생이 피곤해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하니 본인의 환경과 멘탈을 잘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디자인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분리주의'는 자신이 속할 세상이 나를 보호해주고 먹여 살려줄 때 가능하다. 그런 판단이 되어 있지 않을 때 섣부른 분리주의는 후회를 가져온다. 내가 속하고 싶었던 세상에서 내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지자, 내가 속하고 싶지 않았던 세상 속으로 나는 다시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는 다른 세상의 흔적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세상에서, 그 경계선에서 피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 첫글이어서 글을 다듬지 않고 올려서  적절하지 못한 표현은 일부분 수정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이 난생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댓글 중 마음의 상처를 주표현은 죄송하지만 제 멘탈이 버티질 못해 삭제하고 있습니다. ㅠㅠ 그런데 미처 삭제하기 전에 대댓글이 붙은 글은  지우지 않았습니다. 많은 관심과 애정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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