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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Sep 20. 2016

자바의 해상왕, 대륙의 패자(覇者)를 물리치다.

마침내 이루어진 자바와 수마트라간의 통일왕국



전함들이 출격했다.

자바섬의 패자, 싱고사리Singhasari 왕국이 자랑하는 정예함대가 수마트라의 멜라유를 공략하기 위해 출격했다. 싱고사리의 왕, 컬타나가라Kertanegara는 웅장하게 출정하는 자신의 함대를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예로부터 인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로를 장악하고자 수마트라Sumatra 섬 세력과 자바Java 섬 세력간의 경쟁은 치열해왔다. 자바의 컬타나가라 왕은, 수세기동안 말라카 해협을 지배해온 수마트라의 패자이자, 오래된 왕국 수리비자야Srivijaya를 마침내 멸망시켰다. 그러나 수마트라의 멜라유Melayu는 종종 말을 듣지 않았다. 컬타나라가 왕은 그 멜라유를 손봐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싱고사리는 몽골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대륙의 절대강자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싱고사리는 인도네시아 국가들 사이의 신성동맹을 구축하고자 했다. 몽골과 대회전을 하기 전에, 동맹을 견고히 만들기 위해서라도 싱고사리는 멜라유를 단속해야 했다.


몇년 전 어느날이었다. 싱고사리 왕국에 쿠빌라이 칸의 사신이 도착했다. 쿠빌라이 칸은 싱고사리의 왕이 대도(Beijing)에 와서 황제를 알현하라고 했다. 알현은 복종을 의미했다. 자바섬의 패자이자 수마트라마저 복속시킨 컬타나가라 왕으로서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그는 대노하며 당장 눈앞의 사신의 얼굴을 훼손하라고 명했다. 대제국 몽골의 사신은 코가 베이고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돌아갔다. 원(몽골)은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는 와중에 컬타나가라 왕은 멜라유에 군대를 보내 인도네시아 동맹을 견고히 하려고 했던 것이다.


1292년, 마침내 칸의 군대는 자바를 향했다.

몽골군이 자바를 향해 진격해오고 있을 때, 불행히도 컬타나가라의 주력부대는 멜라유를 공격하러 떠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2-3년간 위대한 싱고사리의 왕은 몽골군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협상과 전쟁을 병행하며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고 결속시키는데 집중했다. 한마디로 내치보다 외정에 더욱 힘을 쏟고 있었다.

컬타나가라 왕이 외정에 신경을 쏟는 사이에, 자바의 케디리 집안은 컬타나가라 왕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오고 있었다. 때마침, 몽골군이 자바를 침입한다는 소문이 돌자 자바의 민심도 크게 동요되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케디리 세력은 반란을 일으켰다. 주력부대가 집을 비운 사이 케디리의 반란은 싱고사리 왕국에게는 불행이자 치명적이었다. 처음으로 수마트라와 자바를 통합한 왕국, 싱고사리는 그렇게 함락되었고, 위대한 왕 컬타나가라마저 살해당했다.


Kejayaan Majapahit


1293년. 쿠빌라이 칸의 군대는 자바에 입성했다.

몽골군이 자바에 와보니 상황이 변해있었다. 칸의 사신을 감히 능욕했던 왕은 이미 죽고 없고, 싱고사리마저도 패망해버렸다. 그렇다고 케디리가 자바섬이나 싱고사리를 장악하고 있지도 않았다. 몽골군은 자존심을 되찾을 상대도 없고, 복종을 요구할 나라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몽골군이 교섭의 상대를 찾고 있을 때, 컬타나가라 왕의 후계자인 비자야Vijaya가 나타나서 솔깃한 제안을 한다. 왕자 비자야는 싱고사리가 패망한 이후, 반란세력에 쫓기며 몸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마침내 몽골 앞에 나타나 한가지 제안을 한다. 


"저에게 반란군을 제압하도록 지원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왕국을 되찾고 몽골에게 복속하겠습니다."


그것은 몽골의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자바가 혼란에 쌓인 채, 몽골에 복속시키지 못하고 대군을 회항한다면 몽골군 사령관 본인의 임무완성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많을 것이다. 몽골은 비자야 왕자를 지원하여 친몽골정부를 세운다는 nation-building을 진행하기로 한다. 비자야 왕자의 세력과 몽골은 이렇게 동맹을 맺고 반란을 차례차례 제압해갔다. 케디리 세는 마침내 패배하였고 비자야 왕자는 다시 나라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비자야 왕자는 보통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몽골에게 복종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복중에 노림수를 품고 있었다. 그는 무엇을 노리고 있었을까?

비자야 왕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멜라유에 가있는 싱고사리의 정예군이었다. 싱고사리의 원정대가 온다면 제아무리 칸의 군대일지라도 두렵지 않았다. 비자야 왕자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싱고사리의 원정대가 돌아왔다. 정예군이 돌아오자마자 비자야는 몽골군을 공격했다. 비자야의 노림수는 보기좋게 성공하였고 이렇게 쿠빌라이 칸의 야욕은 좌절되었다.


이것은 그 뒤의 이야기지만, 몽골을 물리친 비자야 왕자는 인도네시아 사상 가장 강력한 왕국인 마야파힛Majapahit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 영토의 규모는 지금의 인도네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지역이 되었다. 비자야는 자신이 반란군에 쫓기며 어려운 시절 숨어살았던 브란타스강 유역의 작은 마을에 대제국의 수도를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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