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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Oct 15. 2022

부르고뉴 계승전쟁

- 라푼젤 동화의 원전

Bourgogne 부르고뉴는 프랑스어고 영어로는 Burgandy 버건디이며, 붉은색 버건디 컬러의 버건디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부르고뉴 Bourgogne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독일) 사이에 존재하던 소국이었다. 그러나, 당시 15세기 후반, 양모와 섬유산업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였다. 


원래는 브루고뉴 공국은 스위스와 가까운 라인강 상류에 있던 지역, 프랑슈-꽁떼 Franche-Comte에서 시작했는데, 백년전쟁으로 프랑스가 잉글랜드와 다투는 동안, 그리고 독일지역의 신성로마제국이 작은 국가들로 분열되는 동안, 두 강대국의 혼란을 틈타서 영토를 확장한다. 프랑스 남부인 프로방스Provence 지역부터, 스위스와의 접경지역, 상부라인, 하부라인지역, 라인강을 따라 Liege를 비롯, 저지대국가 지역 Picardy, Artois, Flanders, netherlands, luxembourg 까지 모두 차지한다. 이후 Lorraine까지 함락하며 북해와 지중해를 잇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Map of Burgandy


백년전쟁이 끝나자,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의 여파로 내전(장미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승전국 프랑스는 잉글랜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프랑스는 백년전쟁을 통해 지방제후들이 대거 전사해버리면서 지방의 힘이 약해졌고 왕권은 강화됐다. 프랑스 왕은 전쟁을 통해 쌓아간 관료제와 상비군제도, 전비를 마련하기 위한 조세정책 및 경제정책의 성공 등으로 중앙집권화를 이룩한다. 잉글랜드와 대결하면서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민족주의도 생겨나며 프랑스가 하나로 뭉쳐졌다. 이렇게 프랑스는 유럽의 강국이 되어갔다. 


문제는 프랑스가 혼란한 틈을 타서, 세력을 넓혀온 부르고뉴에게 프랑스의 국력신장은 큰 위협이 되었다. 때문에 대담하게도 부르고뉴는 더 커지기 전에 프랑스를 먼저 침으로써 스스로의 안보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런 대담한 정책 탓에 당시 부르고뉴 공작 찰스는 대담공/용담공(the bold) 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용담공 찰스 Charles the bold


찰스는 부르고뉴 군을 이끌고 프랑스를 선제공격했고 파리 남부에서 전투를 벌이며 프랑스와 대결했다. 문제는 부르고뉴의 속령 Liege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찰스는 프랑스와 휴전을 맺고 돌아온다. 이후 프랑스와 계속 대치하면서도 부르고뉴는 로렌Lorraine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로렌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부르고뉴의 영토는 라인강을 따라 북해에서 지중해까지 연결하고자 했던 찰스의 야망이 달성될 것 같았다. 이후 대담왕은 스위스연맹에 가입된 소국  공략하며 북해에서 지중해까지 자신의 영토로 잇고 싶었으나  당시 스위스군은 무척 강했다. 전쟁사에서 유명한 할버드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연전연승했다. 최근에 병합된 로렌은 스위스군에 가담하며 배반했다. 부르고뉴는 연속으로 패했으며 세 번의 연패를 겪으며 용담공 찰스 자신도 전사하고 말았다. 


할버드를 사용하는 스위스용병, 이탈리아 전쟁에서 명성으로 오늘날까지 바티칸 방어를 맡고 있다.


문제는 용담공 찰스에게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딸인 Marie가 유일한 후사였다. 부르고뉴의 비옥하고 방대한 영토는 모두 Marie에게 간다. 아버지 찰스가 the bold가 칭호였다면, 매리의 칭호는 the rich였다. 당시 얼마나 마리가 부유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프랑스의 왕 루이 11세는 자신의 아들 찰스8세와 부르고뉴의 마리와 결혼을 주선했다. 프랑스는 혼인을 통해 부르고뉴를 병합하면서 라인강을 따라 프랑스의 국경을 설정하고 안보를 확보하고 싶었다. 


