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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Feb 06. 2023

서른넘어서 한자를 써보다가


문어발의 대가답게 나는 하나만 하면 견딜 수 없는 인간이라 요즘 여러 가지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회사 다니면서 야근하느라 거의 일상생활이 삭제되었던 연말, 연초에 맥이 끊겨 손을 놔버린 공부를 요즘 다시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한자이다. 물론 취미로 하루에 몇 자씩 써보며 와 너무 재밌다, 하는 수준인데


한자는 표음문자가 아니라서 글자 하나하나에 역사가 녹아있다. 그래서 보다 보면 굉장히 씁쓸할 때가 많다.


오늘 내가 공부한 글자 중 낮을 비(卑),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계집종 비(婢)가 있었는데 계집종 비의 대표 단어가 '노비'였다.


노비를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사내종+계집종이 노비. 그런데 희한하게 사내종에 여자 녀 자가 들어가 있었다.


(중학교 일학년, 우리 학교에는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 한자 선생님이 계셨다. 요즘의 팔팔한 육십대와 달리 그분은 말도, 걸음도 아주 느리고, 눈도 침침하셨다. 그분이 女 자를 쓰시며 계집 녀라고 많이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여자 녀라고 해주셨는데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는데 삼십 대가 넘은 지금도 책에 계집 녀라고 표현이 많이 되어있는데 그 당시 여자 녀라고 하시며 우리들을 귀하게 봐주셨던 할아버지 선생님이 떠올라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왜 사내 종에 저 부수가 들어갈까 해서 한자사전을 밑으로 스크롤 해보았다.



요즘 한자 공부를 하다가 꽤 재밌어서, 여자 조카에게도 어릴 때부터 한자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가끔 이렇게 생성원리를 보다 보면 조카에겐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할지 난감하다. 여성이 얼마나 낮고 낮았으면... 싶고. 역사는 이렇게 진한 자국을 남긴다.


<인류 본사 저자 이희수 출판 휴머니스트 발매2022.06.27.>


요즘 '인류 본사'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오리엔트 문명, 지금 말하자면 중동의 문명이 사실은 인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사는 여전히 서양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 가끔 등장하는 중동 세력은 철저한 타자로 표현된다.


결국 남는 것은 기록이고 더 열심히, 많이 써재껴서 (지금은) 작고 남루하고 비속한 것들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 본사의 저자인 이희수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역사란 한 문화권 구성원 전체가 살아내간 삶의 궤적의 총체이자 그들의 절절히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총량'이라고. 나와 사람들의 절절한 기억들을 많이 남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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