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헬스라는 명상
우리 헬스장엔 체성분을 측정하는 기계가 없다. 한쪽 구석에 비슷한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존재를 모를 정도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피티를 시작할 때 체성분을 확인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선생님은 체성분 측정 결과는 참고 사항일 뿐 온전한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으며 눈으로 확인하는 변화가 더 유의미할 수 있다고 했다. 선생님 말을 백프로 따르는 헬스모범생인 나는 군말 없이 체성분에 대해 잊어버렸다.
5개월이 지나고 운동에 열성을 다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보건소에서 체성분 분석을 해봤다는 말에 나도 며칠 뒤 보건소를 찾았다. 운동에 열성인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나 엄청난 양의 근육이 나오면 어떡하나 기대감이 생겼다. 측정하는 곳은 보건소의 3층에 있었다. 보건소 로비 한 가운데 계단이 떡하니 자리 잡고는 계단을 이용하면 건강해진다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감히 엘리베이터를 찾을 엄두도 못 내고 3층 까지 착실하게 걸어 올라가는 동안 기대감도 자랐다. 그간 신체 통증이 줄고 살이 좀 단단해지는 것 같은 몸으로 느껴지는 변화는 있었는데 숫자에도 그만큼의 변화가 있을까.
마침 체성분을 측정해 주는 선생님과 문 앞에서 마주쳤다. 찾아온 이유를 얘기하니 바로 문 안으로 안내했다.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적고 키 재는 기계에 올라갔다. 허리를 쭉 뽑아 올렸다. 소용 없나보다. 키가 늘어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체성분 측정기에 올라가 기계에서 시키는대로 손잡이를 잡고 겨드랑이를 벌리고 말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체지방과 근육의 가로막대그래프가 점점 길어지는 것이 보였다. 체지방량은 멈췄으면 하는 곳을 지나 더 오른쪽으로 갔고, 근육량은 좀 더 갔으면 하는 데까지 못 가고 멈췄다. 측정 결과지를 받았다. 담당선생님이 설명을 간단히 해주었다. 체지방량이 중요해요. 체지방량이 표준 이하면 영양부족일 수 있는데 표준에 있으니 괜찮아요. 모든 것이 표준범위 안에 있었고 괜찮다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내 기대에는 못 미쳤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실망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선생님이 체성분을 측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나. 몸무게에 집착하기보다는 몸의 변화와 컨디션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아침 체중계 위에서 일희일비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까 봐. 종이 위의 숫자들이 몇 개월 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5개월 운동 해놓고 5년을 운동한 사람 같은 몸을 바라고 있다. 그동안 가져온 마음의 습관대로 조급한 마음이 올라왔다. 평생 운동할 거라고 다짐해 놓고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과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의 마음으로 다시 나를 다그치려 하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결과를 말했다. 긍정과 격려의 신인 선생님은 운동량은 충분하니 단백질로 좀 더 드셔야겠다, 점수가 좋은 편이다, 근육을 늘리면 지방은 조정이 될거다, 정도의 피드백을 주셨다. 선생님의 피드백 덕에 영양 섭취에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그동안 운동 하고 오면 점심 식사 후 내내 피로해하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기운이 살아났었다. 운동하는 만큼 양질의 영양이 들어오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겠다는 생각은 모범생의 규칙을 어긴 소득이다. 운동은 영양과 휴식을 조화롭게 유지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도 상기했다.
헬스장에서 알게 된 언니가 있다. 자주 아는 척을 해주고 말을 걸어주고 해서 나도 보이면 인사를 하고 대화를 주고받게 됐다. 언니는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예뻐졌다, 날씬해졌다,좋아졌다 하는 말도 자주 해주었다. 운동을 하기 전이면 하기 싫다고 하면서 운동을 했고 운동을 하고 나면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말을 그렇게 해도 일주일에 5일은 꼬박 와서 열심히 운동했다. 본인의 몸도 갈수록 건강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루는 하체운동이 끝나고 죽겠다는 소리에 내가 말했다. 제대로 하셨나 보네요.
마침 옆에 언니를 가르치는 다른 선생님이 있었다. 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나에게 선생님이 빙의됐다. 힘들어할 때면 운동을 잘해서 그렇다, 근육을 잘 써서 그렇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말하는 나를 돌아보며 웃음이 나왔다. 스며들 듯 변화하는 내 마음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운동을 하고 근육통이 있으면 움직이기 힘들어서 아프고 짜증내는 게 아니라 운동을 제대로 했네, 하며 뿌듯해한다. 그리고 근육통이 전보다 덜 해도 운동을 제대로 안 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내가 강해졌다고 생각하며 또 좋아한다. 그리고 운동의 강도를 조금 상향 조정할 계획을 세운다. 나아가는 과정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그렇지만 세심하게 관찰해 주고 긍정적으로 격려하며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 나 스스로 나에게 줄 수 있는 친절이다. 나를 대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계속 그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