부르고뉴는 두 강대국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의 땅이었기에 프랑스가 가져가면 신성로마제국에게 위협이 됐고, 신성로마제국이 차지하면 프랑스에게는 안보위협이 됐다. 프랑스는 혼인을 통해 병합하는 당대의 가장 적법한 절차를 통해 영토를 확보하려 했다. 


부르고뉴 입장에서는 적국 프랑스가 강성해지며 팽창해서 부르고뉴를 병합할까 두려움을 느꼈다. 부르고뉴의 대신들과 마리는 오히려 신성로마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한편, 경제강국이었던 만큼 프로방스 지역의 길드는 막강한 정치단체였고, 이들은 프랑스를 지지했다. 이들은 친 합스부르크(신성로마제국) 대신들을 처단하고, 마리를 감금시키며 프랑스와의 혼인을 강요했다. 마리는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릭 3세의 아들 막시밀리안 1세와 혼인을 맺고자 구애편지를 보내며 도움을 요청한다. 

Marie de Bourgogne

이에 막시밀리안은 군을 이끌고 와 혼인을 맺는데 마치 성에 갇혀있던 공주를 구하러 오는 설정에서 라푼젤 동화의 원전이 되었다고 한다. 동화는 그렇지만 사실은 부르고뉴가 프랑스의 병합을 견제하기 위해 그 라이벌 신성로마제국을 끌어들인 셈이다.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가는 경제적으로 빈곤했는데, 이 부르고뉴를 흡수하면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번성에 전환점이 된다.


한편, 프랑스는 부르고뉴가 신성로마제국과 혼인을 맺는 것에 분노했다. 즉각 군대를 몰고 부르고뉴를 힘으로 차지하려 했다. 혼인이 성사된 또 다른 강대국 신성로마제국 역시 군대를 보내 부르고뉴의 영토를 지키고자 했다. 유럽의 두 강대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부르고뉴는 로렌이 독립하면서, 로렌을 기준으로 북으로는 저지대지역과 남으로는 프랑슈-콩테 일대로 쪼개져있었다. 프랑스군은 프랑슈-콩테 지역을 점령했고, 신성로마제국은 저지대지역을 차지하며 대치했다. 프랑스는 다시 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저지대지역으로 진군했다. Picardy 지역에서 양국은 교전을 벌였고 신성로마제국군은 프랑스군을 괴멸시키며 승리를 가져갔다. 그러나 얼마 후 사냥을 가다가 부르고뉴의 매리가 사고사를 당하면서, 두 강대국은 서로 협상을 통해 부르고뉴 땅을 나눠가졌다. 


Holly Roman Empire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였던 신성로마제국은 스페인과 합쳐졌으며, 저지대지역은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다. 스페인은 이 저지대지역, 특히 네덜란드의 독립을 저지하는데 막대한 국력과 신대륙에서 벌어들인 은화의 대부분을 쏟아부으면서 강대국에서 멀어지는데 큰 이유가 된다. 


만약 이 때, 부르고뉴 계승전쟁에서 프랑슈 콩테지역을 신성로마제국이 차지하고, 저지대지역을 프랑스가 차지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는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오랜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고, 잉글랜드는 프랑스의 장악을 막아내며 기나긴 anglo-french 전쟁을 했을 것이다. 저지대지역의 지정학적 특수성만으로도 많은 가능성과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당시는 스페인의 시대라고 할 정도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의 몰락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도 여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다양한 가정을 떠올려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프랑스가 네덜란드 전쟁으로 몰락했을 수도 있었을까? 상상해본다.


Belligium Beer, Stella Artois

부르고뉴의 영지였던 Artois의 이름이 들어간 맥주. 저 Stella Artois는 벨기에 맥주지만 사실 Artois지역은 현재 벨기에 땅도 아니고 프랑스 땅이다. 30년 전쟁이 끝나고도 이어진 프랑스-스페인 전쟁의 결과 피레네 조약을 맺었고, 이 때(1659년) 스페인이 할양하면서 프랑스 영토가 된다.


구두 수선공의 눈에는 구두만 보인다고 했던가, 이 벨기에 맥주 Artois를 보면서 부르고뉴 계승전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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