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헬스라는 명상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는 분들과 공저책을 출간할 기회가 생겼다. 찾아오는 기회, 내미는 손을 잡을까 고민이 들었다.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았지만 해야 할 이유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내 마음 한 가지였다. 그동안은 에너지를 아끼고 효율적으로 분배해야만 했지만 운동과 병행한다면 좋아지는 체력이 나를 도와줄 것 같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리 길지 않으니 시도하고 마무리지어보자고 마음을 잡았다.
공저책은 여러 명이 함께 한 권의 책을 만든다.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짧은 글 네 편을 썼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오면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글을 썼다. 아이가 오면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틈을 내어 글을 쓰고, 아이가 잠들면 무거운 몸과 머리를 버티며 또 썼다. 글에는 나의 현재와 과거가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이십대, 삼십대를 거쳐 최근 육아를 하던 가까운 과거까지, 그 시간을 다시 살고 감정을 다시 겪는 일이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내가 쓴 글이 읽을 만한 글이 될까, 세상에 나가서 무슨 의미를 갖게될까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계속해서 찾아 왔다. 초고를 쓰고 퇴고를 거치고 출간까지 약 세 달이 걸렸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바쁠수록 운동에 더 의지했고 운동 가는 횟수가 늘었다. 헬스모범생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책이 출간되고 출간 이벤트로 북토크 일정이 잡혔다. 강연이 천안에서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책이 나온 것을 생각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정작 책 주인인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이는 사람들에게 엄마의 책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엄마가 노력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아이에게 그 일의 피날레를 보여주고 싶었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말하기 연습을 했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순간까지 떨리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슴 펴는 일은 그동안 키워온 등과 어깨 근육에 맡기고 떨리는 마음은 솔직하게 표현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긴 10분이 무사히 지났다.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것은 나에게 의외의 선택이었다. 도전하기보다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사는 방법이었다.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이거 해서 뭐하나?' ‘그렇게 까지 해야하나?’하는 의심을 더 자주 했다. 아무 효용도 없어 보이는 일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에 물음표를 붙였다.
아이들은 놀 때 최선을 다해서 논다. 쓸모나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떠오르는 놀이를 시작해서 확장해 나간다. 공룡 놀이었다가 선생님 놀이가 되기도 하고 비행기 놀이가 무인도 놀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시작을 통해 끝을 예상할 수 없는 아이들의 놀이를 함께 따라가려면 어른인 나는 가끔 종잡을 수 없는 전개에 지치기도 한다. 아이는 끝없는 놀이에 집중하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집중력을 키운다. 최근 자신의 관심사가 놀이에 스며들기 때문에 자신의 흥미가 자연스럽게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하원하고 만난 아이가 가방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잘했다, 못했다 평하지 않고 그저 그림 그렸네, 정도로 반응했다. 아이는 자랑하려고 그림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그림을 어떻게 그리게 됐는지 말했다. 오후 시간엔 특별활동이 계획되어 있지 않은 요일에는 자유놀이 시간이다. 그런데 월요일에 있던 자유놀이 시간이 미술특별활동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이 엄마들이 애들을 그냥 놀게 놔두질 못한다고 했어요. 그러고보니 나도 자유놀이보다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계획되어 있어야 아이가 뭐라도 하고 오는 것 같아 안도하는 것 같았다. 자유놀이 시간을 뺏긴 아이의 아쉬움을 선생님과의 긴밀한 뒷담화로 해소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진로를 탐색한다는 것은 자, 지금부터 진로를 탐색해보자, 시작, 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가운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푹 빠졌다가 헤어나왔다가 다시 또 다른 것을 좋아했다가 하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재고 따지는 대로 흘러가지 않듯 아이들의 성장이 꼭 계획된 프로그램 대로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된다고 해도 그 결과가 아이를 위한 최선인지 알 수 없다.
우리 어머니는 아이 사진을 휴대전화에 첫 화면에 저장해 놓고 보면서 대통령님 좋은 아침입니다 하신다고 농담을 하신다. 아버님은 아이와 함께 자고 일어난 아침 아이가 기지개 켜는 걸 보시고 현이가 많이 클건가 보다, 하신다. 나는 친구의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목소리가 크고 친구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면 쟤는 장군새싹이다, 하고, 이야기 책보다는 백과사전류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고는 니네 아들은 이공계열인가보다, 하며 미래를 그린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때마다 이런저런 기대에 찬 말들을 하게 된다. 뭐라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이가 주는 에너지다. 아이가 흥에 겨워 막춤을 추는 걸 보는 날엔 쟤가 저러다 춤 추는 사람이 되려나? 하고, 역할놀이를 주구장창 하는 기간에는 얘는 연기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지나가다 보이는 풀꽃마다 멈춰서서 관찰하는 걸 보면 식물에 관심이 많으니 관련된 일을 해도 괜찮겠다 싶다가, 그래 뭐라도 해라, 하고 싶은 거 다해라, 하면서 행복한 고민을 내려놓는다. 가능성을 전제로 한 물음표, 설레임을 품은 느낌표, 아이를 키우는 게 재미있는 것은 그런 물음표와 느낌표를 마구 갖다 붙여도 괜찮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먼 삶의 방식, 아이가 자라는 걸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려운 살이는 그대로 곁에 두고 다른 것을 안고 갈 수 있는 힘이 난다.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인류의 발전은 기적이 반복되며 이루어졌다.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달에 가는 건 옥토끼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우리는 일상적으로 하늘을 날아 여행을 다니고 지구 밖의 우주에 가 있는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아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인간이 해온 쓸데없는 짓들이 우리를 꿈에 다가가게 했다. 쓸모없는 시간 속에서 나의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것 뒤에 붙였던 의심의 물음표를 떼고 그 대신 느낌표를 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에도 운동을 지속하며 내 생각에 느낌표 붙이는 연습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