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헬스라는 명상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길가에 걸어가는 한 남자가 보였다. 아주 빠른 걸음으로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급한 마음이 밖으로 보일 정도로 상체가 앞으로 나와 기울어 있었다. 중요하고 다급한 일을 앞둔 걸까. 사진 속에서 보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모른척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부터 내가 찍힌 사진을 보고 싶지 않게 된 건 나이 든 얼굴보다 굽은 체형 탓이 컸다. 굽은 어깨와 앞으로 나가 있는 목, 두둑한 등이 내가 봐도 문제가 많아 보였다. 누워서 폼롤러로 매일 밤 등과 어깨를 밀어 대고 스트레칭을 해도 그때만 시원할 뿐 체형과 통증이 나아지지 않았다. 목과 어깨의 불편함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심각하게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앉아 있기가 힘들다. 앉는 자세가 척추에 부담을 더 주기 때문에 목과 어깨가 당연히 더 불편해진다. 직장에서의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식사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는 일도 부담스러워진다. 잠도 잘 못 잔다. 자면서도 목 어깨가 불편해서 숙면에 들지 못해서 베개를 여러 개 바꿔보기도 했다. 어깨가 굳으면 호흡이 얕아진다. 말하기도 숨차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난다. 일상생활 속에서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바른 자세를 잡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고 숨이 찰 정도로 체형이 많이 무너져 있었다. 바른 자세는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의지를 지지해 줄 다른 도움이 필요했다.
헬스장에 들어서면 선생님이 입구 앞에서 인사하며 맞이해준다.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인사를 하고 가장 자주 들은 말이 천천히 하세요, 였다. 문에 들어서서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탈의실로 향하면서부터 내 몸은 이미 앞으로 한껏 쏠려있었다. 지각을 한 것도 아니었고 급할 일도 없었는데도 나는 다급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기다릴 수 있으니 천천히 하라는 단순한 배려의 말은 마법 같은 데가 있어서 금세 걸음이 느려지고 어깨가 뒤로 펴졌다. 천천히 해도 된다는 걸 몰랐던 게 아닌데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 그것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속도가 달라졌다. 움직임이 느려지니 가슴이 펴지고 호흡도 깊어진다. 빠르고 짧은 호흡은 근육을 긴장시키고 심장박동 수를 높여 민첩하게 움직이게 하지만 동시에 불안과 예민함도 높인다. 운동에는 이완과 수축이 있다. 운동 부위의 근육을 수축할 때는 빠르게 움직이지만 이완할 때는 천천히 해야 관절이나 인대를 다치지 않고 안전하다. 근육도 더 성장한다. 사는 데도 이완의 시간이 필요한데 나는 무엇 때문에 빠르게만 움직이며 살았을까. 바쁘게 움직이며 나의 열심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운동을 하면서 좋아지기를 바랬던 첫 번째는 목, 어깨 체형을 바꾸고 통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통증 때문에 운동을 하기가 힘이 들었다. 특히 어깨와 등운동을 할 때 동작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과 어깨의 통증이었다. 동작을 하다가 목 뒤와 어깨의 뻐근함을 호소하면 어깨를 내리고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와주었다. 도움을 받아 횟수와 강도를 늘렸고 배운 것을 혼자 복습도 해보면서 어깨를 올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습관을 고치려고 했다.
운동 횟수, 강도가 늘어나자 눈으로 보이는 상체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체가 많이 반듯해졌고 통증도 좋아졌다. 주방에서 요리할 때, 컴퓨터 작업을 할 때 몰두하면 어느새 목이 앞으로 나가 있고 등과 어깨가 구부정하게 되지만 바른 자세를 잡으면 전보다 쉽게 유지할 수 있었고 통증도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해결이 됐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 지 5개월이 될 즈음부터 느낀 변화였고 변화는 계속됐다. 걷기와 숨쉬기가 자연스러워졌다. 말할 때 달리기 한 후처럼 숨이 찼는데 말할 때도 편해졌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느긋해지고 행동도 천천히 하게 됐다. 행동이 느려지니 마음도 덜 쫓기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근육이 마음의 속도까지 잡아주나보다.
운동 세트 사이에 쉬는 시간은 보통 1분 30초 정도가 주어졌다. 내가 그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다음 운동을 하려고 움직이면 선생님이 아직 조금 더 쉬라고 한다. 급한 성질은 잘 안 바뀌나 봐요. 어릴 적엔 엄마에게 느리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급한 사람이 되었나. 세상에 닦인 속도와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만나 시너지를 발휘했다. 할 일은 항상 앞에 놓여있다. 의무와 책임들을 앞에 두고 조급함에 떠밀린다. 몸이 앞으로 향하고 긴장된 어깨가 그 목을 따라가느라 위로 치솟는다. 등근육은 어깨가 펴지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근육으로 꽉 찬 넓고 두툼한 등을 갖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내 등에 붙은 근육이 나를 바로 세운다. 내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든든한 빽(back)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